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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바람이 하는 대답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회의 중에 물컵을 던져도 되는 줄, 연습을 시키다가 악보를 내동댕이쳐도 되는 줄, 학생들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려도 되는 줄 알았다. 어떤 불같은 성미의 CEO는 부하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차기도 했다. 몹시 고통스러운 이 폭행을 ‘쪼인트깐다’고 하는데 그는 그 집념으로 회사를 크게 일으켜 전설적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나는 군악대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빳다’의 관행이 있었다. 취침 도중 조용한 건드림을 받는다. 즉시 일어나 막사 뒤로 나가면 거기에는 나의 동기들이 속옷 바람으로 열을 맞춰 서 있고 옷을 입은 고참병들이 둘러싸고 있다. 맞는 이유는 대개 ‘기합이 빠졌기’ 때문이다. 소리 죽여 진행되는 이 일의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그 긴장감이다. 정작 맞는 것은 순식간이다. 끝나면 ‘당분간 빳다 없이 지나가겠지’하는 안도감이 몰려와 행복한 기분까지 들곤 했다. 군대의 어쩔 수 없는 관행인 줄 알았다.
 
1980~90년대에는 음담패설(흔히 EDPS라고 불렀다)이 흔했다. 사석에서, 뒤풀이에서, 남자들 모임에서는 자주, 심지어 남녀가 같이 있는 모임에서도. 그것도 일종의 유머라고 잘하는 EDPS 구연자는 인기가 있었고, 어떤 이들은 수첩에 적어 전파하기도 했다. 잘 나가는 기업의 간부들은 회사의 법인카드로 인심을 썼다. 가족들의 외식은 물론, 친구들의 회식에서도 곧잘 그 카드를 꺼내면서 으쓱해 하곤 했다.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관습과 관행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악습, 추행들이 이뿐이랴. 한 집안에서 여성은 밥상에 같이 앉지 못하는 시절도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양반과 상놈이 있었고 노비도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잘살고 있던 사람들이 사냥 되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노예로 팔렸고 채찍을 맞았고 겁탈을 당했다. 그 노예를 사고 부리고 때리던 사람이 나쁜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그도 가족을 사랑하고 성실하고 교양도 있고 교회도 다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관습대로 살았을 뿐이다.
 
세상이 변하기는 했다. 지금은 노비도 없고 양반도 없다. 여성이 투표를 한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의무교육을 받는다. 요즈음 교수들은 성희롱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강의에 임할 수 있다. 과거에 문제없을 줄 알고 했던 성추행과 갑질로 쌓아 올렸던 명성에 치명적 손상을 입는 사람들이 언론에 보도된다.
 
관습과 관행은 무섭다. 나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 안에서 태어난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지나고 나면, 관행의 집단적 꿈에서 깨어나면 그 추함과 악함이 보이는데 지금의 나는 그것을 모른다. 스스로 의심해보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이렇게.
 
“우리는 연하의 사람에게 반말을 쓴다. 우리는 육식을 한다. 이를 위하여 가축들을 가두어 공장의 부품처럼 다루며 사육한다. 때로 살처분한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다. 집을 수십 채 가지기도 한다. 아이들을 하루 16시간 또는 그 이상 공부시킨다. 4년마다 국회의원을 뽑는다. 이 모든 일이 괜찮은 건지? 우리가 망측한 집단적 꿈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누가 아는가? 5~6세대 후의 후손들이 오늘의 주거문화와 교육제도와 정치시스템을 개탄하기를 우리가 5~6세대 전의 세도정치, 신분사회, 쇄국정책을 개탄하듯 할지. 하긴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다른 관습의 눈으로는 어이없는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우리에겐 그런 일이 없다고? 분명한 것을 다만 관습의 힘에 눌려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하거나 보여도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닐까?
 
밥 딜런이 노래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산들은 씻겨서 바다로 내려갈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은 자유를 얻게 될까? 얼마나 많이 외면한 후에야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못 본 척하지 않을까? 들어보게 친구여, 바람이 하는 대답을.” (‘Blowing in the Wind’의 2절)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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