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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10년 뒤엔 어쩔건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럴 줄 알았다. 제너럴모터스(GM)와 정부의 협상 말이다. 정부 관계자는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았다”지만 눈앞의 숫자는 불만족스럽다. 말이 구조조정이지 혈세 퍼주기란 비난을 들어도 싸다. 산업은행 지원금은 5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늘었다. 20대 1 차등 감자도 못 했다. 비토권은 15년에서 10년으로 줄었다. 복기해 보면 애초 이동걸 산은 회장이 “5000억원으로 15만 개 일자리를 유지하면 괜찮은 것 아니냐”며 가성비 운운할 때 결론은 나 있던 셈이다. 이동걸은 지난 정부 때 “부실기업에 국책은행 혈세는 한 푼도 지원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인물이다. 지난해 산은 회장이 되고서도 그는 소신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소신을 꺾고 가성비를 말한 데는 정부의 ‘산업적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협상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다. GM과의 협상은 고난도다. 국내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다르다. 상대가 있다. 그것도 초거대 기업이다. 국내 기업처럼 채권단이 좌지우지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미 큰 틀에서 GM의 전략-기습적 공장 폐쇄와 선거 직전 철수 압박-에 휘말린 터였다. 그런 GM을 상대로 구체적인 숫자를 얻어낸 것은 수확이다. GM 본사가 한국GM에 새로 빌려주는 2조9000억원은 연 3.46%의 변동금리를 적용한다. GM 본사의 차입금리 4~6%보다 낮다. GM이 역마진을 감수한다는 얘기다. 자산매각이나 법정관리 등에 비토권 10년을 못 박은 것도 의미가 있다. 협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구체적인 숫자다. 숫자를 적시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협상자로선 모호한 문구가 좋다. GM도 마지막까지 버틴 게 10년 비토권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GM 협상은 아쉬움과 숙제를 잔뜩 남겼다. 우선 외국인 투자 기업이 빠져나갈 때를 대비한 정부 시스템이 전혀 없다는 게 확인됐다. GM이 군산 공장 폐쇄를 밀어붙일 때까지 정부가 한 일이라곤 우왕좌왕뿐이었다. 사령탑도 없었다. 산업통상자원부·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산업은행은 물론 청와대도 제각각이었다. 막판에야 관계 부처 차관들이 보름여를 매일 만나 대책을 숙의했다.
 
앞으로가 문제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한국 탈출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정부 매뉴얼과 시스템을 갖춰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소득 3만 달러 나라가 됐다. 더 이상 싼 임금으로 경쟁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GM이 10년 잔류를 결정한 것은 한국의 자동차 부품 공급망이 아직은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10년 뒤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GM 본사가 멀쩡할지도 알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현대·기아차는 어떤가. GM처럼 잘못되면 8000억원의 10배를 쏟아부어도 힘들 수 있다. 다른 산업은 또 어떤가. 10년은커녕 5년을 갈 업종도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고도의 산업정책이 필요할 때다. 추격자 시절엔 베낄 모델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베낄 곳도 없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선진 경제일수록 기업 혼자서는 힘들다.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기업·학자·전문가의 역량을 모두 모아 산업의 밑그림을 새로 그리고 미래 산업 인프라를 빼곡히 깔아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서 첨단 기업이 나고 자랄 수 있다. 애플이 좋은 예다. “애플은 집적회로를 직접 발명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발명할 필요도, 박사급 엔지니어를 양성할 대학도, 인력과 물자를 실어 나를 비행기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일본·중국 정부와 무역협상을 할 필요도 없었다. 모두 미국 정부가 처리해줬기 때문이다.”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
 
정부가 할 일이 이것이다. 지금 당장. 자동차부터 시작하라. 그게 GM 협상의 교훈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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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