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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 어린이 옷엔 무병장수를 비는 부모의 염원이 담겼다

태어난 아이가 가장 처음 입는 옷을 '배냇저고리'라고 부른다. 갓 태어난 아이의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입히고 벗기기 쉽게 넉넉하고 간편하게 만든 옷이다. 
이 중 1900년 전후에 만들어진 배냇저고리는 실타래를 사용한 고름으로 옷을 여미게 해놨다. 아이가 무병·장수하라는 의미에서였다.

단국대 석주선박물관, 7월13일까지 어린이 전통옷 전시
배냇저고리부터 오방장두루마기까지 110점 선보여
2001년 해평 윤씨 집안 무덤서 나온 미라 복식도

전시회 포스터 [사진 단국대]

전시회 포스터 [사진 단국대]

 
이런 우리나라 어린이 전통 옷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은 오는 7월 13일까지 '마음을 담아 지은 사랑, 아이 옷 - 어린이 전통 옷' 특별전이 그것이다.
전시회에는 국립민속박물관과 석주선기념박물관 등이 보유하고 있던 어린이 의복 유물 110여점이 선보인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돌 되기 전까지 입는 옷(배꼽 주머니와 배냇저고리), 돌부터 6살까지 입는 옷(오방장 두루마기), 7살부터 관례(성년식)를 치르기 전까지 입는 옷(도포와 장옷)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전시된다.
 
각 유물에는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부모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두터운 실고름이 달린 배냇저고리는 물론 장수한 어른의 옷을 잘라 만든 '누비포대기' 등이 그렇다.
조선의 23대 왕 순조의 막내딸인 덕온옹주(1822~1844)의 돌상에 올라왔던 돌잡이 물품 중 하나인 '오색실타래'도 있다. 긴 실을 오방색 등으로 염색해 틀어 묶은 것으로 아이가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물품이다.
순조의 막내딸인 덕온공주 돌상에 올랐던 오색실타래. 아이가 장수를 하기 바라는 마음에 올린 것이다. [사진 단국대]

순조의 막내딸인 덕온공주 돌상에 올랐던 오색실타래. 아이가 장수를 하기 바라는 마음에 올린 것이다. [사진 단국대]

 
배냇저고리 등 아기 옷에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겼다면 6살까지 입는 오방장 두루마기에는 호환·마마 같은 액(厄)을 막아달라는 의미가 있다.
오방장 두루마기는 음양오행에서 풀어낸 '청·적·황·백·흑' 다섯 가지 색을 뜻하는 오방색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알록달록해 흔히 때때옷, 고까옷으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오방색은 나쁜 기운을 막는 의미로 사용됐다. 그래서 돌부터 6살까지의 아이 옷엔 주로 오방색이 들어간다.
16세기 초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액주름(겨드랑이 아래 주름이 잡혀있어 이런 이름이 붙음)옷'의 깃, 섶. 옆구리 일부에도 몸판과 다른 짙은 색이 남아 있다. 아이 옷에 오방색 같은 다양한 색을 조합하는 전통이 조선 중기에서 근대까지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아들인 진(晉) 왕자나 구(久)왕자가 입었던 두루마기를 비롯해 20세기 초 색동 소매가 달린 까치두루마기에도 이런 오방색이 담겼다. 
영친왕의 아들이 입었던 두루마기. 깃과 고름 등에 오방색을 넣었다. 오방색은 나쁜 기운을 막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진 단국대]

영친왕의 아들이 입었던 두루마기. 깃과 고름 등에 오방색을 넣었다. 오방색은 나쁜 기운을 막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사진 단국대]

 
7살부터 성년례를 치르기 전까지의 아이는 사실상 작은 어른으로 대했다. 그래서 옷의 모양도 어른의 옷을 그대로 본을 떴다.
 
덕온공주 집안의 '여아용 당의'나  탐릉군 무덤에서 출토된 '중치막' 등이 대표적이다. 
19세기 후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덕온공주 집안의 여아용 당의는 저고리에 덧입는 여자아이의 예복이다. 주로 왕실에서 입었는데 개화기 이후엔 일반 여성들도 계례복이나 혼례복으로 입었다.
 
탐릉군 무덤에서 출토된 중치막은 1731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치막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1800년대까지 남자들이 즐겨 입던 일상적인 외출복. 당시 성인과 아이의 중치막이 출토됐는데 아이 옷은 성인의 옷보다 크기만 작았다. 
해평 윤씨 집안 묘의 소년 미라 관에 들어있던 배냇저고리. [사진 단국대]

해평 윤씨 집안 묘의 소년 미라 관에 들어있던 배냇저고리. [사진 단국대]

 
전시장 중앙부에는 2001년 해평 윤씨 집안의 무덤에서 소년 미라와 함께 발견된 옷들도 전시된다. 
당시 발견된 목관에는 소년 미라와 함께 생전에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배냇저고리와 작은 모자가 발견됐다. 또 성인 여성의 장옷을 깔고, 성인 남성의 중치막이 이불처럼 아이를 감싸고 있었다. 어린 소년의 죽음을 슬퍼하는 부모가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배냇저고리는 대소변을 못 가리는 아이를 위해 뒤를 짧게 만들고 손톱으로 얼굴이 긁히는 것을 막기 위해 소매를 길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해평 윤씨 집안 묘의 소년 미라 관에 보관되어 있던 소모자. [사진 단국대]

해평 윤씨 집안 묘의 소년 미라 관에 보관되어 있던 소모자. [사진 단국대]

 
특별전을 기획한 박경식 관장은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의 아이 사랑은 한결같다"며 "아이가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바라는 애틋한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소중한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용인=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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