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너무 간섭하면 식물도 싫어해요"

 정원 생활자ㆍ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의 속초 정원학교
 
강원도 속초시 중도문 마을에 있는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씨의 살림집에서는 한 달에 한번 정원학교가 열린다. 수업교재로 쓰는 그의 정원에 장미 매발톱이 흐드러지게 폈다. 사진 김경빈 기자

강원도 속초시 중도문 마을에 있는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씨의 살림집에서는 한 달에 한번 정원학교가 열린다. 수업교재로 쓰는 그의 정원에 장미 매발톱이 흐드러지게 폈다. 사진 김경빈 기자

 컴퓨터 폴더 이름으로만 알았던 직박구리가 눈앞에서 지저귄다. 100년 넘은 한옥 지붕 처마 끝에 매달아 둔 나무집에 암수 정답게 앉아 주인장이 인심 좋게 올려둔 사과 한 개를 사이좋게 나눠먹고 있다. 머리에 무스를 바른 듯 깃털을 곧추 세운 수컷이 암컷을 향한 구애의 현장이기도 했다.  
 
“수컷 직박구리가 완전 단골이에요. 참새나 다른 새가 오면 자기 자리라고 소리치고 아주 난리죠. 둘이 사귀나봐요. 어머, 어머 재 좀 봐.”  
 
강원도 속초시 중도문 마을의 푸른 양철지붕 집에서 살고 있는 정원 생활자이자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51)씨의 살림집에서 만난 봄날의 오후 풍경이다. 짝짓기에 분주한 직박구리처럼, 봄날 그의 정원 생태계는 왕성하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속초 살이 7년차, 그의 소문난 정원은 ‘ㄱ자’ 형 고택을 에워싸고 있었다. 오씨는 이곳에서 정원 생활자이자, 정원학교 선생님으로 산다. 그의 소박한 정원에는 사계가 담겨 있고, 알지 못했던 지구촌 동반 식물의 삶이 옹기종기 펼쳐지고 있었다.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씨와 남편 임종기씨는 100년 넘은 고택을 직접 고쳐 살고있다.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씨와 남편 임종기씨는 100년 넘은 고택을 직접 고쳐 살고있다.

 
정원 학교 교실은 살림집인 고택 옆에 자리 잡았다. 원래 남편 임종기(56)씨의 목공 작업실이었으나 정원학교가 입소문 나면서 오씨의 교실로 탈바꿈했다. 남편이 직접 만든 교실은 아내가 가꾼 정원처럼 허투루 지나칠 것이 하나도 없다. 단장하기 위해 머물렀던 손길을 발견하고 음미하는 재미랄까. 탁자 위 화병에는 처음 보는 연둣빛 아스파라거스 잎이 꽂혀 있고, 오래된 나무 떡판에 담아낸 손님맞이 단팥빵마저 멋스럽다. “도서관과 정원만 있으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셈이다(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라고 교실 벽면에 써 놓은 격언대로 삶을 일구고자 하는 학생들이 마주앉았다. 한 달에 한번, 1박 2일 주말 특강으로 열리는 ‘정원의 열두 달’의 일환이다. 지난달 26일에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앞두고 평일 특강이 개설됐다. 짧은 공지에도 제주ㆍ대전ㆍ속초ㆍ양평 등 전국 방방 곳곳에서 11명의 수강생이 모였다. 정년퇴직을 앞둔 엄마와 딸, 귀촌 5년차인 부부, 전기기술자인 청년 등 사연은 달라도 모인 이유는 같았다. “정원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정원에 튤립이 활짝 폈다.

정원에 튤립이 활짝 폈다.

향기로 곤충을 유혹하는 봄꽃의 지혜  
오씨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1~2주에 하루 정도를 쓴다고 했다. 200여 평 정원에서 사시사철 꽃이 피어나고, 텃밭 정원에서 오이ㆍ상추ㆍ호박ㆍ가지ㆍ고추ㆍ토마토가 무럭무럭 자라나게끔 보살피는데 드는 시간은 생각보다 적었다. 오씨는 “그래서 정원을 만들 때 공간 디자인이 중요하고, 원예 관련 이론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해보면 되겠지’라며 뛰어들었다간 노동량만 늘어날 뿐이라는 지적이었다. “정원에서 풀 잡다가 도무지 안 되어서 왔다”는 수강생이 있는 이유다.    
 
오씨가 정원 공부를 하기 위해 택했던 영국 유학생활이 7년으로 길어졌던 이유도 이론에 좀 더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라디오 방송 작가로 16년을 일하다 2005년 영국 에식스대로 유학을 떠났고, 석사에 이어 가든 디자인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 뒤 2012년 귀국했다. 1박2일 코스인 정원 학교의 수업은 첫날 원예의 이해, 둘째날 정원 디자인으로 구성됐다. 교재는 오씨가 가꾼 정원의 사계였다.  
 
무스카리

무스카리

“4~5월에는 파란색 무스카리가 피어요. 파란색은 자연 상태에서 가장 드문 색이에요. 꽃 색깔로 흰색이 가장 많죠. 파란 꽃은 희귀하니 파는 것을 보면 정원으로 많이 가져오세요. 5월부터는 꽃이 점점 화려해집니다. 봄꽃은 추위를 걱정해서 크게 피지 않아요. 대신 곤충을 부르기 위해 향기를 무기로 씁니다. 여름 되면 향기가 약해지면서 색이 화려해지죠. 5월 중순이 넘어가면 꽃들에 본격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정원에 핀 산악 산수화

정원에 핀 산악 산수화

오씨의 정원은 크게 3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집중 케어가 필요한 텃밭 정원과 사계절 식물이 피고 지는 화단, 나머지는 일 년에 한 두 번만 살펴 보면 되는 식물 구역이다. 이런 완급 조절이 있기에 넓은 정원을 홀로 가꾸는 게 가능하다.  
 
