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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 지울 수 없는 흔적' 위안부 피해 여성 사진전 열려

이수단(B. 1922-2016) 북한 평안남도 생, 1940년, 18세, 5년간 중국 아청, 시먼즈 위안소로 동원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이수단 피해자는 당시의 상처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할 수 없었고, 2016년 95세의 나이에 홀로 경로원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다 운명을 달리했다. [사진 안세홍]

이수단(B. 1922-2016) 북한 평안남도 생, 1940년, 18세, 5년간 중국 아청, 시먼즈 위안소로 동원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이수단 피해자는 당시의 상처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할 수 없었고, 2016년 95세의 나이에 홀로 경로원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다 운명을 달리했다. [사진 안세홍]

 한국은 물론 중국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기록하고 있는 사진가 안세홍이 오는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시민청 갤러리에서 ‘겹겹-지울 수 없는 흔적’ 사진전을 연다.
 
사진가 안세홍은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중국의 오지 산시성에서부터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변방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피해 여성 90여 명을 만나 일본군이 그녀들에게 가한 만행을 생생하게 기록해 왔다.  
 
리메이진 (B.1923-) 중국 하이난성 생, 1940년, 16세, 3개월간 동원.  당시 ‘위안부’라는 말을 몰랐다. 낮에는 비행장을 만드는 일을 했고, 밤에는 다른 사람들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 5-6명의 여성들을 머물게 했다. 매일 2-3명의 일본군이 찾아왔다. [사진 안세홍]

리메이진 (B.1923-) 중국 하이난성 생, 1940년, 16세, 3개월간 동원. 당시 ‘위안부’라는 말을 몰랐다. 낮에는 비행장을 만드는 일을 했고, 밤에는 다른 사람들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 5-6명의 여성들을 머물게 했다. 매일 2-3명의 일본군이 찾아왔다. [사진 안세홍]

이사 다인테네 (B.1925-)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생, 1945년, 20세 정도, 6개월간 동원 매주 일본군 2명이 와서 데려갔다. 일본군이 화를 내며 ‘빠게로’라고 할때는 무서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6개월 후 도망쳐 네덜란드인 집에 숨어 지내다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 왔다. [사진 안세홍]

이사 다인테네 (B.1925-)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생, 1945년, 20세 정도, 6개월간 동원 매주 일본군 2명이 와서 데려갔다. 일본군이 화를 내며 ‘빠게로’라고 할때는 무서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6개월 후 도망쳐 네덜란드인 집에 숨어 지내다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 왔다. [사진 안세홍]

‘겹겹프로젝트’는 강제징집과 감금, 성폭력, 버려짐 등 일본군의 모든 만행과 반인권적인 도발이 피해자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취재에 응한 피해자들은 “일본군이 왜 나를 이렇게 했는지 알고 싶다”, “일본의 높은 사람이 직접 와서 나를 보고 사과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는데, 안 사진가는 이를 이중 통역을 통해 가까스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흑백사진으로 피해 여성들을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이번 전시는 컬러 사진으로 화려한 색채 속에서도 피해 여성들의 어두운 표정을 대비시켜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지울수 없는 흔적과 그로 인한 고통을 보여준다. 또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취재를 하며 기록해 왔던 피해 여성들의 증언 영상을 최초로 공개한다.  
 
전시 서문에서 안 사진가는 “20여년전 나눔의 집에서 처음 만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한 맺힌 눈빛과 말을 잊을 수 가 없었다. ……,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진 일본식 이름, 토막난 기억 속에서도 그녀들의 증언은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80-90대 고령이 되어버린 그녀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응어리는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루시아 루리즈 (B.1930-) 필리핀 아라얏 생, 1942년, 12세, 2개월간 동원 3명의 일본군에게 잡혀 당시 위안소로 사용하는 아랴얏 중앙 학교로 갔다. 지금도 일본말이 들릴때면 악몽에 빠진다. 일본 정부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한다. [사진 안세홍]

루시아 루리즈 (B.1930-) 필리핀 아라얏 생, 1942년, 12세, 2개월간 동원 3명의 일본군에게 잡혀 당시 위안소로 사용하는 아랴얏 중앙 학교로 갔다. 지금도 일본말이 들릴때면 악몽에 빠진다. 일본 정부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한다. [사진 안세홍]

 
마르티나 (B.1930-) 동티모르 카사바우크 생, 1942년, 12세, 3년간 동원 부모님을 협박하고 때리며 피해자를 끌고 갔다. 비슷한 시기 다른 곳에 살던 언니도 끌려갔다. 아파도 치료도 약도 안 주고, 밥만 주었다. 당시의 일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사진 안세홍]

마르티나 (B.1930-) 동티모르 카사바우크 생, 1942년, 12세, 3년간 동원 부모님을 협박하고 때리며 피해자를 끌고 갔다. 비슷한 시기 다른 곳에 살던 언니도 끌려갔다. 아파도 치료도 약도 안 주고, 밥만 주었다. 당시의 일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사진 안세홍]

또 안 사진가가는 “그녀들은 병들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인 채로 여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그녀들만의 기억과 눈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사와 인권의 문제로 부각되어야 한다.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증언은 70여년전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미래의 메시지다”고 밝혔다.  
 
박종근 기자
‘겹겹-지울수 없는 흔적’ 사진전 포스터

‘겹겹-지울수 없는 흔적’ 사진전 포스터

안세홍 사진가가 직접 만나 취재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여성들과 위안소.

안세홍 사진가가 직접 만나 취재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여성들과 위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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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