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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시하는 김정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대담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동 식수를 마친 뒤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배석자없이 44분간 회담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동 식수를 마친 뒤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배석자없이 44분간 회담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대통령이 판문점을 건너는 장면을 지켜봤다. 정상회담은 순조로웠다. 남북 정상은 희망으로 가득 찬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새로운 화합의 시대, 남북교류 활성화, 고위급 회담 개최, 상호 불가침 등이 담겼다. 1953년 정전 협정을 영구적 평화로 바꾸고, 경제 협력을 통한 공동 번영과 이산가족 상봉도 약속했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에 대해 묘사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2007년 10월 4일의 얘기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난 그날 평양에 있었다.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남북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처럼. 그러나 공동선언은 거의 실행되지 않았다. 서울에선 새 대통령이 선출됐고 김정일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남북관계는 다시 긴장 국면으로 돌아섰다.
 
 
이전 실패 인정하고 유감 표시 주목
 
이번엔 다를까. 분위기는 분명 나쁘지 않다. 김정은은 아버지보다 기세등등해 보였다. 매력을 풍겼으며 언론 앞에서도 자연스러웠다. 그가 이전 합의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은둔했던 아버지에 비해 훨씬 대담했다. 북한 지도자가 한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은 그가 처음이었고 공동 기자회견까지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이 과연 실행될 수 있을까. 이는 상당한 비용을 수반할 것이다. 공동 선언문에는 낙후된 북한 철도 시설 현대화를 비롯해 2007년 선언문에 있었지만 이행하지 못한 안변·남포 조선 협력단지 건설 등이 담겨 있다. 필자가 세금을 낼 한국민이 아니라는 게 다행스럽다.
 
이번 판문점 선언 이행은 2007년과 다른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첫째는 2007년 이후 유엔 안보리가 지속해서 북한 경제를 압박하는 일련의 제재 조치를 통과시켜 왔다는 점이다. 유엔 제재를 위반하지 않고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두 번째는 비핵화다. 이번 선언문 내용은 북한의 첫 핵실험이 있고 1년 후에 이뤄진 2007년 정상회담의 이슈였다.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는 이후 6번의 핵실험을 거치며 훨씬 고조됐다.
 
두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다. 판문점 선언은 대체로 남북 관계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은 모든 초점이 비핵화에 맞춰질 것이다. 유엔 제재 문제는 북·미 간 비핵화 논의 결과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비핵화 협상이 좌절돼 미국이 최고 수준의 대북 경제 압박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문 대통령은 대규모 자금 지원이 수반되는 판문점 선언 실행에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 북한은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이산가족 상봉, 군사 회담, 재래식 병력 감축 논의, 사회문화 교류 같은 ‘선물 보따리’를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북·미 간 비핵화 논의가 진통을 겪으면 이를 모두 거둬들이면서 문 대통령에게 미국의 입장을 누그러뜨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판문점 회담에서 거둔 성과를 잃게 될 것이란 압박 카드를 들이밀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북 간 판문점 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판문점 선언문에 따르면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과거 선언문과 달리 “우리 스스로”가 아니었다. 이는 미국이 환영할 만한 대목이다. 반면 선언문에 적힌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은 미국의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북한에서 핵무기를 없앤다는 의미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 외부로부터의 핵 공격 위협을 없앤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핵 공격 능력을 갖춘 미국에 대해서도 비핵화를 요구한 것이다. 물론 불가능한 요구다.
 
하지만 이런 표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회담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달 2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진정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을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만족할 만하고 실행 가능한 거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북한은 국제 전문가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김정은, 핵 억지력 믿고 협상 나선 듯
 
그럼에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대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지 확신할 수 없다. 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차례나 자신이 회담장에서 퇴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행 불가능한 안보 보장을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을 망칠 수 있다. 더구나 북·미 회담에서 중국이 반대하는 결과물이 나온다면 중국은 자국의 이익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북한에 협상 중단 요구할 수도 있다. 아마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이번 주 평양을 방문했을 때 혹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다면 전달할 메시지일 것이다.
 
북한은 이번 협상에 얼마나 진실하게 접근하고 있을까. 김정일은 여러 차례 국제사회를 속여왔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직 이런 시험대에 올라본 적이 없다. 다만,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지 몇 주 뒤인 2012년 2월 29일,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기로 동의하고도 그해 4월 장거리미사일 광명성호를 발사했다.
 
북한의 과거 협상 전력은 냉소를 불러일으킨다. 그간 북한의 외교적 ‘불꽃놀이’는 한·미 동맹을 약화하고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유엔 제재 이행을 약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진정 김정은이 협상을 하기로 결정하고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이라면 이번 시도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강력한 대북 제재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김정은이 핵 억지력을 통해 강대국들과 협상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또다시 ‘치고 빠지기’에 나선 것인지, 역사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체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것뿐이다. 최상을 희망하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면서 말이다. 물론 김정은이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면 그를 면전에서 비난할 필요는 없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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