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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성장과 치유를 방해하는 방어기제들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전혀 안 취했다’고 우기며 갈지자로 걷는 사람, ‘택시 탔어, 금방 들어갈게’라고 수화기 저편의 아내에게 호언장담하면서 폭탄주를 한창 제조 중인 사람, 부정부패를 저질러놓고도 청문회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국민을 우롱하는 사람, 폭력을 써서 일을 해결하려 했다가 들통나자 ‘저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면서 날조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심리적 방어기제를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어기제는 눈앞에 닥친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타인은 물론 자신의 감각을 속이는 정신의 책략이다.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다채로운 방어기제를 활용한다. 커다란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망각’이라는 방어기제를 활용하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라는 식의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활용한다.
 
방어기제는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정신의 몸부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지닌 진짜 문제와의 ‘대면’을 가로막기에 치유와 성장을 방해할 때가 있다. 내면의 치유를 가로막는 방어기제의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것을 왜곡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행복만 삼키고 불행은 뱉어내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자세가 결국에는 성장을 방해한다. 얼마 전 한 미용실에 갔다가 이런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일하는 동안 낄낄낄 웃는다. 유머러스한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한다. 하기 싫은 일은 열심히 해서 최대한 빨리 끝내버린다.” 이렇게 부정적인 에너지는 아예 침투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 안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어두운 감정들은 어디로 갈까.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분출을 원한다. 분출의 물꼬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온갖 억압된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더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삶의 향기 4/28

삶의 향기 4/28

둘째, ‘절대 철들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다. 취직은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부지런히 해서 언젠가는 꼭 성형수술을 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20대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코 철들지 않을 거라며, 어른 따위는 되지 않을 거라는 가시 돋친 말과 함께. 걱정이 된 내가 넌지시 물어봤다. 엄마가 늘 네 곁에 있어 주실 것 같니. 일찍 남편을 잃고 너만 바라보며 열심히 일만 했던 네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어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 말만 했을 뿐인데, 청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이 철들지 않고 살 수 있는 원동력은 ‘나만 바라보는 엄마가 항상 날 지켜줄 거야’라는 믿음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은 걸까.
 
성장을 가로막는 세 번째 방어기제는, 자극이 오기도 전에 아예 자극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예방적 방어기제다. 편집자의 부탁으로 ‘밝고 행복한 분위기’의 글을 계속 써 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 어두운 이야기, 힘겨운 이야기는 절대 써서는 안 된다고. 편집장이 슬픔이나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슬픔이나 불행, 갈등이나 분열, 절망이나 낙담 없는 감수성이란 내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타인의 슬픔에는 아예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는 이름의 배타적 성곽’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만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아닐까.
 
오늘 우리는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위기에 대처했을까. 방어기제는 진실과 마주하기 두려워 끊임없이 회피하는 정신의 퇴행일 수 있다. 우리에겐 줄기찬 방어보다 더 지혜로운 에너지, 즉 내 삶을 내가 가꾸고, 그 어떤 외부의 공격도 내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분명 꿈틀거리고 있다. ‘더 이상 방어만 하지 않겠다, 이제 내 의지와 열망의 부름대로 살아가야지’라고 결심하는 순간, 진정한 희열이 찾아온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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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