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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 구독신청

'라떼 한잔=北노동자 연봉' 김일성대 앞 커피숍만 8개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평양 입맛 사로잡는 ‘1달러 식당’ … 요리사도 스카우트 전쟁
 
평양에 외식문화가 번창하고 있다.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걸 당연시하던 데서 벗어나 어지간하면 밖에서 해결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은 도시락을 싸가는 대신 맞춤형 점심 메뉴로 해결한다. 중산층 이상의 경우 주말에 가족과 함께 고급식당을 찾는 일도 잦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도 눈길을 끈다. 평양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 중인 식도락 문화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시장경제 확산 이면을 들여다봤다.
 
평양 시내 중심가엔 요즘 ‘한 딸라’ 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1달러’의 북한식 표현인 이 식당은 점심때가 되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직장인들의 한끼 식사를 1달러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찬 4가지와 국이 딸려 나오는 메뉴는 노동당과 내각의 사무원이나 중간급 이하 간부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인근 기관이나 공장·기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자주 이용한다. 밥값은 달러로 받는다. 달러가 없을 경우엔 암달러 시세로 환산한 북한돈 7000원으로 치를 수도 있다.

 
단돈 1달러에 점심을 해결할 수 있으니 언뜻 보면 값싸게 느껴진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수준에서 보면 만만치 않은 돈이다. 북한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3000원 정도다. 공식 환율이 1달러당 150원가량이니 20달러 안팎이다. 하지만 암달러로 환산할 경우 월급이 50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점심 한 번 먹는 데 두 달 치 월급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북한돈으로 받는 월급 외에 달러 수입이나 뇌물을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북 정보 당국은 평양의 중산층 이상 4인 가구의 경우 월 200~300달러의 생활비가 드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손님이 몰리자 각급 기관에서 너도나도 식당을 차리고 유사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대북 투자사업을 벌여온 재외동포 인사는 “적지 않은 달러 수입을 챙기다 보니 북한 기관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며 “최근에는 손맛 좋은 인기 주방장을 놓고 스카우트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상업기관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소비 계층의 요구 수준에 맞춰 손님을 끌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집권 초기 평양 시내 일부 식당에서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등 매출 증대에 나섰던 것이 이젠 ‘1달러 식당’ 같은 맞춤형 서비스가 등장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말 외식을 즐기는 인구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사업가는 “평양 보통강호텔에서 1인당 200달러 안팎인 코스요리를 4인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 간부나 권력·외화벌이 기관 등에서 일하는 특권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내 식당에서 스파게티와 피자·햄버거 등 서구 음식을 즐기는 것도 익숙해졌다. 김정은 집권 초기에만 해도 ‘양풍(洋風)’이라며 꺼렸지만 이젠 스스럼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조성된 뉴타운인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에는 각종 식당이 즐비하다. 53층 주상복합 건물을 비롯한 이곳 고층빌딩에는 모두 600여 개의 식당이 들어서 성업 중이라고 한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곳이 적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과 평양에 사는 사람들 사이엔 어느 집에서 뭘 팔고, 어떤 업소가 맛집인지 입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어느 ‘닭튀기’(닭튀김의 북한식 표현) 집이 튀김옷이 바삭하고 감칠맛 나는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얘기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커피를 즐기는 문화도 퍼지고 있다. 과거엔 외교관·주재원 출신이거나 해외 유학경험이 있는 이들이 주로 호텔이나 외화식당에서 제한적으로 커피를 맛봤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학생·청년층이 커피 소비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얼마 전 김일성대 앞에 들어선 현대식 건물엔 커피숍만 무려 8개가 오픈했다”며 “평양에 불고 있는 커피 바람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문제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이곳의 경우 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5달러다. 일반 노동자의 일 년 치 급여에 해당하는 돈이다. 라떼의 경우 6~7달러에 이른다. 소식통은 “학생들에게 ‘너희 수준에서 지나친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커피 한 잔 마신다고 큰일 날 건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김일성대 입학으로 ‘가문의 영웅’이 된 자신을 위해 수십 명의 가족과 친지가 달러 용돈을 보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 북한의 커피 소비량은 극히 미약했다. 국제커피기구(ICO)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커피를 연평균 1만9000 포대(60㎏짜리) 수입했다. 1년에 평균 7잔 정도의 마시는 셈으로 한국의 약 40분의 1 수준이다.
 
그렇지만 최근 커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가격도 껑충 뛰어 과거 금릉커피숍 등 평양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400원, 찬모카(아이스모카) 900원 수준이었지만 요즘엔 시설을 현대적으로 꾸미거나 고급 원두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올려받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막대커피’(커피믹스)와 유사한 제품을 ‘삼복(三福, 김일성 3부자의 은덕을 의미)’이란 브랜드로 출시한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미 상업용 위성이 파악한 북한 장마당은 482개에 이른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적어도 26개가 새로 생겼고, 109개가 확장·리모델링했다는 게 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의 집계다. 최근엔 중국 제품의 비중이 줄어들고 북한 물품이 늘어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산의 품질이 올라가면서 주민들이 “그동안 중국이 물건도 아닌 걸 팔아먹었다”고 비난하는 분위기까지 나타났다는 것이다.
 
장마당을 거점으로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가요 등 한류문화의 유통이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한국 유명 가수의 방북 공연 실황을 담은 동영상이 가장 인기다. 김영수 교수는 “북한 당국이 금기시하는 공연 영상을 담은 새끼손톱 크기의 마이크로SD 카드를 콧구멍에 찔러 넣은 뒤 밀거래하는 속칭 ‘콧구멍 카드’ 수법도 등장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달 20일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병진 노선의 결속을 선언하고,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한다는 새 전략노선을 내놓았다. 경제난 해결로 민심을 잡으려는 포석이다. 조봉현 부소장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직후 북한 내부사정을 파악해보니 ‘장마당이 들떠있다’고 하더라”면서 “남북관계 진전과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북한 장사꾼과 ‘돈주’(장마당 유통으로 돈을 번 신흥자본가)들이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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