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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남성미

시계박람회 ‘바젤 월드’에서 엿본 신제품 트렌드: 다이버 시계
지난달 22일 오전 9시 스위스 바젤의 국제박람회장 메세플라자. 입구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댔다. 세계 최대의 시계·주얼리 박람회 ‘바젤 월드’를 보러 온 인파였다. 줄을 길게 선 끝에 겨우 박람회장으로 입장한 순간, 눈앞에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불케 하는 3~4층 건물 규모의 거대한 시계 브랜드 부스들이 위용을 뽐내며 손님을 맞았다.  

 
올해로 101주년을 맞은 바젤 월드는 세계 시계업계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행사다. 블랑팡·브레게·오메가 등이 속해 있는 스와치 그룹의 브랜드부터 시작해 파텍 필립·롤렉스 등 유명 시계 전문 브랜드, 샤넬·구찌 등 패션 브랜드까지 650여 개의 내로라하는 시계업체들이 이곳에서 그 해의 새로운 시계와 신기술을 공개한다. 패션으로 치면 그해의 비즈니스를 책임질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는 컬렉션 쇼다. 그 현장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올해 바젤월드에 등장한 오이스터 퍼페츄얼 롤렉스 딥씨

올해 바젤월드에 등장한 오이스터 퍼페츄얼 롤렉스 딥씨

깊은 바닷속에서 영감을 받다
현장에는 첨단 보석 및 금속 세공 기술로 무장한 예술 작품에 버금가는 시계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이버 시계’였다. 다이버 시계란 말 그대로 잠수부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을 뜻한다. 이 특수한 기능의 시계를 놓고 올해는 브랜드마다 부스 전면에 내세우거나 새 모델을 등장시키며 힘을 실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블랑팡이었다. 1950년대 일반인용 제품을 처음 출시해 “다이버 시계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고 평가받았던 ‘피프티 패덤즈’의 2018년 버전이 새로 나온 것. 몇 년에 한 번씩 부정기적으로 나오다가 이번에 새 모델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롤렉스 역시 다이버 시계 ‘딥씨’에 심해의 색에서 영감을 받은 다이얼을 장착하고 케이스 옆면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델을 공개했다.  
 
오메가는 숀 코너리에서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영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의 시계로 등장했던 ‘오메가 씨마스터 300M’의 새 모델을 내놨다. 오리스는 세 개의 다이빙 컬렉션 중 두 개(프로다이버·다이버65)의 컬렉션에서 새 모델을 선보였다. 일본 시계 세이코는 1968년과 78년에 출시했던 다이버 시계 모델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복각시계들을 만들어 부스 전면을 장식했다.  
 
50년대 잠수부 생명 지키기 위해 제작
다이버 시계의 시작은 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다이버 시계는 36년 이탈리아 시계 제작자였던 귀도 파네라이가 이탈리아 왕실 해군의 요청으로 만든 ‘라디오미르’로 알려져 있다. 오메가가 125m 방수 기능을 담은 ‘마린’을 선보인 것이 더 먼저이긴 했지만, 현대식 다이버 시계의 외형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내줬다.  
 
1953년 출시한 최초의 롤렉스 서브마리너

1953년 출시한 최초의 롤렉스 서브마리너

다만 파네라이 라디오미르의 경우 민간에 공개되지 않고 군용으로만 사용됐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최초의 다이버 시계는 50년대 만들어진 블랑팡의 ‘피프티 패덤즈’와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꼽을 수 있다.  
 
다이버 시계라는 수식어를 붙이자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30기압 이상에서 시계가 버틸 수 있는 방수성과 내구성이다. 깊은 바닷속에서도 시계 안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고, 또 수압으로 인해 부서지지 않아야 하는 게 기본 조건이다. 시계에 표시된 300m·1000m의 표시는 각각 30기압·100기압의 압력에서도 시계 안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방수 효과를 나타낸다.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이외에 회전 잠금식 크라운(용두)이나 바늘·숫자에 야광 표시가 되어 있어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이 있지만, 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다이버 시계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외형적 특징은 분명하다. 숫자 10~50까지 다섯 개의 십 단위 숫자가 적힌 베젤(케이스와 유리를 고정하는 링)이다. 잠수 시간을 표시하는 장치로, 잠수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숫자 0이 있어야 할 자리엔 어두운 심해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형광 물질로 칠한 점이 찍혀 있다.  
 
베젤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돌아가도록 만든 것 또한 다이버 시계의 특징이다. 이는 베젤이 양쪽으로 움직일 경우 실수로라도 베젤을 건드려 미리 측정해 놓았던 잠수시간과 차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복잡한 기계의 멋을 극대화하다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

시계업계에서는 다이버 시계처럼 특수한 사용자를 위해 만들어진 시계를 ‘프로페셔널 시계’라 칭한다. 잠수부를 위한 다이버 시계 외에도 비행기 조종사를 위한 항공 시계, 자동차경주 선수를 위한 레이싱 시계 등이 있다. 항공 시계의 경우는 시각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다이얼 크기를 크게 만들고, 여러 곳의 시각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GMT 기능을 넣는다. 레이싱 시계에는 경주에서의 정확한 시간 측정을 위한 크로노그래프(1초 이하의 시간을 측정하는 기능)를 장착한다.  
 
이런 프로페셔널 시계 중에서 처음 대중에게 인기를 끈 것은 항공시계였다. 스와치 그룹의 박경원 이사는 “2000년대 초반 남성들 사이에 복잡한 기능과 기술을 가진 시계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며 항공시계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당시 시계의 역할이 시간 측정의 기능을 넘어 자신의 멋과 취향을 표현하는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예물시계로 인기를 끌던 클래식한 드레스 시계와는 다른 시계를 차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특수 기능을 가진 시계들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IWC, 브라이틀링으로 대표되는 항공시계가 그 첫 번째 ‘일탈’이었던 셈이다.  
 
1978년에 출시했던 쿼츠 다이버 시계를 복각한 세이코 S23626

1978년에 출시했던 쿼츠 다이버 시계를 복각한 세이코 S23626

이후 레이싱 시계까지 관심이 확산되더니 최근 2~3년 전부터는 다이버 시계로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패션지 아레나의 성범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롤렉스 서브마리너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고급 브랜드의 다이버 시계뿐 아니라 다이버 시계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문 잠수부에게 인기가 높은 세이코의 경우 2017년 초부터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다이버 시계의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세이코 마케팅팀 김기준 차장은 “올해 초 한정판 다이버 시계 모델 2종을 새로 출시했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완판됐다”고 말했다.  
 
다이버 시계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친다. 일단 지극히 남성적이다. 크고 묵직한 모양새에 스포티한 디자인이 강인함을 뿜어낸다. 스포티한 애슬레저와 투박한 ‘어글리 패션’이 주도하고 있는 요즘 패션 트렌드와도 딱 잘 맞는다. 어디 이뿐인가. 방수 기능과 내구성도 좋아 고급 시계일지라도 실생활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찰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김욱 미림시계(오리스 국내 수입·유통사) 대표가 “어떤 환경에서 착용해도 문제가 없는, 어떤 종류의 시계보다 실용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바젤(스위스) 글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  사진 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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