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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포도주 맛 그대로 '오렌지 와인'

기자
조인호 사진 조인호
[더,오래] 조인호의 알면 약 모르면 술 (6)
초등학교 시절 성당 신부님 옆에서 미사의 진행을 돕는 복사를 했다. 어린 시절 무슨 대단한 신앙이 있을 리 없겠지만, 신부님이 미사를 주관 할 때 의식 순서를 까먹지 않고 종을 치는 것은 당시 꼬맹이 복사에겐 최고의 임무이자 사명이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 것을 기리는 것이 오늘날 성찬의 전례로, 가톨릭 미사 예식의 핵심이다. 신부님이 밀떡과 포도주를 들고 예수의 몸과 피라며 축성하는 말씀을 하는 순간 복사는 이를 알리기 위해 종을 친다. 이때의 장엄한 분위기와 종을 치는 행위의 신성함은 오랜 기간 나의 몸과 의식에 각인돼 있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CNN에서 제작 방영한 미드 ‘Finding Jesus’에서 최후의 만찬 장면. [사진 CNN 캡처]

CNN에서 제작 방영한 미드 ‘Finding Jesus’에서 최후의 만찬 장면. [사진 CNN 캡처]

 
국내 미사에서 우리 죄의 사함을 위해 예수께서 흘린 피를 봉헌하는 와인은 무엇일까? 국산 와인의 대명사인 마주앙에서 내는 ‘마주앙 미사주’다. 경상북도 경산에서 재배한 포도 머스캣(Muscat)과 싸이벨(Seibel)을 주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각각 만들어 천주교에 공급하고 있다.
 
1977년부터 현재까지 미사용으로 독점 출시되고 있는 마주앙 미사주. 시중엔 유통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롯데주류]

1977년부터 현재까지 미사용으로 독점 출시되고 있는 마주앙 미사주. 시중엔 유통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롯데주류]



예수가 마신 와인, 실제 피만큼 진하고 끈적
그렇다면 실제 예수께서 활동하던 시대의 와인 맛과 스타일은 오늘날 미사주와 비슷했을까? 마주앙 미사주는 물론이고 지금의 여느 와인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0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쟁과 무역 등으로 영역을 옮겨 다른 토양과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양조용 포도 품종이 변이를 통해 축출과 개량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같은 와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현대식 설비도 없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이집트인의 무덤에 그려진 그림들과 로마 시대의 학자인 플라이니 디 엘더(Pliny the Elder, 서기 23~79년)가 저서 『자연사(Naturalis Historia)』에 서술한 자료를 보면 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와인을 만드는 모습. 포도를 발로 밟아 즙을 얻고 진흙 항아리에 와인을 숙성시켰음을 알 수 있다. [사진 http://www.wineofancientegypt.com/]

고대 이집트인들이 와인을 만드는 모습. 포도를 발로 밟아 즙을 얻고 진흙 항아리에 와인을 숙성시켰음을 알 수 있다. [사진 http://www.wineofancientegypt.com/]

 
과거에 와인을 만드는 방식이 지금과 가장 달랐던 점은 양조 시설이 기계화되지 않고 화학 보존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화작용에 약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해결하는 것이 숙제였다. 우선 포도나 포도즙을 멀리 운반해 양조할 수 없어 포도밭 근처 통이나 돌에 놓고 직접 발로 밟아 포도즙(must, 머스트)을 얻었다. 
 
이를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모아 시원한 곳이나 바닷속에 넣고 발효, 숙성시켰다. 발효 공정을 제어할 수 있는 온도 조절 장치가 없었으므로 포도즙을 포도주로 바꾸는 발효 작업은 짧은 시간에 단순하게 끝내야 했다. 발효가 길어지면 포도주가 아닌 식초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효의 중단은 포도즙인 머스트를 추가로 넣는 방법을 썼다. 알코올로 바뀌어야 할 당분을 과다하게 투여함으로써 효모의 작동에 과부하가 걸리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대 와인의 맛과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보다 알코올과 탄닌 함유가 많고 단맛도 센 와인이었을 것이다. 또 여과나 랙킹(racking, 와인을 통에 옮겨 담으며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을 통해 와인을 투명하게 하는 기술이 없었기에 와인의 빛깔은 뿌옇고 흐렸을 것이다. 레드 와인의 경우 예수가 자신의 피로 비유했을 만큼 색이 진하고 탄닌이 많아 거칠었을 것이다. 화이트 와인은 더욱 큰 차이가 있다. 
 
지금처럼 포도의 껍질을 분리해 포도즙만으로 와인을 만드는 기술이 없었으니 청포도를 껍질째 으깨어 만든 와인은 산소와의 접촉으로 붉은 호박빛 색을 띠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진하고 끈적한 맛의 와인은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플라이니는 그의 책에 와인별로 물로 희석하는 비율을 기술하고 있다.
 
예수 시대의 와인 맛 색깔 닮은 '오렌지 와인' 
그렇다면 오늘날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와인 중 어떤 와인이 예수가 마시던 와인의 모습에 가장 가까울까?
 
Lopez de Heredia, Vina Tondonia Reserva 1993. [사진 조인호]

Lopez de Heredia, Vina Tondonia Reserva 1993. [사진 조인호]

 
첫째는 스페인 리오하 (Rioja)에서 ‘비우라(마카베오라고도 불림)’ 품종을 써서 만드는 특별한 화이트 와인이다. 현대식 기술을 쓰지 않고, 발효 전 포도 껍질을 포도즙과 함께 오랜 시간 담가 놓는 지역 전통 방식으로, 디저트 와인처럼 황금빛에 복합적인 향과 맛을 낸다.
 
Gravner Bianco Breg Anfora 2005. [사진 조인호]

Gravner Bianco Breg Anfora 2005. [사진 조인호]

 
두 번째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오렌지 와인’이다. 오렌지 와인은 오렌지로 만든 와인이 아니고 오렌지빛이 나는 와인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다. 오렌지 와인은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로 으깨서 레드 와인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제조한다. 껍질째 발효되는 과정에서 공기와의 접촉으로 옅은 붉은빛을 띠게 되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한 예수 시대의 화이트 와인과 닮은 모습이다. 특히 이 와인은 고대에 와인을 발효 숙성시켰던 진흙 항아리를 사용했다. 
 
아직은 국내에선 이러한 오렌지 와인을 접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전문 소믈리에가 있는 와인바나 레스토랑, 내추럴 와인을 주로 취급하는 와인 샵에 가면 구할 수 있다.
 
늘 말하듯 포도에서 생리 활성을 가진 유기 물질은 대부분 껍질과 씨앗에 존재한다. 레드 와인이 심혈관 건강에 좋은 이유다. 껍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화이트 와인인 오렌지 와인 역시 이의 장점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살던 시대의 와인은 오늘날처럼 기호품이나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에 더욱 가까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음료로도, 약으로도 쓰였다. 그래서 자신의 몸인 빵과 함께 자신의 피를 상징하는 신성함을 담을 존재로, 가장 보편적인 식품인 포도주, 즉 와인을 선택했으리란 생각이다.
 
그때의 모습과 맛을 닮았다고 오렌지 와인을 마시는 것(미사 때 축성을 받은 미사주가 아닌 이상)에서 예수의 신성과 죄 사함을 바랄 수는 없겠다. 다만 건강에 보다 유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스스로 음주의 ‘죄의식’은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조인호 약사·와인 파워블로거 inho3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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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