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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없었다면 지구 자전축 들쭉날쭉 … 인류도 없었다

[기후변화 리포트] 우연과 필연 사이 
지난해 12월 3일 남아 공 수도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 국립공원 위에 뜬 수퍼문. 달은 지구의 자전 주기와 자전축의 기울기 등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기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일 남아 공 수도 케이프타운의 테이블마운틴 국립공원 위에 뜬 수퍼문. 달은 지구의 자전 주기와 자전축의 기울기 등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기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PA=연합뉴스]

지구를 제외한 태양계의 다른 행성과 달은 4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흔히 ‘원시 지구가 남긴 유물 조사’를 달 탐사 명분으로 내세운다. 지구는 파란만장하게 변화해서 초기에 존재했던 것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 수 있게 된 지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바로 ‘우연’이었다.
 
태양계 탄생 직후엔 금성·지구·화성의 대기 구성이 비슷했다. 지금도 금성은 이산화탄소를 대부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대기압이 지구보다 90배가량 높다. 반면 지구 대기는 엄청나게 줄어들어 질소 0.8기압에 산소 0.2기압을 더해 1기압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와 이웃한 화성의 대기 압력은 지구의 170분의 1에 불과하다.
 
우연히도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적당해서 물을 보존할 수 있었지만 수증기 상태였다. 원시 지구에 소행성 충돌로 고온이 발생하는 일이 없어지자 수증기가 응결되기 시작했다. 대기 중 수증기는 거의 다 비로 내려 바다가 생겼다.
 
이때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약 60기압에 달했다. 오늘날 공기 중 이산화탄소가 0.0004기압에 불과해도 온실효과로 기온이 올라간다고 난리다. 그런데 그 15만 배에 달하는 60기압의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에 있으면 기온이 엄청 올라간다. 게다가 60기압은 해수면 아래로 600m쯤 내려간 곳의 수압과 같아 대부분 생명체가 견딜 수 없는 압력이다.
 
바다는 고온으로 증발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는 물에 잘 녹아 다행히 바다에 흡수됐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져 기온이 내려가니 수증기가 더 많이 응결돼 비의 양도 많아졌다. 물이 많아지니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녹아 기온은 더 내려갔다.
 
하지만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직 10기압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에 남아 있었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가 바다에 더 녹으려면 바다에 이미 녹아 있던 탄소 성분이 제거돼야 했다.
 
이 위기는 ‘판 구조’ 덕분에 벗어났다. 지구는 다른 행성처럼 껍데기 하나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 지구 바깥쪽 지각은 여러 조각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판들의 갈라진 틈에서 맨틀의 칼슘과 마그네슘이 흘러나왔다. 바닷물에 녹은 탄소는 이들과 결합해서 탄산칼슘과 탄산마그네슘이 됐다. 해저에 퇴적된 탄산칼슘과 탄산마그네슘은 당시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대륙의 재료로 쓰였다. 이 과정에서 바닷물 속 탄소 농도가 낮아져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더욱 많이 흡수할 수 있었다.
 
 
판 구조로 이루어진 지구, 다른 행성과 달라  
 
비효율적인 에너지 생산체계인 무기호흡에 의존했던 단순 원시 생명체가 고등생물로 진화하려면 산소가 필요했다. 그리고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이 소멸하지 않으면, 지상의 어떤 생물체도 오랫동안 생존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우연이 일어나야만 했다.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이 나타났다. 남세균은 몇억 년에 걸쳐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산소로 바꾸었다. 그리고 공기 중에 산소가 있으면 바다는 손실되지 않는다. 자외선으로 쪼개진 수소가 지구 중력 밖으로 달아나기 전에 다시 산소와 결합해 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산소는 높은 고도로 확산하여 올라가 우주로부터 날아드는 방사선과 충돌해 오존을 생성한다. 이때 고도 30~50㎞ 영역에서 많은 열이 발생한다. 이 열로 인해 대류권의 바로 바깥쪽에 매우 안정된 온도 분포를 하는 성층권이 만들어졌다. 이 안정층이 공기가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대부분 자외선이 성층권에서 오존을 만드는 과정에 사용되자 지상까지 도달하던 자외선이 크게 줄어들었다. 오존량이 오늘날과 거의 같아진 고생대에 이르자 식물이 육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원시 지구의 자전 주기는 6시간
 
생명체가 번성하려면 기후가 안정돼야 했다. 화성과 비슷한 크기의 원시 행성이 원시 지구와 충돌 과정에서 만들어진 달이 그 역할을 했다. 이 대충돌은 조건에 따라 기후가 달라지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다.
 
원시 지구의 자전 주기는 6시간 정도였는데 달의 영향으로 서서히 느려져서 24시간이 됐다. 달이 없었더라면 지금 지구의 하루는 8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8시간마다 하루가 바뀐다면 오늘날과는 다른 기후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생물도 다른 형태로 진화했을 것이므로 인류는 지구에 없을 것이다.
 
지구 자전축이 대충돌로 기울어져 계절이 생겨난 것도 우연이었다.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고 공전 면과 수직이라면 지구 어디서든 밤낮 길이는 12시간으로 똑같다. 그로 인해 계절 변화가 없고 지금보다 적도 지역은 더 뜨겁고 북극과 남극 지역은 더 추운 기후가 되었을 것이다. 대충돌이 자전축을 지금보다 더 기울어 놓았다면, 적도 부근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격렬하게 계절 변동을 겪고 있을 것이다. 중위도에서는 봄과 가을은 거의 없어지고 길고 극심한 여름과 겨울만이 있을 뿐이었다.
 
세차운동이라고 부르는 지구 자전축의 변화를 안정시키는 데에 달이 큰 역할을 했다. 혼자 뱅글뱅글 도는 사람이 있고, 손잡고 함께 도는 사람이 있을 때 둘 중 누가 더 안정적일까? 달과 지구가 그런 경우이다. 만일 달이 없었다면 지구 자전축의 변화 정도가 지금보다 더 커서 날씨의 변화는 더 극심했을 것이다. 극심하게 변하는 기후에서 인류문명은 탄생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지구 질량 중 바다는 약 0.02%에 해당하고, 대기는 100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바다와 대기는 생명력 있는 지구를 만드는 데 그 양에 걸맞지 않게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동적인 변화의 결과이다.
 
우리의 생존은 이러한 우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생명체의 최정점에 오른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우연히 적합한 기후가 출현했고 생명 나무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우리가 자연 선택을 받았을 뿐이다.
 
기후에 영향을 받아 온 인간이 우연히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이 우연은 지구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인간의 신통함은 이 우연을 안다는 데 있고, 인간의 위대함은 이 우연을 다루는 데 있을 것이다. 적합한 기후의 출현은 우연이지만 이것이 생존에는 필연이기 때문에 우연을 놓치지 않아야 비로소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조천호 대기과학자·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
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 연세대 대기과학 박사. 국립기상연구소 지구대기감시센터장, 지구환경시스템연구과장, 기후연구과장 역임. 미국 지구시스템과학원 지구대기감시연구소 탄소순환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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