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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물결로 바다의 태동을 전하다

밀라노 시립 아쿠아리움 초대전, 사진작가 구본창
 
이탈리아 밀라노시의 초청으로 시립 아쿠아리움에서 ‘ACQUA·WATER·물’(4월 12일~5월 9일) 전시를 시작한 사진작가 구본창

이탈리아 밀라노시의 초청으로 시립 아쿠아리움에서 ‘ACQUA·WATER·물’(4월 12일~5월 9일) 전시를 시작한 사진작가 구본창

사진작가 구본창(65)이 이탈리아 밀라노시의 초청으로 한 달간의 전시를 시작했다. 밀라노 시립 아쿠아리움 전시장에서 지난 12일 개막한 ‘ACQUA·WATER·물’(5월 9일까지)이다. 이곳은 1906년 밀라노 국제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전형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물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아쿠아리움이다. 밀라노에서 일 년 중 가장 많은 전시와 이벤트가 열리고 전세계에서 관람객들이 밀려드는 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 Milano·4월 18~22일)와 아트페어(MIART·4월 13~15일) 기간에 밀라노시에 의해 가장 중요한 사이트 중 한 곳을 차지하며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인정받은 셈이다.  
 
뿐만 아니다. 밀라노 자연사박물관 소장품을 촬영한 뒤 이를 전시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구 작가에게 이를 요청한 사람은 밀라노 시의 모든 박물관 기획을 관장하는 총괄 디렉터 도메니코 피라이나(Domenico Piraina)다.  
 
이들은 왜 구본창 작가를 주목한 것일까. 중앙SUNDAY S매거진이 시립 아쿠아리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와 개막식에 참석하고, 구 작가와 자연사 박물관 답사도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에도 2층 전시장은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정육면체 상자 벽에 각각 투영된 네 개의 영상과 마주쳤다. 나전 조각 같은 은은하게 반짝이는 선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으니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었다. 자세히 보니 파도 치는 바다의 영상을 상하좌우로 반복하고 뒤집어서 만든, 움직이는 데칼코마니였다. 4개의 다른 색상, 다른 움직임의 이 영상 데칼코마니는 동서남북과 춘하추동을 나타내듯 한 면에 한 작품씩 걸려있었다. 구 작가가 간담회에서 얘기한 “장엄한 바다의 리드미컬한 박동이자 경이로운 맥박”이었다.  
 
철 구조물로 된 유리창 천장에서 늘어뜨린 거대한 흑백 물결사진이 공간을 구분했다. 천에 프린트를 한 덕분에 뒷면에서 봐도 물결무늬가 드러났다. 왼쪽 벽면에는 수면의 물결무늬가 서로 다른 세 개의 흑백 사진이, 오른쪽에는 산호와 물고기를 청녹색으로 프린트한 ‘굿바이 파라다이스’ 연작이 소개됐다. 수족관이라는 공간에 걸맞는 주제와 내용이었다. 투명 청사진을 여럿 포개 재인쇄한 듯한 작품 안에서 물고기들은 자유롭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혼돈의 사회에서 탈피하고자 몸부림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느껴졌다.  
 
이탈리아 밀라노 시립 아쿠아리움에서 전시를 시작한 사진작가 구본창의 작품 ‘Ocean 06-1’(2002), Printed on Cotton, 325 x 250 cm, 사진 구본창

이탈리아 밀라노 시립 아쿠아리움에서 전시를 시작한 사진작가 구본창의 작품 ‘Ocean 06-1’(2002), Printed on Cotton, 325 x 250 cm, 사진 구본창

제주부터 동해까지 10년 간의 바다 담아
어떻게 성사된 프로젝트인가.  
“2014년 밀라노 10 꼬르소 꼬모 2층에 있는 카를라 소차니 갤러리와 밀라노 사진전시회(MIA) 등을 통해 나의 백자와 비누, 물 작품이 소개됐다. 현지에서 이 일을 추진해온 아카 스튜디오의 정호진 대표를 통해 아쿠아리움 담당자가 공간에 걸맞는 주제와 전시를 요청했다. 원래 물에 관심이 많아 이 주제의 작품을 여러 점 갖고 있었는데, 영상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만들었다.”  
‘Good-bye Paradise Green 01’(2018), Archival Pigment Print, 75 x 57.5 cm 19C 생물 도감을 이용해 포토그램 기법으로 제작했다.

