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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침 맞으러 몰려오는 외국인 환자들 … 의료 한류 꽃핀다

남정호의 ‘세계화 2.0’
지난 2일 서울 논현동 자생한방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주환수 원장이 체첸에서 온 투르팔로바 아이마니에게 침을 놔주고 있다. 허리 통증으로 못 일어났던 아이마니는 한방 치료 후 걷게 됐다. [김경록 기자]

지난 2일 서울 논현동 자생한방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주환수 원장이 체첸에서 온 투르팔로바 아이마니에게 침을 놔주고 있다. 허리 통증으로 못 일어났던 아이마니는 한방 치료 후 걷게 됐다. [김경록 기자]

영화·드라마와 K팝에 이어 의료 분야에서도 한국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외국인이 한국 연예인처럼 예뻐지기 위해 주로 성형외과를 찾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성형외과도 여전히 인기이지만 이보다 장기이식이나 암 수술 등 심각한 치료를 받기 위해 몰려드는 이들이 더 많다. 또 다른 특별한 현상이라면 한방 치료 목적으로 오는 외국 환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의료 한류의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일선 병원을 찾았다.
 
“자, 이제 침을 놓습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자생한방병원 5층 국제진료센터. 척추 질환을 고치기 위해 러시아 체첸공화국에서 날아온 투르팔로바 아이마니의 어깨에 주환수 원장이 신중하게 침을 놓았다. 지난달 5일 입원한 아이마니는 어느새 한방 시술에 익숙해진 듯 침이 꽂히는 데도 편안한 표정이다. 허리 통증으로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다 이젠 별문제 없이 걸을 정도로 회복됐다니 그럴 만도 했다.
 
이처럼 외국인의 눈으로는 신기하면서도 미심쩍게 보일 한방 치료를 받겠다며 몰려드는 해외 환자들이 요즘 급증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서 수위를 다투는 자생한방병원의 경우 지난해 2200여 명이 몽골·카자흐스탄·러시아·일본 등에서 찾아왔다. 외국인 환자를 위해 국제진료센터를 열었던 2006년에 불과 430여 명이 찾았던 것과 비교하면 11년 동안 5배 이상 늘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으로 중국인 입국이 크게 줄면서 전체적인 외국 환자 규모가 축소됐는데도 한방 병원을 찾은 이들은 많아졌다. 해외에서 일고 있는 한방 열풍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외국인 환자가 빠르게 늘자 병원에선 러시아어·몽골어·영어·일어 등 4개 국어로 환자와 의료진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8명의 코디네이터를 두고 있다.
 
해외에서의 한방 열풍에 대해 이진호 병원장은 “외국인 환자는 자기 나라에서 해볼 건 다 해 봤지만 별 효과가 없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침처럼 칼을 대지 않는 비(非)수술적 치료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 한방 홍보행사를 하게 되면 오랫동안 일어서지도 못했던 환자에게 침을 놔주고 곧바로 걷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더라만 즉각 확실한 변화가 나타나도록 침을 놓을 수 있어 이를 직접 본 이들은 깜짝 놀라면서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게 이 병원장의 이야기다. 실제로 이런 시연 행사 덕에 2년 전 중앙아시아의 한 정상급 인사가 전용기를 한국으로 보내 이 병원 의사를 비밀리에 모셔간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의료 한류로 외국 환자가 몰려드는 건 한방 병원뿐 아니다. 손꼽히는 국내 종합병원에도 해외 각국의 환자들이 줄을 서 즐거운 비명이다. 서울대병원도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된 2009년에 국제진료센터를 세우고 외국인 환자 치료에 힘쓰고 있다. 척추 질환 때문에 오는 자생한방병원과는 달리 이곳은 암 치료, 장기이식 등이 필요한 내과 쪽 중증 환자가 많다.
 
간이식 전문의인 이광웅 센터장은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의료 실력은 90% 수준이나 비용은 50~60%에 불과하다”며 “이처럼 가성비가 높은 게 외국 환자들이 몰리는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2009년 이후 해외에서 온 환자들이 급증한 건 어느 대형 종합병원이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병원들의 특징이라면 성형수술 케이스는 거의 없지만, 러시아·중앙아시아·몽골 등 세계 각지에서 중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나타난 현상이라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온 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 UAE 정부는 환자가 생기면 해외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비는 물론 가족, 심지어 가정부의 항공료와 호텔비까지 지원해 준다. 이런 UAE가 2011년부터 우리 당국과 협정을 맺어 전체 국비 환자의 40%를 한국으로 보내고 있다. 외국인 환자는 자신을 간호할 가족과 함께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치료비뿐 아니라 이들이 먹고 자는 데도 많은 돈을 쓰고 간다. 한마디로 국내 환자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셈이다. “이것저것 합치면 중동 환자의 경우 국내 일반인보다 4~5배 정도 치료비를 더 쓴다”는 게 임영이 보건산업진흥원 외국인환자유치단장의 귀띔이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9년 6만여 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환자가 2016년에는 36만4000여명으로 최고점에 달했었다. 7년 만에 6배나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32만1000여 명으로 재작년보다 12% 줄었지만, 이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제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 때문이다. 따라서 양국 관계만 정상화되면 중국 환자도 크게 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익에는 큰 도움이 되는 외국인 환자들이지만 문화적 차이 등으로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게 문제다. 예컨대 이슬람 입원 환자의 경우 간호사나 의사가 병실을 들어갈 때도 반드시 노크한 뒤 잠시 기다려야 한다. 노크 없이 불쑥 들어가면 여간 불쾌해하는 게 아니다. 얼굴 또는 머리를 가리지 않은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걸 금기로 여기는 터라 터번이나 차도르 등을 쓸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무슬림 신자는 하루 5번 반드시 메카를 향해 절을 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병원 내에 코란과 카펫 등이 준비된 기도실이 마련돼 있다. 또 병실, 심지어 진료실에도 어느 쪽이 메카인지 알려주는 표시가 붙어 있다. 그래야 진료 중이라도 때에 맞춰 기도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슬림 신자들은 자신들의 교리에 맞게 요리된 할라 음식만을 먹게 돼 있다. 중동 환자들이 이런 교리를 지키도록 서울대병원에서는 영양사들이 할라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별도 교육을 받게 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와 높은 의술 덕에 대부분의 외국 환자들은 만족해한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외국 환자를 많이 받아 잘 고쳐주면 외화 획득 외에 의료진 트레이닝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동에서의 높아진 명성 덕분에 서울대병원은 지난 2014년 UAE에 셰이크칼리파전문병원(SKSH)을 세우고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득 많은 외국인 의료 분야이지만 이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예컨대 외국, 특히 동남아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오려면 의료관광용 비자가 필요한데 이를 받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센터장은 “비자 문제만 잘 풀리면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에서 올 의료관광객들이 줄 서 있다”며 “이제는 의료관광용 비자 발급의 간소화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라고 강조했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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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