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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알고 싶은 가게들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통영을 여행삼아 다닐 때 ㅂ서점에 들러 책을 사곤했다. 자연스레 책방 지기와 친해졌다. 통영에 집을 사고 공사하면서 더욱 자주 만났는데, 알고 보니 ‘파티 피플’이었다. 저녁에 ㅅ카페에서 ‘커피 콘서트’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별다른 일도 없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귈 겸 카페를 찾았다. 그 뒤로 ㅅ카페는 단골이 되었고 카페 사장은 둘도 없는 통영 동생이 되었다.  
 
파티 피플, 카페 사장, 그 뒤로 알게 된 통영 동생 ㅌ와 함께 ㅎ호프를 찾았다. ㅌ는 통영 토박이로 맛에 일가견이 있었다. 단순히 맛집만 찾아가는 게 아니라 어머니를 도와 굴을 까거나 밤 바닷가에서 직접 해삼을 잡기도 했다. 수렵·채취부터 조리와 맛 평가까지 해내는 보기 드문 미식가였다. 최근 기막힌 술집을 찾아냈다는 말은 이미 들은 터였다. 함께 차를 몰고 정량동 동호포구 뒷골목으로 향했다.  
 
일제 강점기에 지은 적산가옥들이 싸구려 외장과 간판 사이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살아있었다. 골목에는 작은 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칸막이가 높은 걸로 봐서 한때 맥주를 짝으로 팔던 집이었으리라. 주간 커피, 야간 맥주ㆍ양주를 써붙인 일명 ‘방석집’이라 불리던 가게들. 서울 아현동 굴레방다리 부근에 참 많았던, 그렇고 그런 가게들 말이다. 그 사이에 ‘ㅎ 호프’란 간판이 보였다. 하지만 호프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가령 맥주회사 로고라든가 빈 생맥주 통이라든가 하다못해 맥주회사에 나눠주는 야한 달력도 없었다. 심지어 전화번호는 ‘011’로 시작되었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호프집이었는데 바꿀 돈도 없고 딱히 바꾸지 않아도 손님이 오니까 그냥 쓰는 거란다. 연남동이나 성수동 힙한 카페에서 옛 간판을 일부러 남겨두는 걸 보긴 했다. ‘힙’하다는 감수성이 통영 정량동 뒷골목에선 흔한 거였구나.  
실제로는 ‘다찌’집이었다. 다찌란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나오는 통영 스타일 선술집을 부르는 말이다. 채취부터 먹방까지 섭렵한 원주민답게 ㅌ은 안주가 나올 때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머릿고기에 딸린 뽈살 한 점이 생선 한 마리다, 어르신 앞에서 발라먹으면 생선 먹을 줄 안다며 칭찬 듣는다, 미디덕 회는 비릿한 맛이 덜하고 단맛이 세다, 한치 새끼들이 그물에 딸려오면 먹물에 삶아 먹물 국물에 찍어먹는다, 성게알은 서비스인데 일본에선 없어서 못 먹는다, 붕장어찜은 생긴 건 별로인데 맛은 끝내준다, 초간장에 찍어먹으면 무척 상큼하다, 양념 없이 쪄낸 아구찜도 일품이다, 제주 특산물이던 자리돔이 이젠 통영까지 올라온다, 통째로 튀긴 자리돔은 꼬리를 잡고 대가리부터 뜯는다, 이건 파가 아니라 막 육 쪽이 생기기 시작한 마늘이다, 된장에 찍어먹으면 살짝 매콤하면서 향긋해서 회 비린내를 한 번에 잡아준다, 반건조 생선은 보관하기 좋고 조림이나 구이 뭐든 만들 수 있다…. 안주도 안주지만 설명이 더욱 푸짐해서 우린 끊임없이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자정이 조금 넘으니 호프(라 쓰고 다찌라 읽는)집 사장님은 TV 앞에 접이식 안락의자를 펼쳐놓고 잠들었다. 술은 냉장고에서 알아서 꺼내 마시라며 “너무 유명해지지 않아도 될 만큼만” 자주 오란다. 그래서 얼마였느냐. 안주는 한 상 3만 원, 소주와 맥주는 한 병에 5000원이었다. 믿지 못할 가격이었다. 왠지 미안해서 맥주 한 병을 더 꺼내 힘내 마셨다. ●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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