‘Good-bye Paradise Green 01’(2018), Archival Pigment Print, 75 x 57.5 cm 19C 생물 도감을 이용해 포토그램 기법으로 제작했다.

 
영상 작품은 처음 선보인 것으로 아는데.  
“사실 20년 전에 한 번 시도했다. 공교롭게 그때도 물을 찍었다. 그래서 ‘잘됐다. 그 작품들을 이번에 보여주면 되겠다’ 생각하고 필름을 돌려봤는데, 20년 전과 지금의 기술 차이 때문에 영상을 재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전하는 마음으로 새로 찍었다.”
 
어느 바다에서 촬영했나.  
“영상은 제주도 중문, 흑백사진은 제주도와 동해와 일본 등에서 찍었다. 사실 이곳저곳 여행을 하면서 잔잔한 바다 사진을 많이 찍어놨다. 수면의 고요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해변에서 바람이 적당히 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당한 때에 셔터를 누른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물 작업을 이번에서 한꺼번에 정리해 보여줄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Good-bye Paradise Green 02’(2018), Archival Pigment Print, 75 x 57.5 cm

‘Good-bye Paradise Green 02’(2018), Archival Pigment Print, 75 x 57.5 cm

물의 단순한 움직임을 움직이는 데칼코마니 스타일로 만든 아이디어가 놀랍다.  
“작품에 테크닉을 많이 사용하기보다 자연 그대로를 담아 보여주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바다의 움직임을 그대로 찍긴 했지만 물결 움직임만 보여주려니 너무 단순해서, 어떻게 하면 더 몽환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평소에 물이 지구의 자궁,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해 왔다. 해변에 파도가 치는 단순한 장면을 상하좌우로 뒤집어 보니 마치 태동이 느껴지는 듯 했다. 좌우 대칭을 이루는 데칼코마니의 형태가 그런 원천적 느낌을 많이 주는 것 같다.”  
 
영상 색상이 다 다르던데 촬영 시간이 달랐나.  
“주황색은 여명이 시작되는 시간에, 어두운 색은 석양 무렵 찍었다. 모래에 부딪혀 반짝이는 햇살을 찍었는데 반복하다 보니 파도가 치는 것이 아니라 샘이 솟아나는 듯한 느낌이 나더라.”  
영상작품 ‘Wave 01’(2017), HD 1-Channel Video(10:30)

영상작품 ‘Wave 01’(2017), HD 1-Channel Video(10:30)

 
촬영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작품을 통해 남들에게도 똑같이 전달된다고 생각하나.  
“항상 그러려고 노력한다. 작품은 전시하지 않더라도 모니터나 잡지로 보여줄 수 있지만, 감정은 작품 내용뿐 아니라 프린트된 크기, 전시 공간을 통해서도 다양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전시에서는 조화로운 공간 디자인이 아주 중요하다. 사진들이 제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각 작품이 놓인 위치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다.  
 
아쿠아리움이라는 공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타원형인데다 천장과 벽의 많은 부분이 유리여서 공간 디자인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보내온 사진만으로는 부족해 지난 1월 직접 와서 눈으로 확인한 후, 벽을 따로 만들고 작품을 걸었다. 입구 바로 앞에 디지털 영상 4개를 설치한 큰 박스도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들었다.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왔기에 중앙에 커다란 물결사진을 늘어뜨려 공간을 구분하고 압도감을 느끼게 했다. 좌우에 따로 만든 벽이 가상의 사각 벽을 만들어 주었기에 작품에 집중이 가능해졌다. 뒤쪽 공간에는 잔잔한 물결사진을 걸어 은밀하지만 고요한 느낌으로 마무리했다. 관람자들의 동선을 미리 예측해 기승전결을 보여주며 스토리 텔링을 하고 싶었고, 결과에 만족한다.”  
영상작품 ‘Wave 02’(2017). HD 1-Channel Video(10:00)

