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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에 52시간"···기업들, 임원 운전기사 줄해고

대기업 A사는 6월 중순까지 임원 차량 운전기사를 없애기로 했다. 대표이사의 운전기사만 남기고 모두 내보낸다. 대신 대리운전 전문 회사와 계약하고 필요할 때마다 쓸 방침이다. 7월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대응책이다.
 
회사 관계자는 “운전직 대부분이 계약직이어서 계약을 해지하는 형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무기계약직은 다른 직종으로 편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무기계약직도 회사가 필요로 하는 숙련기술이 없어 자연스럽게 퇴직 절차를 밟지 않겠느냐”라고 덧붙였다.
 
금융권 대기업인 B사도 20여 명인 임원 운전기사를 1명(대표이사 차량  운전기사)을 제외하고 모두 내보내기로 했다. 임원이 자가운전을 하고, 고객 응대에 따른 술자리와 같은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는 대리운전비용을 회사가 지원하는 형태로 바꾼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7월 1일부터 시행(300인 이상)되는 근로시간 단축의 여파로 회사 운전기사 직업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제한된 근로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다. A사 관계자는 “운전기사나 수행비서는 임원의 출근에 앞서 미리 자택 등에서 대기하는 등 일찍 일을 시작하는 데다 퇴근한 뒤에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주당 3일 정도밖에 업무를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대기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대기업 C사는 운전기사를 모두 내보내진 않는다. 대신 운전기사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오전 9시~오후 6시로 제한해 시행 중이다. 나머지 시간은 대리운전을 활용토록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업의 업무 특성상 임원들이 다녀야 할 곳이 많아 이런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기업만 힘든 게 아니다. 근로자 입장에선 호주머니가 얇아진다. C사의 한 임원 운전기사는 “예전엔 야간수당이 많았는데, 그게 모두 없어졌다”며 “임원이 저녁 늦게 회식하거나 주말에 골프라도 치면 수행한 뒤 임원으로부터 별도로 받는 돈이 몇십만원은 됐는데 이것마저 없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 운전기사는 밤이면 대리운전으로 줄어드는 수입을 보충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근로자 소득은 월평균 37만7000원 감소한다. 소득이 낮은 하위계층의 소득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추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일자리가 숙련된 사람들에 의해 잠식되기 때문이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일반 근로자가 투잡에 나서면 이들이 잡는 일자리가 취약계층이 점유하고 있던 것이어서 결국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연쇄반응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독일 노동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줄수록 소득이 줄어 부업(second job)을 하는 비율이 느는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시간 주 48시간일 때는 4.3%이던 야간 부업 비율이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면 두 배가량인 7.6%로 늘어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경직적이어서 고용시장의 틀을 흔들 수 있다”며 “운전기사와 같은 직종의 소멸은 규제에 의한 고용 형태 말소라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책은 감감무소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고용청의 한 관계자는 “운전기사를 비롯한 여러 직종이나 업종에서 근로시간 단축 방안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본부(고용노동부)에서 빨리 가이드라인을 줘야 할 텐데 답답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6월까지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법 시행(7월 1일)을 코앞에 두고 내놓으면 기업으로선 준비할 시간이 없다. 근로시간 단축을 국정과제로 삼아놓고, 실태조사와 같은 준비는 안 돼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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