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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왕건 동상이 지금 말하는 것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고려를 세운 왕건(877~943)은 모두 29명의 아내를 두었다. 한국사 5000년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수치다.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많은 왕비다. 왕건은 정권 초기 국정 안정을 위해 지방 세력가들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혼인으로 세력을 넓힌, 즉 정략결혼의 으뜸 사례로 꼽힌다. 무려 아들 25명과 딸 9명을 낳았다. 이복 자식끼리도 결혼시켜 왕실의 권력분산을 막으려 했다.
 
왕건은 대단한 정력가였을까. 아직 그의 사생활까지 정확히 꿸 수는 없다. 그런데 재미난 동상 하나가 있다. 2006년 한국에서도 공개된 왕건 동상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길이 138.3㎝의 등신상(等身像)이다. 앉은키 84.7㎝로 성인 남자와 비슷한 크기다. 현존 유일의 임금 동상이다. 황제를 상징하는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있는데,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가 고려를 알리려 했다.
 
고려 태조 왕건 전신상. 길이 138.3㎝다.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2006년에 이어 12년 만에 한국 전시가 추진되고 있다. [사진 지식산업사]

고려 태조 왕건 전신상. 길이 138.3㎝다.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2006년에 이어 12년 만에 한국 전시가 추진되고 있다. [사진 지식산업사]

현재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있는 왕건 동상은 벌거숭이 나신상이다. 고려 왕실은 동상에 의복을 입혀 국가 제례에 사용했다. 왕건상에는 남성의 ‘상징’까지 달려 있다. 한데 크기가 2㎝다. 황제의 위엄을 무시한 처사다. 노명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풀이가 흥미롭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2012)에서 불교의 영향을 들었다. 색욕을 멀리하는, 수양과 덕을 쌓은 군주상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왕건 동상은 요즘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서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올 연말(12월 4일) 개막하는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에서 왕건상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고려 건국 1100년 기념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40초가량 동영상에는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는 희랑 대사 목조상(보물 999호)도 나온다. 희랑 대사는 왕건의 정신적 지주였다. 후삼국 시대, 백제군에 몰린 왕건을 크게 도왔다. 스님의 실제 모습을 새긴 희랑 대사상은 우리나라 초상 조각의 걸작이다. 두 작품이 나란히 전시될 경우 왕건과 그 스승이 1000년 만에 마주하는 이벤트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체부를 통해 북한 측에 고려 문화재 50여 점 대여를 요청한 상태다. 개성 관음사 관음보살좌상, 개성 만월대에서 나온 금속활자 등이 포함됐다. 12년 전 남북 문화재 상봉이 재연될지 기다려볼 일이다. 일회성, 단발성 행사가 아닌 남북 박물관의 꾸준한 교류로 연결될지도 관심사다. 남북 공통분모인 문화유산이 정치·경제보다 쉽게 손잡을 수 있는 분야인 것은 불 보듯 환할 터다.
 
무엇보다 남북 박물관에 각기 소장된 문화재 정보를 정리하고, 이를 공유하는 시스템부터 갖췄으면 한다. 북한 소재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지금까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북한 소재 국립박물관 13곳과 소장 유물 500여 점을 소개한 한서대 장경희 교수의 『북한의 박물관』(2010) 정도가 갈증을 달래줬다. 『북한의 박물관』은 올 2월 일본에서도 처음 번역됐다. 남북 관계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높아진 관심을 방증한다.
 
박물관, 언뜻 보면 정치와 무관한 영역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박물관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분단 이후 남북은 각각 국립박물관(남한 14곳, 북한 13곳)을 경쟁적으로 세웠다. ‘국립’ 숫자만 놓고 보면 우리보다 땅이 넓은 중국(1곳)과 일본(4곳)을 압도한다. 지역보다 국가를 앞세운 논리의 결과다. 물론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남북 모두 문화유산에 대한 대중의 안목을 끌어올린 부분도 있다.
 
한국 박물관의 역사도 한 세기가 지났다. 1909년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창경궁에 연 제실박물관이 기점으로 꼽힌다. 당시 내건 문구가 ‘여민해락(與民偕樂·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다)’이다. 눈앞의 남북 봄바람에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지만 지금까지 반쪽에 그쳤던 우리 문화유산이 온전한 합체가 될 날을 고대해본다. 문화재 영역에서도 더는 전쟁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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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