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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직격 인터뷰] “JSA 영화보다 판문점 정상회담이 더 영화 같더라”

판문점회담으로 다시 화제 ‘공동경비구역 JSA’ 제작자 심재명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남북 정상은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저 먼 도보다리 위에서 둘만의 얘기를 나눴다. 전 세계에 생중계된 판문점발 ‘평화드라마’다. 이날 판문점 선언을 지켜보면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를 떠올린 이들이 많았다. 2000년 전국 관객 590만명을 모으며 반향을 일으킨 영화다. 송강호·이병헌 등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남북 병사들이 우애를 나누다가 의문의 총격 사건에 휘말리는 얘기다. 전례없이 인간의 얼굴을 한 북한군이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고, 이는 우리 사회 오래된 레드컴플렉스를 허무는 계기가 됐다.
 
2일 경기도 파주시 명필름아트센터에서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를 만났다. 남편인 이은 명필름 공동대표와 ‘JSA’를 공동 제작했다. 박찬욱 감독은 현재 영국에서 BBC 드라마를 촬영 중이다.
 
지금으로 치면 1000만 영화인 ‘JSA’는 한국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미국 영화사에 판권이 팔렸다. 심 대표는 ’아직 리메이크가 되지는 않았지만 미국-멕시코 간 국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에서 뮤지컬로도 제작이 추진 중이다. [최정동 기자]

지금으로 치면 1000만 영화인 ‘JSA’는 한국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미국 영화사에 판권이 팔렸다. 심 대표는 ’아직 리메이크가 되지는 않았지만 미국-멕시코 간 국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에서 뮤지컬로도 제작이 추진 중이다. [최정동 기자]

정상회담 날 SNS에 “오늘, 뭉클한 장면 그리고 ‘JSA’”라는 글과 영화 사진을 올렸다.
“‘JSA’ 이전 어떤 한국 영화에도 그처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병사들이 대치하는 장면이 없었다. 고작 폭 50cm,높이 5cm 짜리 분계선이다. 남북 정상이 그 분계선을 넘나드는 장면을 보면서 울컥했고, 영화가 떠올랐다.”
 
비슷한 사람이 많았는지 남양주 종합촬영소의 ‘JSA’ 판문점 세트장을 찾는 관람객이 늘었다고 한다.
“당시로는 6억원이라는 엄청난 경비를 들인 세트였다. 제작비가 너무 커서 일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고, 대신 영진위에 기증했다. 이달 말까지는 무료 공개인데, 안타깝게도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다음 달 문을 닫아서 세트장도 사라지게 된다. ‘JSA’ 시나리오 작업 중이던 1999년 6월 서해교전(1차 연평해전)이 터져서 개봉 못 하는 거 아닌가 불안했는데, 2000년 2~5월 촬영을 마치자마자 거짓말처럼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게 뭐지, 나라가 마케팅해주냐, 놀랐던 기억이 난다.”
 
‘JSA’는 이전까지와 달라진 대북관으로 주목받았다. 어떻게 기획한 영화인가.
“지금은 ‘선덕여왕’‘뿌리깊은 나무’ 등으로 유명한 박상연 작가가 1998년 발표한 소설 ‘DMZ’가 원작이다. 당시 20대 작가였다. 한 스태프가 영화화하면 좋겠다고 소개했고, 회사 모든 사람이 동의했다. 원작에선 중립국 감독위원회 책임수사관 소피(이영애)가 남성이고, 남북병사의 우애 보다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학습된 이데올로기의 세습화가 주된 테마였다. 주변에서는 망할 거라며 모두 뜯어말렸다. 박찬욱 감독이다, 군대 얘기다,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가 주연이다, 이게 이유였다(웃음). 박 감독이나 주연배우들이 그때만 해도 지금 같지 않았으니까.”
 
무모한 도전이었던가.
“박 감독은 앞서 두편의 영화가 저조했고, ‘박리다매’라는 이름으로 이무영 작가랑 시나리오 여러 개 써서 가방에 들고 다닐 때였다. 이준익 감독 영화사에서 ‘간접 리철진’의 연출자로 고려되고도 있었다. 소설을 보여줬더니 당장 하겠다고 했다. 이어지는 박 감독 영화와 색깔이 다르고 대중적이라서 ‘박 감독이 싫어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건 농담이고, 이 영화를 통해 확실히 상업감독으로 입지를 다지자는 유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박 감독, 1990년 ‘파업전야’를 만들었던 이은 대표, 그리고 나, 모두가 386세대다운 공감대가 확실했다. 총 제작비 29억, 당시로는 블럭버스터 대작이었다. 흥행 성적만 보면 명필름에게나 박 감독에게나 최고 기록이다. 오늘날의 명필름을 만든 영화, 한 집안의 가장 자랑스러운 자식 같은 영화다.”
 
