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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5·18때 200명 죽인 장본인…짐승같은 고문” 5·18가두방송 차명숙씨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30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당시의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있다. [뉴시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30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당시의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있다. [뉴시스]

 “너는 5·18때 200명을 죽였다. 너 같은 것은 수사받다 죽어도 도망갔다고 하면 그만이다.”
 
30일 광주광역시의회 브리핑룸.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고문을 당했던 차명숙(58·여)씨가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차씨는 5·18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는 가두방송을 했던 장본인이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차씨는 80년 5월 당시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받은 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차씨는 “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505보안대 지하로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며 “여성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을 줬으며, 하나의 물건에 불과했다”고 증언했다.
 
5·18 당시 숨진 희생자들의 관. 중앙포토

5·18 당시 숨진 희생자들의 관. 중앙포토

차씨는 또 “여성들의 고문받는 소리,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가혹한 폭행이 가해졌다”며 “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에서 받은 고문으로 인해 하얀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하도록 살이 터져 피가 흘러나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차씨는 “자살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 하에 30일 동안 ‘혁시갑’을 한 채 징벌방에 보내지기도 했다”며 “25㎝ 쇠줄에 묶여있는 가죽수갑을 양쪽 손목에 찬 채로 먹고 자고 볼일까지 보면서 짐승만도 못한 상태로 지냈다”고 회상했다. 혁시갑은 수갑을 채운 손을 쇠사슬로 허리에 채워둔 가죽 허리띠와 연결해 허리를 묶어놓는 기구다.
 
차씨는“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할 당시 ‘너는 200명을 죽인 장본인이니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너 같은 것들은 수사받다가 죽어도 도망갔다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여기서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시민군들을 학살한 계엄군이 차씨의방송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며 오히려 그를 가해자로 몬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30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당시의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있다. [뉴시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30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당시의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있다. [뉴시스]

차씨는 또 “고문 당시 무릎을 꿇게 한 뒤 군홧발로 밟혔고 상무대에 잡혀 온 어린 여중생, 여고생들은 책상 위에 앉혀 놓고 물을 끼얹어 가면서 어깨가 빠지도록 몽둥이로 등을 두들겨 팼다”며 “수사관들은 이미 정해진 7가지 항목을 정해놓고 자신들이 하라는 대로 시인하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그는 “80년 9월 16일 광주교도소로 이감돼 지내던 중 9월 30일 오후 5시께 교도관 세 명이 들어와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곤봉을 끼어 양쪽에서 들고 나갔다”며 “이미 한차례 고문을 받고 난 후였기 때문에 2차 고문은 더더욱 두려웠고 그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말했다.
 
80년 5월 당시 양재학원생이던 차씨는 5월 19일 계엄군에 의해 죽어가던 시민들을 본 후 가두방송에 참여했다. 차씨는 11공수여단 계엄군 병력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감행한 5월 21일 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보다가 기관원에게 붙잡혔다. 이후 505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을 거쳐 광산경찰서, 광주교도소로 끌려다니며 갖은 가혹 행위를 당했다.
 
5·18 당시 광주시민들을 폭행하는 계엄군들. 중앙포토

5·18 당시 광주시민들을 폭행하는 계엄군들. 중앙포토

차씨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뒤 철저한 진상 규명과 광주교도소 측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그는 “38년이 되도록 당시의 끔찍한 기억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18 당시 자행된 고문수사와 잔혹 행위에 대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광주교도소는 지금이라도 고문수사와 가혹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5·18을 연구하는 단체 등은 아직도 80년의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있는 여성들을 찾아내 소중한 증언을 듣고 역사적 진실로 기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30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당시의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있다. [뉴시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30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당시의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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