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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특별 기고] 평화·통일 월계관은 끝까지 인내하는 자의 몫

이홍구 전 총리·통일원장관

이홍구 전 총리·통일원장관

올림픽이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넉 달에 걸친 긴 잔치가 일단 막을 내렸다. 지난 2월 초에 개막한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3월 중순까지 지구촌 화합의 한마당으로 성공적인 진행이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적극 참가함으로써 남북 분단을 넘어선 코리아의 다이나믹스를 과시하는 계기였다. 우리 정부와 국민, 특히 체육계가 지구촌 평화의 제전으로 올림픽을 기획하고 운영한 것은 전 세계 지구촌 이웃들의 칭찬과 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6·25 이후 세대가 만든 최신식 만남
 
 
30년 전 88서울올림픽을 동서 냉전의 막을 내리는 평화의 대제전으로 승화시켜 민주화와 세계화의 물결을 퍼트렸던 경험을 되살려서 북한 핵 문제로 야기된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로 모여들던 작년 겨울, 그 어둡고 불길한 기운을 대관령과 동해 바다의 차고 맑은 공기로 단숨에 씻어버린 평창올림픽은 한반도와 아시아 평화의 대축제로 승화되었다. 정부의 결단과 국민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 21세기 디지털시대에 걸맞게 스포츠와 예술을 접목한 평창올림픽은 한국인의 창의력을 전 세계에 뽐낼 수 있었다.
 
이러한 올림픽의 큰 잔치 와중에서 추진된 한국의 평화외교는 남북 지도자들과 특사들의 교환 및 각국 지도자들의 참여로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핵 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의 모멘텀을 자아내었고 급기야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란 획기적 만남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로 올림픽에서 시작된 평화의 잔치는 엊그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으며, 5월 예정된 북·미정상회담까지 계속될 것 같다. 다만 지난 넉 달 우리가 성공적으로 이룩한 국가적 국민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너무 길어진 잔치가 수반하는 피로감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되겠다.
 
이번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기억될만한 장면과 볼거리가 적지 않은 행사였다.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참혹한 난리로 꼽히는, 그리고 아직도 휴전상태에 놓여있는 6·25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채 공식적인 평화로의 전환을 기다리고 있는 판문점 휴전선 상에서 남북의 두 지도자가 악수를 나누는 역사의 드라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6·25세대보다는 한 두세대 젊은 세대들이 주역이 되어 최신식으로 기획한 만남의 효과는 대단하였다. 오후 세 시 반이 넘어 단둘이 산책하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도보다리 위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렇듯 국민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그림에 비하여 회담 후 발표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은 안티 클라이맥스라고 할까, 우리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던 외국인들에게조차 다소 실망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았다.
 
 
너무 길고 기대 못 미친 판문점선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환송공연이 끝난 뒤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환송공연이 끝난 뒤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선언문은 남북 양측이 원하는 것을 두루 포함하려니 어쩔 수 없는 결과라 해도 그 내용이 너무 길다. 3000명이 넘는 국내외 보도진들이 가장 기다린 것은 김 위원장 스스로의 비핵화 결심과 그에 따른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협상에 임하겠다는 의사를 직접 듣는 것이었다. 이미 정의용 한국특사나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의 의사를 확인하였다지만, 국민이나 미디어의 본능적 바램은 정치 지도자의 육성 공약을 직접 듣고 싶은 것이었다. 평화체제나 긴장 완화 및 휴전협정 문제는 모두 북한 비핵화 결정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북한 비핵화에 대한 결의와 책임감을 직접 표명하는 드라마를 기다렸던 것이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선언 말미에 겨우 끼어든 듯 포함된 구절만으로는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부족하고 확실성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미국이나 한국의 특사들에게 말했다는 확실한 비핵화 의지의 표현을 판문점에서는 자제한 것이 아마도 곧 있을 북·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북한 비핵화와 보상체제 내용에 대한 본격적 협상준비를 감안해서일까, 하고 추측할 수는 있다. 사실, 비핵화 검증은 핵무기 개발에 못지않은 기술적·재정적 투자가 필요한 작업이다. 아카시  야스시(明石康)  전 UN사무차장에 의하면 이라크 핵사찰 문제가 제기되었을 당시에야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UN도 사찰조직을 만들었다고 한다. 5월 중순으로 예정된 워싱턴 한·미정상회의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회담을 마친 문 대통령의 의견을 세심하게 경청할 것이며, 북·미정상회담에선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들은 문 대통령의 권고를 참고하리라고 짐작된다. 역시 5월 중순 예정인 도쿄에서의 한·중·일정상회담에서도 북한 비핵화 문제는 중요한 관심사로 논의될 것이다. 북한 핵 문제는 동아시아 핵확산 문제라는 측면이 있기에 삼국 간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직접 비핵화 결심 밝혔어야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항들이 지난 11년간 집행되지 못한 데 대한 남북의 반성과 책임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적절한 지적이다. 다만 11년 전의 합의뿐 아니라 46년 전의 7·4공동성명, 특히 26년 전인 1991년과 92년에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은 남북평화체제의 제도화나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그의 비핵화 결심이 “선대의 유훈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남북 쌍방이 과거에 만들었던 적절한 합의에도 새롭게 활력을 불어넣는 민족적 지혜를 발동시켜 주었으면 한다. “하나의 민족공동체, 두 개의 정부체제”가 통일로 향하여 평화적으로 공존공영하며 함께 노력하기를 4반세기 전인 1992년 우리는 이미 합의하였었지 않은가.
 
오랜 세월 동안 국내 사정과 국제 정세는 꼬일 대로 꼬이며 엉킨 결과가 분단과 전쟁이었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이를 말끔히 풀어낼 수 있겠는가.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선 우여곡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올림픽의 꽃인 월계관이 인내와 긴장을 끝까지 지켜가는 자에게 돌아가는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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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