영상작품 ‘Wave 02’(2017). HD 1-Channel Video(10:00)

 
써서 작아진 비누처럼 흔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물건에 애정을 갖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평범해보이는 것들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었다. 당연하고 익숙하게 생각되는 것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은 삶의 주변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다. 작품으로 찍은 비누들은 모두 내가 사용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단순한 비누조각이 아니라 나의 시간, 나의 손이 수 백번 거쳐간 내 역사의 일부다.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요즘 스마트폰에는 성능 좋은 카메라 기능이 들어있어 누구나 작가처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작가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책도 1인 출판이 가능한 시대다. 재주있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아니라도 직접 찍은 사진과 글, 편집 능력으로 책을 출판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더 심해지겠지만, 결국 재주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것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필름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현상하기 전까지는 결과를 알 수 없어 사진작가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셔터를 누를 때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며칠 뒤 결과가 나오면 감동하곤 했는데, 요즘은 현상이라는 과정이 사라지면서 신비감이 없어졌다.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작가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Ocean 02-1’(1999), Archival Pigment Print,130 x 100 cm

‘Ocean 02-1’(1999), Archival Pigment Print,130 x 100 cm

그래서인지 수동 카메라를 선호하는 사진 작가가 아직 많은 것 같다.  
“작가들의 작품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처럼 모니터에서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작가들의 작품은 어디엔가 걸려야 하고 공간에서 어떻게 연출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하면 작은 것은 괜찮지만 크게 인화하면 입자가 거칠어지고 의도한 효과를 얻기 힘들다. 작품으로 남기고 싶을 때는 프린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전문 카메라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현 추세라면 수년 안에 프린트를 하지 않고 벽면 모니터에 영상을 띄워 만족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지만.”
 
현재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나.    
“요즘은 금으로 만든 앤틱제품, 화석처럼 세월이 느껴지지만 흔적만 남아있는 것들에 관심이 간다. 왔다갔다 하며 모래에 흔적을 남겨놓는 파도도 같은 맥락이겠지. 밀라노 자연사박물관 프로젝트도 유리관 안에서 쓸쓸히 방문객을 기다리는 역사의 귀한 흔적들을 내 나름의 시각으로 풀어달라는 요청 아닐까 싶다.”  
‘Ocean 03-1’(1999), Archival Pigment Print,130 x 100 cm

‘Ocean 03-1’(1999), Archival Pigment Print,130 x 100 cm

 
밀라노 자연사박물관 소장품 촬영 프로젝트도 맡아
다음날 오전 밀라노 자연사박물관. 박물관 담당자가 일행을 안내했다. 구 작가는 거대한 식물의 화석 등 관심 있는 소장품을 발견했을 땐 꼬치꼬치 질문하며 기록용 사진을 찍었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지하 자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자료실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자료들이 보관되어있었다. 구 작가는 식물 표본을 스크랩하여 자세한 정보를 꼼꼼히 기재해놓은 자료들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며 기록용 사진을 연거푸 찍었다. 특히 19세기 밀라노에 거주하던 오스트리아 왕족이 남기고 간 방대한 양의 나무 표본 상자 앞에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물 박제본을 만드는 작업실을 방문했을 땐, 마침 죽은 치타의 박제본을 만들고 있는 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박제 제작 과정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뼈에 대해 물어보던 구 작가는 머리에 침을 박아 고정한 작은 새의 박제를 발견하자 즉석에서 화이트 보드를 구해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며 기록용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죽어있는 물체에 어떤 생명력을 부여할지, 2년 뒤에나 열릴 것 같다는 그의 전시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밀라노(이탈리아)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통신원  사진 구본창 작가·아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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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