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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7000원짜리 도시락, 700엔짜리 도시락

남윤호 도쿄 총국장

남윤호 도쿄 총국장

“7000원이면 700엔쯤이니 제법 좋은 도시락이겠네요.”
 
일본의 한 TV 진행자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뉴스를 전하며 한 말이다. 재벌도 먹었다는 맛있는 도시락이 화제인 줄 잘못 짚은 것이다. 해설자가 한국의 물가 수준을 설명하고서야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선 점심에 간단히 먹는 도시락이 대개 500엔 안팎이다. 편의점엔 300엔대도 많다. 700엔이면 단백질 계통의 간판 메뉴가 떡하니 얹혀진다. 도시락값 7000원은 일본인 감각으로 결코 만만한 가격대가 아니다.
 
일본에 놀러 오는 한국인들은 그와 반대로 느낀다. 교통비·호텔비를 제외하고 밥 사먹고 쇼핑하는 데 가성비가 의외로 좋다고 한다. 700엔이면 조현민보다 나은 도시락을 사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간단한 사례지만 한·일 경제의 구조적인 차이가 반영돼 있다. 도시락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따져 보자. 인건비는 우리의 최저임금이 크게 올라 양국이 비슷해졌다. 재료비는 일본이, 금융비용은 한국이 각각 높다. 임차료나 고정자산 비용은 비슷하거나 일본이 비쌀 거다. 요소비용만 따지면 한국 도시락이 일본보다 비쌀 이유가 없다. 우리 도시락집 주인이 외제차 굴릴 만큼 폭리를 챙기는 것도 아니다. 원화가치가 좀 올랐어도 턱없는 수준은 아니다.
 
그럼 일본보다 소득수준이 30%쯤 낮은 한국의 도시락이 왜 일본보다 30% 비쌀까. 우리 경제의 효율이 낮기 때문이 아닐까. 연비가 떨어져 연료값이 많이 든다는 거다. 주범으론 보이지 않는 데서 불가피하게 드는 블랙박스 코스트를 꼽을 수 있다. 온갖 규제에 맞추려다 보면 유·무형의 비용이 많이 든다. 불신풍조로 인한 거래비용도 만만찮다. 장사 좀 하려면 손 벌리며 찾아오는 데도 여기저기 있다. 평소 기름칠 잘 해두지 않으면 험한 꼴 당하기 쉽다. 그뿐인가. 거래선 갑질, 반기업 정서 역시 적잖은 비용치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요소비용 경쟁력이 이미 크게 떨어졌다고 본다. 여기에 블랙박스 코스트까지 지불해야 하니 우리 경제는 만성적 비효율 구조로 석회화하고 있다.
 
남윤호칼럼

남윤호칼럼

영세기업이 많아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낮은 것도 큰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 수는 360만 개다. 일본은 380만 개다(경제산업성). 경제 규모가 3배 이상 차이나는데도 기업 수는 엇비슷하다. 아무리 우리나라에 1인 벤처가 많다 해도 이게 정상인가. 게다가 일본에선 경제규모·인구추세에 비해 이것도 너무 많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구조조정을 더 서둘러야 할 텐데도 너무 태평스럽다.
 
효율과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제에 일자리가 확확 생길 리 없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인 청년실업률도 결국 경제 내부에 든 골병이 증상으로 발현한 것이다. 부랴부랴 정부는 일자리 추경을 편성했다. 이게 국회 공전으로 막히자 골든타임이니, 장관 1인 시위니 하며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열심인데 국회(결국 야당)가 발목 잡는다는 투다.
 
그런데 추경을 쓰려는 정부의 자세부터 틀렸다. 이 점은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다. 지금의 청년실업 사태는 경기 순환이나 외부 충격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구조 문제와 더불어 난폭하고 근시안적인 경제 운용의 영향이 크다.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추경을 쓸 지경에 이른 책임은 정부에 있다. 미리 정한 예산이 모자라 세금을 더 쓴다는 건 국민에게 매우 면목 없는 일이다. 먼저 치열한 자성과 함께 국민의 양해를 구하는 게 도리다.
 
추경의 내용도 논란거리다. 3조9000억원 중 2조9000억원이 청년 일자리 재원인데 중기 취업자 소득 보전, 인건비 지원이 많다. 대부분 금전 살포에 가깝다. 무슨 곗돈 뿌리는 듯한 정책을 믿고 중기에 취업할 청년이 얼마나 되겠나. 그 돈 다 쓰면 그 다음 청년층에겐 또 뭘 해줄 건가. 긴급피난이라곤 하지만 생산성과 효율을 끌어올릴 근본 대책이 안 보인다. 경제란 유연한 생물체여서 굳은 곳을 풀어 피가 통하게 하면 저절로 생기가 돌고 살이 오르는 법이다. 그런 비전과 대책이 있으면 국민에게 좀 기다려 달라 해도 된다.
 
공교롭게 실업의 최대 피해자인 청년층은 이 정부의 중요 지지층이다. 선거철엔 뭐든 다 해줄 듯하다, 결과적으론 취업문을 더 좁혀 놓고 말았다. 알고도 그랬다면 먹튀요, 모르고 그랬다면 무능이다. 하기야 “재벌 혼내주느라 늦었다”는 공정거래위원장은 있어도 “청년실업자 도와주느라 늦었다”는 장관은 없더라. 이대로면 또 다른 조현민이 먹을 도시락은 더 비싸질지 모른다. 반찬은 그대로면서.
 
남윤호 도쿄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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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