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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김정은 품듯이 남한의 절반을 품자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지난달 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이후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78%로 치솟았다. 촛불의 온기가 여전했던 1년 전 정권 초기의 지지율을 거의 회복했다. 지난 두 보수 정권을 남북교류의 ‘잃어버린 9년’으로 규정한 터라 한층 기세가 올라 보인다.
 
그런 덕분인지 문재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인 J노믹스의 기본교리들을 이행하는데 더욱 거침이 없다. ‘국가 인권정책 기본계획’ 초안에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근로시간 단축, 인권 경영 등 노동개혁안이 대거 명문화됐다. 하나같이 민감한 난제들이다. 대기업-협력사 간 동반성장을 돕는 ‘산업혁신운동’ 명목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대기업에 총 2700억원을 기부금 조로 내라고 주문했다. “전 정권의 미르·K 재단과 뭐가 다르냐”는 빈축을 샀다.
 
로또 아파트를 양산하는 부작용 말곤 효과가 의심스러운 서울 강남 아파트값 때리기 정책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탈원전 기조는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 수장의 교체를 계기로 더욱 박차를 가할 태세다. “길게 보면(In the long run) 우린 다 죽는다” 는 케인스의 말을 맹신하는 듯 과도하고 급격한 시장개입의 장기적 후유증엔 둔감해 보인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확증편향으로 자기 신념에 몰두하는 경향이 강한 쪽이 좌파다. 반대여론이 소수일 거라고 착각하기 쉽고, 엄청난 반대에 부닥쳐도 옳은 길 외로이 간다는 특유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다. 임정덕 부산대 명예교수는 ‘한국 우파가 좌파에게서 배우고 본받아야 할 것들’이란 글에서 ‘한번 믿은 건 틀려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념적 열정과 행동의 치열·집요함을 배우라고 비틀어 꼬집었다. 경제 노선의 큰 틀을 짠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J노믹스는 선전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대통령 사업 1호인 일자리 문제만 봐도 간단치 않다. 3월 실업률(4.5%)이 17년 만에 최고치였다. 17년 만에 최저 실업률을 기록한 미국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최저임금의 고율 인상 같은 과도한 친노동정책의 부작용으로 보는 전문가(김태기 고려대 교수)가 많다. ‘괜찮은 일자리’의 산실인 제조업의 경기도 바닥이다. 3월 공장가동률은 10년 전 금융위기 후 최저치, 재고율은 20년 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였다.
 
훌륭한 이상(理想)이 보상(報償)까지 보장하진 않는다. 원자력과 석탄을 멀리하는 에너지 전환정책의 선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유탄을 맞은 한국전력은 지난해 4분기, 4년여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은 생활서비스 물가를 압박하고 허약계층인 청년·노인의 비정규직 일자리부터 줄였다. 정부정책 리스크 말고도 고환율, 원자재값 상승, 보호무역 같은 대외 불확실성이 한둘 아니다. 대선 공약과 지지 기반을 지키느라 일자리 기반을 흔드는 모험이 온당한가.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전횡을 재벌 전체로 일반화하는 순간, 재벌은 손봐야 할 적폐 대상일 뿐이다. 국민감정이 다그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된다. 집중투표제 같은 상법 개정안을 다시 꺼내 들기 전에,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충격이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되지 않을지 따져보자. ‘우리만 옳다’는 진영논리는 편협한 정책을 양산한다. 정부의 정책 과신(過信)이 국민 불신(不信)을 부른다.
 
일가마저 무참히 처단한 잔혹성, 핵전쟁 공포를 키운 호전성, 천안함·연평도 만행의 도발성 등을 일단 덮어 둔 채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김정은을 품은 문 대통령이다. 남남 평화를 위해 J노믹스나 헌법 개정 등을 둘러싼 갈등을 품지 못할 까닭이 없다. “(협상을 위해) 북한을 너무 악마화하지 말자”(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는 대승적 포용력이 남북 대화의 성공비결이었다고 청와대는 자평하지 않는가. 보수 원로들, 탈원전 비판 교수협의회, 주류 경제학자, 재계의 거북한 소리까지 경청해 통합의 용광로에 녹이는 것, 문 대통령이 또 한 번 큰 박수 받을만한 일이다.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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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