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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나의 판문점 연대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판문점에 대한 유년시절 첫 기억은 1976년 ‘도끼 만행사건’이다. 한여름이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 경비병들이 도끼로 살해했다. TV 뉴스를 보던 부모님은 치를 떨었고, 초등학생이던 나는 너무 무서웠다. “무찌르자 공산당” 노래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도끼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괴뢰군은 어린 시절을 지배한 악마적인 북한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성인이 돼서는 1989년 전대협 대표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외국어대생 임수경이 판문점을 통해 입국한 일이 떠오른다. 당시 임수경은 군사분계선을 넘는 순간 체포됐지만,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001마리 소 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했다. 83세 실향민이 성공한 자본가가 되어 소 떼를 이끌고 금의환향하듯 고향을 찾아가는 모습에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기 소르망)이란 평이 나왔다.
 
분단의 상징 판문점은 문화의 소재로도 등장했다. 60년대까지는 대중가요에 자주 등장했다. ‘판문점’‘비나리는 판문점’‘판문점의 달밤’ 같은 노래들이 실향의 슬픔을 달랬다. ‘판문점’(1964), ‘판문점 도끼살인’(1976) 같은 반공영화도 잇따랐다.
 
실향민 작가 이호철은 대표작인 단편 소설 ‘판문점’(1961)을 통해 전후 분단문학의 중심이 됐다. 판문점에서 짧은 만남을 가진 남한 청년과 북한 여기자를 통해 분단의 현실을 아프게 돌아본 자전소설이다. 이호철은 2012년 50년 만의 속편인 중편 ‘판문점2’도 발표했다. 지식인 분단문학의 백미인 최인훈의 ‘광장’(1960)에도 판문점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자진 월북했던 주인공 이명준은 남북의 정치 현실에 모두 절망하고, 전쟁포로가 돼 들어간 판문점에서 남북 아닌 제3의 땅을 택한다.
 
보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있다. JSA에서 벌어진 남북 병사의 총격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북한군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으로 달라진 대북관을 보였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배경으로 초코파이를 나눠 먹는 남북병사의 모습에 584만명 관객이 호응했다. 우리 안의 오래된 레드 컴플렉스를 허무는 계기가 됐다는 평도 듣는다.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DMZ에 공중정원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인 설치미술가 최재은 등 미술 작업들도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판문점은 온 국민의 기억에 새롭게 각인될 명장면을 선사했다.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장면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과거에도 양국 정상이 만났고, 우리 대통령 내외가 분계선을 넘었지만, 남북 정상이 함께 손을 잡고 분계선을 넘는 장면은 처음이었다. 더이상 전쟁은 없다는 ‘판문점 선언’도 발표했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 북한군의 총격을 뚫고 피 흘린 북한 병사가 목숨을 걸고 넘어오던 그 공간이라,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만큼 극적으로 대비됐다.
 
물론 무작정 기뻐하기만은 아직 이르다. 완전한 비핵화와 이를 통한 평화가 당장 눈앞에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 그러나 분단의 상징 판문점을 배경으로, 어느 때보다 극적이고 소망스러운 장면이 연출된 것만은 틀림없다.
 
이호철 소설 ‘판문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진수는 한 2백년쯤 뒤 판문점이란 고어로 ‘板門店’이 되리라는 우스운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백과사전에 실릴 판문점에 대한 내용들을 떠올렸다. 판문점은 이 나라 북위 38도 선상 근처에 있었던 해괴망측한 잡물로 기억될 것이고 민족의 에너지를 쓸데없이 좀먹는 곳이라 여겨질 것이다.” 반세기적 작가의 상상이 이번에는 이뤄질 수 있을까.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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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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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