돌단풍

돌단풍

텃밭 정원의 경우 식용 작물과 관상용 꽃을 함께 심었다. 먹을거리와 볼거리의 즐거움을 동시에 만끽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예쁘라고 심는 꽃만은 아니다. 특유의 향으로 해충을 쫓는 역할을 한다. 일명 동반식물이다. 오이ㆍ토마토와 메리골드, 오이ㆍ딸기ㆍ잎채소와 보리지, 열무와 한련화를 함께 심는 식이다. 텃밭 정원을 구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회양목 옆에 선 오씨가 갑자기 한쪽 발을 들어 나무 위를 닦아 내듯 훑는다.  
 
“껄렁껄렁해 보여도 응애라는 해충 끼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에요. 이렇게 쓸어주는 것만으로 통풍이 되거든요. 응애는 공기가 안 통하고 축축한 환경을 좋아해요. 잎이 촘촘하게 나 있는 나무의 경우 정기적으로 가지를 잘라주고, 장마철 오기 전 빗자루나 발로 위를 한 번씩 쓸어주세요.”  
 
오씨의 정원학교 모습, 남편이 직접 만든 교실, 텃밭정원, 오씨의 살림집 부엌(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씨는 ’

오씨의 정원학교 모습, 남편이 직접 만든 교실, 텃밭정원, 오씨의 살림집 부엌(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씨는 ’

과잉보호는 금물, 식물의 생존 의지를 믿어라
정원 뒤쪽으로 가는 길, 진딧물이 까맣게 일부 껴 있는 곤드레가 눈에 띈다. “약 안 치고 둔 지 3년째”라는 오씨의 말에 수강생들이 술렁였다. 원래 잎 전체에 진딧물이 새까맣게 붙어 있었는데 3년을 기다리니 어느정도 자체 저항력이 생긴 것 같다고 그는 설명했다.  
 
오씨가 정원학교 수강생들과 자택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오씨가 정원학교 수강생들과 자택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식물을 보살피지 않아서 죽이는 것보다 지나치게 케어해서 죽이는 경우가 더 많아요.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여건만 갖춰주면 식물이 알아서 자라요. 그런 자생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사전 조치를 하는 게 문제에요. 약 치는 것이 그렇죠. 5월에는 식물도 왕성히 자라지만 해충도 수가 급격히 늘어나요. 그런데 약을 쳐서 식물을 키우면 그 식물은 인간 없이 스스로 생존할 수 없어요. 게다가 벌레들이 전멸해버리면 자연 생태계가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우리가 할 일은 자연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에요. 정원을 가꾸다 보면 공생의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식물의 생존 의지를 믿고 기다리는 것. 어찌 보면 식물 키우는 것이 아이 키우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 했다. 오씨는 “식물 키울 때조차도 내가 간섭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두 아이를 내 손에서 쥐락펴락 하려 했던 게 얼마나 안 좋은 일인가 깨닫기도 했다”고 소회했다.  
 
그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만 해도 정원 디자이너라는 직함은 이 땅에서 낯설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온실 카페, 키친 가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력 분야가 인기를 끌면 좋을 텐데, 오씨는 걱정부터 했다. 유행처럼 왔다가 금세 가버리지 않고, 문화의 한 축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영국에서 공부했던 그가 한국식 정원을 연구하는 것도 우리 정원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싶은 바람에서다.
 
오씨는 ’식물을 가꾸지 않더라도 정원용 소품만으로도 정원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씨는 ’식물을 가꾸지 않더라도 정원용 소품만으로도 정원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의 정원 문화는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합니다. 보통 높은 울타리를 쳐서 정원을 만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담장을 안 치거나 낮게 쳐서 시선을 가로막지 않아요. 담양 소쇄원만 봐도 어디까지가 정원이고, 자연인지 알기 힘들잖아요. 상상 이상으로 자연 친화적인 것이 우리나라 정원이에요.”
 
인위적으로 식물을 조합하고, 변화시키는 유전자가 없는 나라에서 서양식 정원 문화가 자리 잡기란 어려운 일이다. 오씨는 “다행히 유럽에서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원을 가꾸자는 붐이 일고 있고, 우리와도 코드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더 연구해 볼 참”이라고 전했다.  
 
도시의 공기와 냄새가 싫어 시골살이를 택했던 삶, 그는 설악산 아침 산책을 하며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굶어 죽지 않았으니 된 것 아니야.” 속초에서 정원생활자는 많이 버는 것에 대한 열망을 줄여가는 삶을 살아야 했다. 대신 정원은 풍성해졌고, 정원 생활자는 단단해졌다.  
 
“철은 계절이자 시간의 흐름이죠. 정원에는 식물이 있고, 온갖 기후가 머물고 동물도 찾아와요. 정원 안에서 이 모든 걸 느끼고 보면서 저도 철이 드는 것 같아요.”  
 
오경아씨

오경아씨

그의 집을 나선 길, 동네 집마다 정원학교에서 본 목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목단이 알려주는 철, 봄이었다. ●
 
속초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