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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레터] 대한민국은 갈등공화국

“보수주의는 중도-실용-현실주의에 입각했을 땐 융성했다. 하지만 보복주의(Revanchism)에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변방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뉴욕타임스의 샘 태넌하우스가 쓴『보수주의의 죽음(The death of conservatism, 2009년)』이란 책의 한 대목입니다. 오바마 행정부에 비타협적이고 투쟁적인 공화당 강경파를 꼬집은 표현이지만, 역사 속 보수가 중도ㆍ실용이란 옷을 입었을 때 대중의 사랑을 받았음을 조목조목 적고 있습니다.
 
 VVIP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지난 주는 4ㆍ27 남북정상회담 기사 제작 때문에 레터를 하루 쉬었습니다. 회담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종종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는 점입니다. 그 회담 후 1주일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시계는 여전히 미명입니다. 동터오기 전의 어둠도 여전합니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북한의 개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큰 고빗길이 남아섭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본게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1,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단박에 통일이 실현되지 않았듯이, 아직은 그저 말(言)들의 성찬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비관할 것도 없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앞두고 있을 뿐이니까요.  
문제는 미명 속에서 들리는 우리 정치의 협량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응원은 못할망정 훼방은 하지 않아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엔 등 우리가 가고싶은 길의 방향을 제멋대로 좌우할 수 있는 변수들이 널려 있어섭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정치는 자꾸 뒤로만 가는 것같습니다. 더 넓어지고, 더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정치가 더 좁아지고, 더 고리타분해지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13일 순안공항으로 나온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13일 순안공항으로 나온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2000년 6월15일 역사적인 김대중-김정일 회담 다음날인 6월16일 한나라당 총재단회의에서 이회창 총재는 이렇게 말합니다.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데 대해 환영하며 앞으로도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그렇지만 야당 영수로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들도 많이 있다(중략).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환상적인 꿈을 갖고 있는 이 때 비록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면 찬물을 끼얹는다는 식의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김정은 회담을 지켜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재인)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에 불과했습니다. 북의 통일전선 전략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적은 것이 남북 정상회담 발표문입니다(중략).” 18년 전 이회창 총재가 썼던 ‘환영’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홍 대표의 날 선 비판은 사흘내내 계속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17일 이회창 총재를 청와대로 초청, 조찬 회동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17일 이회창 총재를 청와대로 초청, 조찬 회동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쪽도 18년 전과 비교해 통이 크지않기는 마찬가집니다.
2000년 6ㆍ15 정상회담 이틀 뒤인 17일 김 대통령은 이회창 총재를 청와대로 초청합니다. 토요일임에도 대통령은 제1야당 총재와 만나 김정일과 한 회담 얘기를 들려줍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이 총재는 주요 당직자들에게 “직접 내용을 들으니 의문이 많이 풀렸고, 몰랐던 일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당시 언론들이 전한 대화 중 한 토막입니다.
^이 총재= 합의문 1항의 ‘자주적 해결’은 외세 배격, 특히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 아닌가.
^김 대통령= 국정원장도 설명했지만 주한미군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이에 대한 충분한 설득과 토의가 있었다….
2018년 4ㆍ27 정상회담 후 청와대나 대통령이 제1야당 사람들을 초청해 설명회를 열었다는 얘기는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정상회담 당일 판문점 만찬에는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사람들만 초대됐습니다. 그러다보니 김정은 위원장이 홍준표 대표와 만났을 때를 대비해 할 말을 준비했는데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얘기까지 들립니다.
홍 대표가 막무가내로 비판만 해서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협상하는 기술입니다. 끊겼던 남북한 간에도 만나 대화를 하는데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살면서 민주당과 한국당 사람들은 돌아오지않는 다리, 차디찬 분단 상황입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페이스북 캡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페이스북 캡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드루킹 사건의 특검을 수용하라면서 ‘느닷없이’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느닷없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식은 모든 협상이 깨지고, 모든 해법이 막혔을 때 이타적이고, 대의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가장가장 마지막에 꺼내드는 약자의 수단입니다. 진짜로 하는 단식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의 단식 중 전설처럼 회자되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1983년 단식은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의 한 복판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한 목숨 건 것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국민이 그의 편에 섰고, 숨죽여 그의 하루하루를 응원했습니다. 그랬기에 그 단식은 작게는 YS의 가택연금을 풀었고, 이후 민추협 결성- 2ㆍ12 총선 승리-직선제 개헌 등으로 진화합니다.   
 
중앙SUNDAY는 이번 주 ‘대한민국은 갈등 공화국’을 스페셜리포트로 준비했습니다. 영국 BBC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2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한국사회의 갈등 양상이 세계 최고수준이었습니다. 이걸 ‘최고’라고 표현해야 하는 게 씁쓸합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갈등요인으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 간의 갈등’을 꼽은 사람이 무려 61%였다는 점입니다. 빈부 갈등을 꼽은 사람은 44%, 세대 갈등을 꼽은 사람은 25%였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관용하지 않는 지수(20%)도 27개국 중 26위였습니다. 가정의달 5월은 5일 어린이날부터 시작됩니다. 어린이날을 맞아 놀이터에서 멍들고 다쳐야 건강한 나라라는 도발적인 인터뷰도 실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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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