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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칼럼] 공존적 노사관계에 대한 상상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 4월 27일의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공존을 이상이 아닌 현실로 옮겨놓은 역사적 대전환임에 분명하다. 결국 이루어질 것은 이루어지고야 만다면, 노사관계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땅콩회항 사건’으로부터 표출된 한진 오너 일가의 갑질 행태, 삼성전자의 하청기업들에 대한 노조 탄압, 현대중공업에서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금속노조의 투쟁 등 최근에 드러나거나 진행 중인 주요 노사분쟁만 보더라도 재벌 대기업의 노사관계는 권위주의 산업화 시기에도 보기 어려웠던 모습들이다. 이제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상상해 보자.
 
노사관계 또는 고용-피용자 관계는 경제와 시장 영역에만 위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치 영역에 속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가 현재와 같은 적대적 노사관계와 인간 비하의 갑을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사실 기업은 그러한 관계를 시행해 온 행위자일 뿐 그 원천은 아니다. 훨씬 더 큰 책임은 정책과 법을 만들고 그에 바탕한 제도 운용을 통해 그러한 관계를 유지시켜 온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들에 있다.
 
현재의 노사관계하에서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하는 노동자의 헌신을 이끌어낼 수 없다. 기업이 청년들의 젊음과 창의를 바칠 수 있는 희망 직장이 될 수도 없다. 나아가 한 사회가 계약관계에서 상호성이 보장되지 않고, ‘을’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엄성이나 인격성을 부정당하며 모욕감으로 팽만한 사회가 될 때, 그리하여 대중의 분노와 그에 대한 공감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지극히 암울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렇듯 시대착오적인 구 모델을 지속하면서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 점에서 민주적 규범에 부응하며 인간적 상호성이 존중될 수 있는 노사관계 실현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사적 경제와 공적 정치에 걸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노동문제에 대해 지금까지와 같이 관치경제 방식으로 명령하듯 다룰 수는 없다. 대안의 방향은 정부가 기업 또는 사용자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노조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조건을 만드는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
 
최장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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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인정을 유도하는 인센티브의 내용은 여러 가지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특정 사안에 대한 탈규제나 기업 수익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세제 혜택 등이 그런 것이다. 필자는 이를 ‘정치적 교환’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노조를 파트너로 하는 민주적 노사관계를 진정으로 인정할 때, 노조가 기업에 협력하며 기업 이익 창출에 전력투구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여기서 정부가 할 일은 이러한 협력적, 상호공존적 노사관계가 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것과 병행해 양자의 이익이 표출되고 조정될 수 있는 정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주도해 온 사용자단체 전경련도 새로운 역할을 위해 재구성될 수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그 파트너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들 ‘정상노조(頂上勞組)’를 떠받치는 산하 노조의 조직체계가 기업별이 아닌 산별체제로 재편된다면 노동자들을 위한 대표체계는 크게 강화될 수 있다.
 
이 새로운 노사관계를 위한 혁신 프로젝트는 당연히 정부 정책을 전제로 하며, 정부 역할이 그 중심에 위치하게 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임무를 수행할 정부 기구는 다른 무엇보다 그 역할과 권한이 질적으로 바뀌고 강화된 대통령 직속 기구로서의 노사정위원회에 주어져야 할 것이다. 노동계와 기업계는 주요 사안들에서 그들 각각의 이익과 요구, 정책 대안들을 대표하기 위해 이 위원회에 들어와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직 노동자들은 물론 실업자·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노사 공존의 제도적 틀은 유럽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 즉 ‘노사(정) 공동 결정과 합의체제’를 한국 현실에 접맥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적 노사협력체제는 전국 단위뿐 아니라 그 아래 지방자치단체에 상응하는 지역 단위와 산업부문 각기에서 ‘중간 수준의 노사정 협력체제’를 확대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은 전국 수준과 개별 기업 수준 사이에 존재하는 생활 단위로서의 지역과 경제협력체계로서의 산업 부문에서 노사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을 뜻한다. 정부가 이런 공간을 열어준다면, 지역과 부문 단위 결사체들의 활동이 왕성해지며 그로 인해 노사정 협력관계의 영역과 내용도 더욱 확대되고 충실해질 수 있을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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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