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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별이 37년 … 어린이날 엄마 껴안은 프랑스 입양 남매

“엄마가 (너희를)버린 게 아니란다. 돈 벌어서 같이 살려고…, 잘 커줘서 잘 살아줘서 정말, 정말 고맙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매를 37년 만에 다시 만난 어머니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말을 바로바로 알아들을 수 없는 남매였지만 어머니 윤복순(69)씨는 남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시간 남매가 겪었을 설움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살아생전 언제 다시 남매를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어서였다.
 
37년 만에 만난 어머니 윤복순씨와 눈물의 포옹을 하고 있는 김영숙씨(왼쪽 둘째). 아버지 김원제씨(왼쪽)와 오빠 영훈씨(오른쪽)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37년 만에 만난 어머니 윤복순씨와 눈물의 포옹을 하고 있는 김영숙씨(왼쪽 둘째). 아버지 김원제씨(왼쪽)와 오빠 영훈씨(오른쪽)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통역을 통해 어머니의 진심을 전해 들은 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불과 몇분 전 부모를 만났을 때만 해도 눈물을 참았던 그였다. 하지만 남매를 버린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그토록 자신들을 찾아 헤맸다는 말을 듣고서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엄마를 꼭 안았다.
 
곁에서 통역이 전해주는 말을 들은 오빠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시선을 먼 곳으로 향했다. 오빠는 “정말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손은 칠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였다.
 
어린이날이던 지난 5일 충남 당진 신합덕성당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가족을 잃어버린 뒤 프랑스로 입양됐던 남매가 친부모를 만나는 자리였다.
 
남매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즈음 부모는 성당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37년이란 긴 시간도 기다렸지만 2~3시간은 이렇게도 더디게 가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남매가 미니버스에서 내려 성당으로 들어올 때 기다리고 있던 수백여 명의 신자는 박수를 보냈다. 박수를 치다가 눈가를 훔치기를 반복했다. 남매가 살아 있기를 바라며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던 부모를 곁에서 오래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같은 부모의 마음이기도 했다.
 
프랑스로 입양된 남매가 양부모의 집에서 찍은 사진. [사진 충남경찰청]

프랑스로 입양된 남매가 양부모의 집에서 찍은 사진. [사진 충남경찰청]

남매가 이날 친부모를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1981년 친부 김원제(75)씨와 모친 윤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서울에 살던 김영훈씨(47·당시 10세)씨와 여동생 영숙씨(44·당시 7세)를 충남 아산의 조부모 댁에 함께 보냈다. 갑자기 조부모가 사망하자 같은 마을에 살던 작은아버지가 이들 남매를 맡았다.
 
그러던 중 작은아버지가 남매를 서울로 데려다주던 길에 남매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작은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이런 사실을 남매 부모에게 알리지 못하고 얼마 뒤 사망했다.
 
친부모는 1년이나 지난 뒤에야 아이들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됐다. 남매는 몇 년간 실종 아동 포스터에 실리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부모는 남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자녀를 더 갖지 않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남매의 친아버지 원제씨는 지인의 조언을 받아 2012년 12월 경찰에 “30여 년 전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달라”며 실종 신고했다.
 
지난해 7월부터 장기실종전담팀을 운영 중인 충남경찰청은 아버지 김씨의 신고를 받고 남매 찾기에 나섰다.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남매가 언제 어디서 실종됐는지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남매의 사진에서 책가방을 발견했다. 사진 속 남자아이는 분홍색 셔츠에 검정 어깨끈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이 어깨끈을 책가방의 끈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당시 영훈씨가 초등학생이었던 점으로 미뤄 아산지역의 초등학교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도 아산의 한 초등학교에 보관 중이던 김씨의 생활기록부를 찾아냈다. 생활기록부에는 81년 7월까지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남매가 81년 8월 이후 실종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곧바로 남매의 출생연도와 이름이 같은 214명의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해외 입양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앙입양원과 해외 입양자료도 조사했다. 결국 82년 2월 남매가 출생일자가 일부 바뀐 뒤 프랑스로 입양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프랑스 현지 교민과 유학생, 한인단체에 남매의 사연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는 등 도움을 요청했다. 사연을 접한 교민들도 남매 찾기에 발 벗고 나섰다. 교민인 신금섭 목사는 입양자료에 남겨진 양부모 주소를 찾아가 남매의 소재를 확인했다. 지난 1월 30일의 일이었다.
 
남매는 양부모의 옛 주소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경찰은 국제우편으로 남매의 DNA 시료를 전달받아 친부모와의 유전자와 대조, 친자관계임을 확인했다. 실종 당시 10살과 7살이던 남매는 47살과 44살의 중년이 돼 있었다.
 
당시 신 목사로부터 친부모의 소식을 전해 들은 남매는 “지난 37년간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줄 알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털어놨다고 한다.
 
신합덕성당 임폴린 수녀는 “그간 신자 모두가 자기 일처럼 같이 기도하고 (남매)부모의 아픔을 함께 나눴다”며 “어린이날 너무 감사한 일이 생겨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배우자를 동반해 입국한 김씨 남매는 일주일가량 부모와 함께 지내다 프랑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여건이 되는대로 부모를 자신들이 사는 프랑스로 초대하고 다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의 만남을 주선한 충남경찰청 박상복 여성청소년수사계장은 “오랫동안 경찰생활을 했지만, 오늘처럼 보람을 느껴본 적이 흔치 않다”며 “김씨 남매와 같은 사례가 더 있는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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