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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웃고 울게 만든 재일동포의 고단한 삶, 영화로도 만들었죠

효고 히메지의 가난한 재일동포 가정에서 자랐다는 연출가 정의신씨.

효고 히메지의 가난한 재일동포 가정에서 자랐다는 연출가 정의신씨.

“딱 10년 전 연극으로 선보였을 땐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 몰랐습니다. 더 많은 분에게 보여드리고 싶던 차에 영화화를 의뢰받아 제작하게 됐습니다.”
 
3일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야키니쿠 드래곤’을 선보인 재일동포 정의신(61) 감독의 말이다. 한일 양국 연극계에 연출가·작가로 이름난 그가 영화를 연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배경은 일본이 고도성장에 돌입한 1970년 전후. 오사카의 가난한 자이니치 마을에서 재혼한 아내 영순(이정은 분)과 한국식 불고기(야키니쿠)집을 하는 용길(김상호 분)의 고락을 그렸다. 정 감독이 직접 희곡을 쓰고 연출한 같은 제목의 한일 합작 연극이 바탕이다. 연극은 2008년 초연 당시 한일 양국에서 폭발적 호평을 받아 한국에선 두 차례, 일본에선 세 차례나 거듭 무대에 올랐다.
 
개막에 앞서 기자회견에서 정 감독은 “지금 기억해두지 않으면 잊힐 이야기여서 영화로 찍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처음 연극을 들고 왔을 때도 한국에는 재일동포 스토리가 잘 알려지지 않아 공감받기 힘들 거라 우려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작품 속 가족과 사랑 이야기에 많이 호응해주셨다. 영화도 잘 공감해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야키니쿠 ...’의 한 장면.

영화 ‘야키니쿠 ...’의 한 장면.

영화에는 재일한국인이 겪은 애환이 고스란히 담겼다. 주인공 용길은 태평양전쟁에 강제 징용돼 한쪽 팔을, 제주 4·3 사건으로 돌아갈 고향까지 잃었다. 재혼해 낳은 막내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다. 정 감독은 이런 비극 속에 크고 작은 웃음을 심어놨다. ‘처절한 현실을 가장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는 연극계의 평가대로다. 영화의 대사는 90%가 일본어인데, 한국어와 일본어를 오가며 빚어내는 유머의 타이밍이 특히 절묘하다. 김상호·이정은이 부부 역할을, 마키 요코·이노우에 마오·사쿠라바 나나미가 세 딸을, 오이즈미 요가 사위를 연기하는 등 양국 배우가 한국어와 능청스런 오사카 사투리를 섞어 호흡을 맞췄다. 오사카 억양 전문 강사가 내내 촬영 현장을 지켰다고 한다.
 
주연 배우 김상호는 기자회견에서 “일본어를 잘 못 해 극 중 대사를 달달 외며 순발력을 발휘했다”며 “용길의 대사가 길어 마음을 졸이고 졸였던 롱테이크 신은 오전 9시에 촬영을 시작해 오후 4시에야 끝났다. OK를 받았을 땐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핏줄이 다른 4남매의 어머니를 연기한 이정은은 “‘직계가족’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을 때 이 영화를 만나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배우게 됐다”면서 “한 달 전 일본에서 영화 시사회가 열렸을 때 일본 배우들이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라며 연락을 해왔다. 따뜻하고 즐겁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첫 영화 연출에 대해 “촬영 기간이 1개월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하는 게 힘들었지만 꿈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93년 일본 연극계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기시다 희곡상을 수상한 그는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를 시작으로 영화 각본가로도 주목받았다. ‘피와 뼈’(2005, 최양일 감독)로는 일본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자이니치뿐 아니라 하층민, 동성애자 등 경계의 삶을 주로 그려왔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는 개막작을 시작으로 역대 최다인 46개국 246편의 영화를 12일까지 선보인다. 황금연휴 가족관객을 겨냥해 디즈니 특별전도 열린다.
 
전주=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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