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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노무현-김정일 ‘밀당’의 추억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밀당’ 없는 밀실협상은 없다. 카메라 앞에선 아무리 훈훈해도 방문 걸어 잠그면 돌변한다. 때론 판을 깰 듯 ‘진상’도 부린다.  
 
2007년 10월 3일 남북정상회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면(裏面)에선 노회한 레토릭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했다. ‘빈 종이짝’, ‘빈 선전곽’, ‘빈 구호’…. 7·4 남북공동성명, 6·15공동선언을 이런 말로 뭉갰다. 미국에 대한 “남측의 자주성 결여”도 공격했다. “남쪽 사람들,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고 쫄면 안된다. 노 대통령도 ‘자갈치시장 상인의 직설과 대학교수의 레토릭’을 갖춘 인파이터다. 그는 “분명한 것은 우리는 친미국가”라거나 “비위 살피는 이유가 사대주의라서가 아니라 먹고사는 현실 때문”이라면서 말을 돌리지 않고 받아쳤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오전이 다 가버렸다는 점. 오후엔 회담이 없었다.
 
▶노무현=“여기까지 와서 달랑 두 시간 만나고 가라시면 됩니까? 잡담을 하더라도….”
 
▶김정일=“뭘 더 얘기하지요? ”
 
▶노무현=“(그냥 가면 언론이) 노무현 쫓겨왔다 쓸 텐데, 그렇게 할 겁니까? 시간 내주시는 게 그리 어려우시면 내려갈랍니다.”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가겠다면 값을 깎는데 유리한게 보통인데….
 
▶김정일=“(가셨다가) 앞으로 자주 만나자 했으니 안건이 생기면 (또) 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갈테면 가라니 이쯤 되면 “당신 말은 절대 들어주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나온 완고한 고집쟁이나 다름없다. 노 대통령 특유의 말투가 나왔다.
 
▶노무현=“차비는 뽑아가야지요.”
 
‘차비’ 얘기가 나오자 김정일이 마침내 태도를 바꿨다. 선심 쓰듯. 벼랑 끝 전략이었나 보다.
 
▶김정일=“하지요 뭐. 노 대통령님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하는 걸로. 우리도 작가 노릇 해 봅시다. 보도진에 얘기하십시오, 심도 있는 말들이 많아서 오후에 더 한다고.”
 
이런 밀당 끝에 나온 게 10·4공동선언 8개 항이다. 핵문제 해결, 3자 또는 4자(남·북·미·중) 종전선언 추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아직 미완(未完)이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공이 넘어갔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일성으로 ‘온 세계가 주목하는 한반도의 봄’을 말했다. 역설적으로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라고 한 어느 시인처럼 간절히 기다릴 뿐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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