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보수의 반대말은 진보가 아니다"

보수의 반대말은 진보가 아니다
보수는 급진주의, 전체주의에 반대한다


[김환영의 책과 사람]  
(3) 《보수의 정신》 우리말로 옮긴 이재학 번역가 인터뷰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보수는 결코…
독재나 재벌 옹호하는 사상 아니다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 경제
 
보수주의는∙∙∙
“인간은 대단히 불완전한 존재여서
지상낙원을 지구상에 구현할 방법이 없으니까  
조금씩 노력해 더 나은 사회를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그런 생각이다"


또 보수주의는…
“이 지구와 대한민국은 
조상들이 살았고,  
후손들이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는 땅이나 나라인 듯이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여러 측면에서  
충분히 겸손하고 숙고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보수의 정신: 버크에서 엘리엇까지 러셀 커크 지음, 이재학 옮김, 지식노마드

보수의 정신: 버크에서 엘리엇까지 러셀 커크 지음, 이재학 옮김, 지식노마드

우리나라 보수주의는 위기에 빠졌다. 부인하기 힘들다. 상당수 댓글인들이 ‘진짜 보수는 민주당이다’라며, ‘진정한 보수 정당인 민주당과 정의당이 보수∙진보 양당 정치를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위기에서 탈출하는 한 가지 방법은 ‘원전(原典)’, 즉 “기준이 되는 본디의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위기에 빠졌을 때 루터(1483~1546)가 제시한 해법은 ‘오직 성경’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원전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루터의 주장은 개신교회를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보수의 위기 탈출 또한 원전 다시 읽기에서 출발해야 할지 모른다. 영국 정치가∙사상가 버크(1729~1797)의 《프랑스 혁명론》을 다시 읽어야 한다. 65년 전에 미국 보수주의를 살린 《보수의 정신》을 읽을 필요가 있다.  
 

관련 기사  
“누가 보수를 어리석다고 말하는가
 
《보수의 정신》을 우리말로 옮긴 이재학 번역가를 인터뷰했다. 
다음이 요지다.


- 굉장히 중요한 보수주의 문헌이다. 한국에는 출간 65년 만에 나온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왜 이 책이 그동안 번역이 안 됐고 소개가 안 됐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굉장히 만만치 않은 책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번역하면서 구글(Google) 검색의 덕을 굉장히 많이 봤다. 책에서 인용되었던 모든 원서를 구글을 통해서 영인본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번역이 가능했다. 서구 문화와 역사, 종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옛날 분들이 이 책을 번역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만큼의 지식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저자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지식과 이해가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가 그분들보다 더 낫다는 게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와서 구글이라는 문명의 이기의 도움을 받아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책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읽은 다음에 상당히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번역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봉착할 때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많이 했다. 끝까지 다 번역한 뒤 다시 읽으면서 저 자신 대단한 성취감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 한 단락으로 책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역자 서문에서 썼는데, 보수주의라는 것이 독재나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생각은 아니다. 어떤 일관된 논리체계가 있는 이념도 아니다. 보수주의를 굳이 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은 대단히 불완전한 존재여서 지상낙원이나 천국을 지구상에 구현할 방법이 없으니까 조금씩 노력해서 더 나은 사회를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그런 생각이다. 동시에 이 지구와 대한민국은 조상들이 살았고, 후손들이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는 땅이나 나라인 듯이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여러 측면에서 충분히 겸손하고 숙고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 보수주의가 독재나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상은 아니지만 뭔가를 대변한다. 대략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즉 민주적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대변하는 사상인가?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자유, 그러니까 남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최대한의 자유, 동시에 그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소유권을 인정하고 지키자는 게 보수주의이다. 달리 말하자면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지키자는 게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라고 볼 수 있겠다.”
 
- 나라마다 보수가 다르다. 한국의 보수와 미국의 보수는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
“어려운 질문이다. 결국 보수주의는 어느 나라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의 기본 정신은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특수성은 있다. 우리나라는 태어날 때, 아주 운이 좋게도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주어졌다. 그냥 받았다. 근데 뿌리가 없는 채로 받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왜곡들이 일어났다. 그런 왜곡들이 일어났던 상황에서 보수주의를 얘기하니까 그 왜곡된 자유와 시장경제를 지키자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왜곡된 자유와 시장경제가 아니라 원래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지키자는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같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미국도 사정이 나름대로 있긴 하고 나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다.”


