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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김정은, 악마인가 평화의 사도인가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4·27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나는 예상 못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민낯에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잔인한 독재자라는 그는 거칠고 무식해야 마땅했다. 횡설수설하는 건 물론이고 살벌한 눈빛에 웃음기 하나 없는 굳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김 위원장은 당당한 풍채에다 논리정연하고 쾌활했으며, 농담까지 자연스레 건넬 줄 알았다. 그는 판문각 입구에 모습을 나타낼 때부터 인상적이었다.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오더니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가가 선뜻 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대뜸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는 북녘땅으로 이끄는 것 아닌가. 이런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를 지켜보던 일산 프레스센터의 내외신 기자 3000여 명 사이에선 매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선입관과 실제 느낌이 얼마나 달랐는지, 미 CNN의 관련 기사 제목이 ‘진짜 김정은 맞나?(Is Kim Jong-un for real?)’일 정도였다.
 
우리가 아는 김 위원장은 1년 전 이복형을 독살하고 2013년 고모부를 무자비하게 처형한 피에 굶주린 독재자였다. 집권 후에는 수많은 군과 당의 간부를 숙청한 냉혈한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진보 학자인 문정인 대통령 특보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한결같이 이런 충고를 한다. “김정은을 악마화하는 단선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북한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자신의 믿음과 다른 사실을 접하면 누구든 마음이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 부른다. 이런 거북함을 푸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신념과 부합하는 사실만을 골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김 위원장을 위험한 독재자라고 믿어 왔으면 그가 저지른 해악들만 진실이라고 인정하는 식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악마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눈길을 떼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는 2013년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북한 전역에 ‘경제개발구’를 만들게 해 이제 그 숫자가 20곳을 넘었다. 시장 원리를 대폭 수용하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란 제도도 도입했다.
 
물론 김 위원장을 평화의 사도처럼 분칠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이번 회담에서 아무리 다른 모습이 부각된들 독재자로서의 성향이 사라진 건 아니다. 지금도 10만 명가량의 북한 주민이 강제수용소에서 지옥 같은 삶을 이어간다.
 
무릇 독재자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카멜레온처럼 변하기도 한다.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그랬다. 2003년 그가 서방 압력에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자 ‘중동의 미친개’로 불렸던 카다피는 졸지에 평화의 사도로 변신했다. 심지어 미국은 핵을 포기하도록 북한과 이란을 설득해 달라고 카다피에게 부탁까지 한다. 하지만 이미지가 달라져도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카다피는 독재자로서의 패악질을 계속하다 결국 2011년 성난 군중들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객관적 팩트를 뒤틀어 사실과 다르게 전달하는 것만이 왜곡이 아니다. 자기 취향에 맞는 내용만 선택적으로  알려 전체 그림을 못 보게 하는 것도 왜곡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조급해진 나머지 당국이 김 위원장의 한쪽 모습만 선전한다면 이는 국민을 속이는 것과 다름없다.
 
보수든 진보든, 자신에게 불편한 진실까지 받아들이며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면 몰락의 구렁텅이로 나라를 이끌 수밖에 없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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