흥행 이유는 뭐라고 보나.
"어떤 시대적 운과 좋은 배우들 그리고 감독의 재능이 폭발해서 우리가 의도했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영화로 완성됐다고 본다. 한민족이라면 누구에게나 분단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저희는 6·25 때 아버지 형님 두 분이 월북하셔서 우리 가족이 때만 되면 신원조회 당했던 아픔이 있다. 이은 대표도 실향민 후손이고, 누구에게나 다 그런 개인사가 있다. 그렇게 분단의 비극을 다루되 소재주의로 그치지 않고 사람과 시대를 얘기한 것, 북한(군)이 더이상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 미스테리 스릴러 화법으로 시작했다가 휴먼드라마로 마무리되는 영화적 구성의 새로움, 배우들의 빼어난 호연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당시엔 남북 병사들이 ‘형·동생’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게 말이 되냐는 지적도 있었다.
"1998년 판문점 인근 초소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 사건을 나중에 재조사하면서 비로소 남북 병사들이 서로 어울려 지낸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금기시됐고 현실로 믿기질 않았다. 한마디로 국보법 위반 상황이니까. 원작 소설이 ‘오늘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진 이유도 이건 너무 가짜다, 개연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박 감독과 연출부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JSA 병사들을 알음알음 몰래몰래 인터뷰했고, 탈북자들의 감수도 받았다. 처음엔 제목을 ‘판문점’ ‘라인’ 이런 걸로 고민하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했는데, 개봉 후 JSA 전역자 모임에서 회사를 항의 방문해서 사과 광고를 내기도 했다. ‘내가 공산주의자에 맞서 얼마나 위험하게 근무했던 곳인데 초코파이 먹고 닭싸움하는 얘기를 하다니 말이 되냐, 굉장히 명예가 훼손됐다’는 거다. 사실 1976년 판문점 미루나무 도끼만행 사건 때 거기 계셨던 분들이라면 화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또 영남대에서 인민기 달고 촬영할 때는 간첩 신고가 들어오기도 했다.”
 
송강호를 뺀 나머지 병사들이 다 죽는 결말인데, 원래 엔딩은 달랐다면서.
“감독이 제안한 엔딩은 에필로그처럼 제3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이 든 이병헌이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는 거였다. 우리는 감정의 흐름상 이병헌이 자살하는 게 맞다고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감독의 제안이 훨씬 성숙한 엔딩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결말을 바꿈으로써 이 영화의 백미인 마지막 장면이 나오게 됐다. 판문점 분계선에서 남북 병사 네 명이 경비를 서는 흑백 화면. 감독의 콘티 아이디어인데, 네 사람을 각각 촬영해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했다. 이 영화의 인증샷 같은 장면, 관객들이 굉장히 울컥하며 공감한 명장면 아닐까 한다.”
 
초코파이를 나누어 먹고, 김광석 노래를 듣는 장면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역시 영화적 설정이었는데 감독이 시나리오 단계부터 김광석 노래를 설정했다. 초코파이는 원래 맛동산인가 산도인가 다른 과자였는데, 극 중 이병헌이 ‘남으로 넘어오라’고 하니까 송강호가 베어 물던 과자를 뱉으며 ‘우리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 못 만드나’ 그런 장면이 있다. 송강호가 입에 쏙 들어가는 것보다는 큰 과자가 좋겠다고 해서 초코파이로 바뀌었다. 그땐 이 영화가 이렇게 성공할지 몰라서 초코파이 협찬을 못 받았는데, 나중에 송강호씨 일본 팬들은 초코파이로 목걸이를 만들어 주고 했다.”
 
‘JSA’가 물꼬를 튼 후 충무로에는 북한 소재 영화들이 잇따랐다.
“전쟁, 탈북자, 공작원에서 핵개발까지 소재가 엄청 확대됐고, 심지어 북한 병사는 다 잘생긴 배우가 맡고 그런다. 지난 10년 동안엔 ‘연평해전’이라든가 ‘인천상륙작전’이라든가 보수적 영화들도 많이 나왔고. 북한 관련해서는 진보·보수가 문제가 아니라 소재주의로 흐르거나 시대착오적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진짜 진보, 진짜 보수영화가 다양하게 나오면 되는 거다. 영화가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을 너무 드러내면 재미없고 교조주의가 된다. 또 영화의 영향력을 간과하고 잘못된 상식을 전달하거나 시대를 오독하는 것도 곤란하다. 영화가 사회나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관객과 걸음을 함께 하거나 반걸음 정도는 앞서 나가야 하지 않나 한다.”
 
이번 4·27 판문점 회담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란 평도 받는데, 제작자로서 영화적 상상력이 솟구치지 않나.
“그날은 최근 몇 년간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하루, 전쟁의 공포가 완벽하게 없는 특별한 날이었다. 여러 행사들이 영화처럼 잘 이어져서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드라마틱한 감정을 선사했다. 그런데 현실 정치가 몇 달 새 급변하고 있어서 제작자의 입장에선 예의 주시하지 않으면 영화 만드는 게 위험할 수 있다. 한발만 비끗하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명필름은 최근 여성주의 영화의 메카가 되고 있다. 심 대표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소장도 맡고 있고.
“2008년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이야기를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린 ‘카트’, ‘마당을 나온 암탉’, ‘환절기’ 등 여성이나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영화,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한 영화를 주고 만들고 있다. 나 스스로가 이런 영화들을 만들면서 여성주의적 시각을 체득하고 페미니스트가 돼가는 것 같다. 성평등 문제는 한창 뜨거운 남북 이슈에 가려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요원한 숙제라 생각한다. 임순례 감독과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든든’은 성폭력 문제에서부터 한국영화산업의 성평등 고취를 목표로 한다. 명필름이 23살인데 만약 명필름 브랜드가 뭐냐고 묻는다면 ‘발이 땅에 닿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어제 이은 대표랑 농담처럼 얘기하다가, 어떤 분이 자기 집을 촬영장으로 사용하라는데 우리는 재벌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해서 필요가 없다며 웃기도 했다. 하하.”  
 
심재명은 …
1963년생. 동덕여대 국문과. 80년대 영화 홍보 마케터로 출발, 95년 ‘명필름’을 창립했다. 80년대 영화운동단체 ‘장산곶매’의 이은 감독이 남편이자 명필름 공동 대표다. 96년 ‘접속’을 필두로 새로운 감성의 충무로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미국 영화잡지 버라이어티가 뽑은 ‘주목할만한 10인의 제작자’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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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