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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권마다 벌이는 역사교과서 이념 논쟁 부끄럽지도 않나

10대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은 세계 속으로 역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동력이 충분하다. 광복과 한국전쟁, 군사정부, 근대화·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진 영욕의 근·현대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런 역사를 학생들에게 사실(史實)대로, 객관적으로 가르치는 건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런데 우리는 정권마다 역사 교육 홍역을 앓는다. 정권 입맛에 따라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쳐 이념 논쟁에 빠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국정교과서’를 폐기하면서 “역사 교육이 정치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다시 이념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교육부가 엊그제 공개한 중·고교 검정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이 그 진앙이다. 국가 정체를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바꾼 것,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고친 게 대표적 논란거리다.
 
어제 자유한국당과 보수 진영은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체성을 폄훼하는 좌편향 나침반”이라며 반발했다. 그러자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우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합당한 기준”이라며 맞받았다. 이런 부끄러운 데자뷔가 거듭되는 건 정권이 ‘역사’를 주무르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단 맞추는 학계 책임도 무겁다. 진영의 눈으로 역사를 재단하며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해서다. 이런 파동이 반복되면서 균형감 있는 중도 학자들이 설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역사교과서는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이고 다양한 고품격 콘텐트가 생명이다. 그 출발점은 균형감이어야 한다. 그래야 교과서가 정권의 전리품이 되지 않는다. 교육부는 7월로 예정된 확정 고시 일정을 늦추더라도 집필기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학계가 주장하는 공청회와 대국민 토론회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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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