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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완스 같이 진하고 괴한 추사의 글씨

책 속으로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창비
 
추사(秋史),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노과(老果), 보담재(寶覃齋), 과칠십(果七十)…. 시절과 심정에 따라 붙인 이들 명호(名號)가 343개에 이르렀다는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 김정희(金正喜, 1786~1856)다. ‘추사체’로 이름난 우리나라 4대 명필 중 한 분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문인이자 학자며 벼슬도 빠지지 않게 한 사대부로 꼽힌다. 요즘 대학문화에 비춰 보면 전공필수인 문사철(文史哲)과 교양필수인 시서화(詩書畵) 모든 분야에서 A 플러스를 받고도 남았을 팔방미인이 추사다.
 
유홍준(69) 명지대 석좌교수는 2002년 이 한국문화사의 위인 중 위인을 다룬 3권짜리 『완당평전』을 펴냈다. 자료·해제 편을 더해 1168쪽에 이르는 야심 찬 추사 전기였지만 젊은 학자들이 오류를 지적했고, 새로 발굴된 관계 자료와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면서 유 교수는 개정판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책을 절판하는 결단을 내린다.
 
김정희, ‘사서루’, 26X73㎝, 개인 소장. 추사 글씨의 멋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글자 구성이 현대디자인 수준이다. [중앙포토]

김정희, ‘사서루’, 26X73㎝, 개인 소장. 추사 글씨의 멋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글자 구성이 현대디자인 수준이다. [중앙포토]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난해 겨울, 칠순을 앞둔 그는 그간 미결로 남겨놓은 『완당평전』을 돌아보게 됐다.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차라리 전기문학으로 고쳐 쓰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전공자가 읽으면 학술이고, 일반 독자가 읽으면 문학이 되기를 희망”하며 지난주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창비)를 내놨다. 학술적 정확성을 위해 집어넣었던 주석과 고증 등 덥수룩한 자료를 솎아내 절반 분량으로 줄인 600쪽 신작은 기름기 쪽 뺀 추사 글씨처럼 격과 대중성을 아우른다. 2012년 인문서로는 처음 300만  부 판매를 돌파하고 올 3월 400만 부를 넘어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가 ‘글 장정’ 26년째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 장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구성진 『추사 김정희』는 ‘유홍준 표’ 스토리텔링의 숙성과 진화를 입증한다.
 
허련, ‘완당선생 해천 일립상’, 51X24㎝, 종이에 담채. [중앙포토]

허련, ‘완당선생 해천 일립상’, 51X24㎝, 종이에 담채. [중앙포토]

출생부터 죽음까지 추사의 일대기를 훑어가는 유 교수의 입담은 거침이 없다. 해남 대둔사에서 추사가 쓴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은 기름진 획의 예서풍 글씨인지라 “중국요리 난자완스 같고”,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은 굳센 획에 리듬이 있는 해서체 글씨라 “칼국수 국숫발 같다”고 비유한다. 흔히 추사체를 특징짓는 ‘괴(怪)’의 형태미에 대해서는 동주 이용희(1917~97)의 한마디를 전한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었다는 계기가 추사체의 비밀이겠죠. (…) 자기 멋대로, 맘대로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특이하고 괴이한 개성이 나온 거 아니겠어요.”
 
유 교수는 『추사 김정희』를 전기로 다듬은 이상 그를 위한 변명 몇 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쓴다. “추사는 간혹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했고 성격도 대단히 까다로웠다고 비판받곤 한다. (…) 이는 추사의 철저한 완벽주의에서 나온 면이 강하다. 그는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 긴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는 마침내 인생에서 관용의 미덕을 깨닫고, 용산의 강상과 과천에서 궁핍하게 살면서 평범성에로 귀의하는 완성된 인격을 보여준다.”(577~578쪽)
 
또 추사를, 중국을 사모한 사대주의자로 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단정해 말할 수 없다고 푼다. 당시 진경산수와 속화가 매너리즘에 빠져 어떤 창의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을 때 “추사는 예술적 본령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문인화풍을 일으킨 것”이고, “청나라의 고증학적 학예를 따른 것은 모화사상이라기보다 그 나름의 근대화였고 세계화였다”는 것이다. 한류가 흘러가는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추사가 200년 전에 세계를 무대로 학문과 예술을 전개해 ‘청조학 연구의 제일인자’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민족적 자랑을 느낀다”는 것이 유 교수가 다시 책을 펴낸 까닭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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