- 보수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하면, 진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안 한다는 것인가? 어차피 진보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하자는 거 아닌가?
“진보라는 것을 정확히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보수의 정신》에서 보수주의와 대립하는 것은 급진주의와 전체주의 사상이다. 진보와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 당시 미국도 보수주의가 진보의 공세에 밀렸기에 저자도 이 책의 원래 제목을 <보수의 참패>라고 지었다고 한다. 오늘의 한국 보수 또한 수세다.
“제가 현실정치에 관해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아직도 보수가 무엇인지, 우리가 뭘 지켜야 할 것인지를 다져야 할 시기인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도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공유 가치가 없는 것 같고, 그런 부분에서는 조금 다지는 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국의 보수가 재결집하고 건강하게 되려면, <한국 보수의 정신>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 책 <보수의 정신>이 나오면서 미국의 보수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고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도 극찬했다고 하니까.
“말의 취지가 충분히 이해된다. 저는 이 책이 우리 사회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는 참고문헌(reference)이 되고 준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즐겁게 몰두해 읽었는데, 사실은 우리나라의 보수 정신은 새롭게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가꿔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consensus)가 아직은 없기에 찾고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어디서 주어진 그대로는 곤란할 것이다.”
이재학 번역가

이재학 번역가

- 보수나 진보나 계속 진화하는 것 같은데, 이 책의 저자 러셀 커크가 정의한 보수주의의 핵심 중에는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이 있다. 21세기의 미국 보수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듯하다.
“21세기는 무신론적인 세계관이 지배하고, 종교가 서구에서 쇠락하는 과정이고, 우리도 사실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월적 질서'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재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기독교적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여러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 인용하는 어빙 배빗의 보수주의를 보게 되면 불교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초월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인간은 고매한 가치를 지향하는 존재여야지 육체적인 만족이나 충족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가장 핵심이니까 여기에 치중하다 보면 정신적인 가치나 도덕이라든지 참된 삶이라든지 참된 의미라든지 이런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미국에서 오랜 목회 생활을 하다 귀국하신 목사님이 말하기를 트럼프에게 표를 준 많은 유권자가 "트럼프의 행실이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후보가 지향하는 바는 옳기에 대거 지지해주었다"고 한다. 보수주의 사상에서 종교성이 잠복해 있다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다시 부상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근데 신이냐 인간이냐 하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다.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굉장히 미흡하고 불완전하고 유혹에 약하고 나약한 존재이고,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너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으로 가니까, 말하자면 인간이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고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동안 신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인간이 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 것에 대한 반동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저자의 말을 보면 “인류라는 종은 현명하지만, 개인은 바보다”라는 말이 있는데 반대도 가능한 것 같다. 인류라는 종은 어떤 때는 굉장히 바보같이 독재나 전체주의에 휩쓸리지만, 오히려 개인이나 소수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게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인류는 전통, 관습, 내려오는 역사 이런 걸 지칭하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인간이 다 달리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이냐에 대한 판단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전체주의에서는 단순하게 인간이 의식주만 해결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인간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다 다르고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저마다의 능력과 가치에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 보수의 정신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 종교성도 잠복하여 있다가 이슈로 등장하는 것을 봐서, 한국의 보수주의도 반공과 친재벌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잠복하여 있는 이것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반공과 친재벌이 보수의 핵심이 아닐까?
“제 개인적인 생각을 차치하고라도, 러셀 커크의 보수주의는 그렇지 않다. 저자는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친대기업적이지도 않다. 러셀 커크의 보수주의는 공동체(community) 기반의 보수주의다. 즉 소규모의 공동체가 화목하게 잘사는 게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다. 미국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행위도 보수주의가 아니다. 국가마다 저마다의 가치가 있고 이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 보수도 진화하고 진보도 진화한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시장 보수주의도 생기고, 미국의 가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자는 네오콘도 나왔다. 한국도 새로운 보수주의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보수주의도 뭔가를 지키는 것이지만 변화를 할 때는 변화를 따라가야지 무조건 고집만 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도 생각한다. 다양한 보수주의가 있으니까. 한국적 보수주의도 새롭게 정립하고 내용을 찾아내어서 다듬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과거의 왜곡되었던 가치를 지키자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개발하고 발견하고 가꿔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는 앞으로도 더 발전해나가야 하고 더 커져야 한다.”


-번역하면서 영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에서 막힐 때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쉽게 답을 해주었나?
“그들도 잘 모른다. 같이 구글링을 하면서 찾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탑골공원에 가면 아직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라고 무심하게 써놓았을 때 한글을 아는 외국인이 여기서 무슨 의미와 함의를 느낄 것인가 생각할 때 나도 똑같은 걸 느꼈다. 에드먼드 버크의 고향 더블린에 갔더니 ‘북쪽 파르넬 광장 근처에서는 오늘날의 웅변가들이 큰 거리에 맞서 작은 거리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확성기로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했다. 결국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표현은 예이츠의 시 구절이더라. ‘큰 거리에 맞서 작은 거리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라는 표현은 대영제국에 맞서 아일랜드의 독립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느냐는 의미다. 이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어 애를 먹었는데, 저자가 시를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니 사람이니까 예이츠의 시 구절을 그냥 상식적으로 썼던 거지만, 다른 네이티브 스피커도 잘 모르고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도 잘 모르더라. 결국 나중에 알게 되어서 의미를 밝힐 수 있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 65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예이츠의 시를 다 아는데, 미국도 지금 덤 다운(dumb down)된 측면이 있는 게 아닌가?
“인문 교육이 아닌 실용적 교육만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줄 말은?
“열심히 번역했다. 잘 읽어봐 달라. 많이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특히 요즘처럼 정치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럽고, 정치적으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정치적 견해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한번쯤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