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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강철 먹는다고 몸에 철분이 강화될까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철분이 부족한 임산부가 강철을 갈아서 먹으면 몸에 철분이 강화될까. 아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철은 분자와 원자로 분해된 철이지 포항제철이 만들어낸 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질문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보자. 단백질 콜라겐을 먹으면 피부탄력성이 좋아질까. 아니다. 우리 몸은 단백질 자체를 흡수하지 못한다.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된 더 작은 아미노산 형태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음식으로 먹은 특정 단백질이 몸속에 그대로 흡수되어 몸속에서 증가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몸은 살아있다. 살아 있는 유기체는, 신체든 경제든 이런 직선적 사고로 이해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I love you”란 구조를 갖는 단백질이 몸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해 보자. 이 단백질 문장이 그 자체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I”, “love”, “you”라는 각각의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흡수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몸속에 흡수된 세 단어는 그대로 다시 “I love you”란 구조를 갖는 단백질로 합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해된 아미노산은 혈액을 타고 신체 곳곳으로 순간적으로 퍼져나가고 몸속에 존재하는 다른 아미노산과 새롭게 결합한다. 생명의 신비요 살아있음의 신비다. 만일 우리 몸이 “You hate me”라는 단백질을 또한 흡수했다면 이 역시 “you”, “hate”, “me” 라는 세 개의 아미노산으로 분리된다. 실제로 몸에서 합성되는 단백질은 “I love you”란 구조를 갖는 콜라겐이 아니라 전혀 성격이 다른 “I hate you”란 단백질일 수 있다. 특정 단백질 보충을 위해 그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경제는 복잡하다. 철을 갈아 먹인다고 임산부 철분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듯, 돈을 푼다고 경제가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통화 공급량만 늘린다고 경제가 잘 돌아가고 소비가 늘기를 바라는 것은, 강철을 갈아먹고 몸에 철분이 강화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정부가 재정투입을 통해 돈만 푼다고 경제시스템이라는 생명체 속에 소화되고 흡수되어 필요한 영양소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경제에 도움이 되려면 일단 경제가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분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효과 없이 대변으로 빠져나간다. 임금이 올라 가계소득이 늘면 자동적으로 소비가 늘까. 그렇지 않다. 돈이 풀려도 가계의 여윳돈 즉 가처분소득이 커져야 소비가 늘 수 있다. 소득은 늘어도 세금으로, 병원비로, 퇴직연금저축으로, 주택담보대출과 학자금대출의 원리금상환으로, 스마트폰 요금으로 대부분이 빠져나간다면 “여윳돈”은 늘지 않는다. 여윳돈이 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고 느끼지 못하고 소비가 늘 수도 없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까지 부과되면 국민들의 구매력은 더욱 떨어진다. 소득이 늘어도 소비에 안 쓰고 빚 갚는 데 쓴다면, 은행의 건전성은 높아져도 소비진작과 경기활성화엔 별 효과가 없다.
 
설령 정책이 흡수된다 해도, “ I love you” 예에서 보았듯이, 이합집산을 통해 원래 의도했던 목표와는 다른 단백질이 경제 속에 합성될 수 있다. 돈이 정말 필요해서 소비를 위해 사용할 사람들에게 돈이 가지 않고 저축할 사람에게 가는 경우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이런 현상도 심해진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비를 해야 진짜 자기 돈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같은 소비라도 수입상품 소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소비를 늘리면 국내경제엔 별 효과 없다. 이런 문제를 풀려면 가장 먼저 경제와 경제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 내에 존재하는 기업이나 가계는, 자극을 주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기계가 아니다. 한 단계 앞서 생각하고 반응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해야 한다.
 
소화란, 소화효소가 음식물을 몸이 흡수할 수 있는 작은 분자로 분해하는 작용을 말한다. 흡수란 음식물이 분해되어 소화관 벽을 통과해 분자형태로 순환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흡수되기 위해서는 먼저 소화되어야 한다. 경제의 소화효소는 시장이다. 효소를 통해 소화되어야 흡수되고 흡수되어야 영양분이 된다. 소화가 안 된 경제정책, 흡수가 안 된 경제정책은 그야말로 경제의 대변일 뿐이다.
 
다른 음식물과 달리 물은 몸에 흡수되기 위해 소화가 필요 없다. 소화과정 없이 직접 흡수된다는 말이다. 통화정책이 소화와 흡수를 필요로 하는 정책이라면 재정정책은 물처럼 보다 직접적이다. 최저임금인상이나 기본소득은 복잡한 소화과정 없이 직접 가계에 돈을 흡수시킨다. 위기 시 물만 있으면 음식 안 먹고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물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정책대상이 명확하고 직접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재정정책은 정부부담을 증가시킨다. 통화정책이 더불어 필요한 이유인데 통화정책은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을 필요로 한다. 소화하고 흡수하는 것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러하듯 경제도 시장에서 활발히 뛰고 움직여야 소화가 잘된다. 흡수도 원활하다. 흡수되어야 성장도 한다. 경제정책의 전제가 시장인 이유다. 시장이 존중받지 못하면 경제정책도 존중받지 못한다.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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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