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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앱, 직장인들 오프라인 침묵 깨려고 개발

갑질 경영 저승사자 ‘팀블라인드’ 문성욱 대표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갑질’,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에 대한 ‘미투’,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입사원 명퇴’, 스타벅스의 ‘고객 험담’ 사건. 국내 대기업이 최근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사건들이다.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스마트폰 앱 ‘블라인드’를 통해 처음으로 문제가 제기됐다는 점이다.
 
이달 초 대한항공의 광고대행사인 H사 직원은 블라인드에 ‘조현민 전무가 팀장에게 영국의 한 장소를 아느냐고 물어봤고, 모른다고 답하자 음료수병을 던졌다. 유리병이 깨지지 않자 물을 뿌렸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2월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블라인드에 ‘매달 한 번씩 회장이 본사에 오면 승무원들이 도열해 있다가 팔짱을 끼고 아부를 해야 한다’ ‘팔을 벌리면 안겨야 한다’ 등 박삼구 회장의 성희롱 사례를 쏟아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사장이 회식 자리에서 청양고추를 들고 “‘고추’하면 ‘원샷’을 외치면서 먹어달라. 여성들은 안 해도 된다”고 한 ‘청양고추 건배사’ 사건도 여기서 나왔다.
 
 
회사 이메일로 인증 후 가입, 신뢰도 높아
 
직장인 전용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문성욱 '팀블라인드' 창업자 겸 대표.

직장인 전용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운영하는 문성욱 '팀블라인드' 창업자 겸 대표.

 
블라인드는 인증된 직장인들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모바일 익명 커뮤니티다. 재직 중인 회사 이메일 계정을 통해 재직 사실을 인증받고 가입할 수 있다. 공유되는 정보의 신뢰도가 높아 직장인들이 몰린다. 
 
회사별 게시판과 업종·직군 라운지에서 익명으로 소통할 수 있다. 현대판 ‘대나무숲’이다. 옛날 한 노인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대나무숲이 정보기술(IT) 시대에 맞게 되살아난 셈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앱을 통한 외침은 전설속 대나무숲을 능가한다.
 
정작 개발자들은 블라인드가 이처럼 폭발력 있는 갑질 폭로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블라인드 앱을 운영하는 팀블라인드의 문성욱(38·사진) 창업자 겸 대표를 24일 인터뷰했다. 그는 요즘 본사가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다.
 
미국에서 창업했나.
“창업은 2013년 서울에서 했다. 그해 12월 국내에서 블라인드 앱을 출시하고, 이듬해 미국에 본사를 세웠다. 글로벌 서비스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본사를 미국에 두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미국에서는 2015년 블라인드 앱을 출시했다. 한 달씩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하고 있다.”
 
블라인드를 개발하게 된 동기는.
“네이버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니던 스타트업이 네이버에 매각되면서 그곳으로 옮겼다. 네이버에 가보니 대기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소통 단절, 그로 인한 불신과 오해, 불합리한 점이 보였다. 오프라인에서는 서로 대화하지 않던 직원들이 익명 게시판에서는 활발하게 소통했다. 재미있어서 하루에 서너번씩 들어갔다. 소통을 통해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문 대표는 2005년부터 여행·맛집 정보 서비스 업체 윙버스·윙스푼에서 근무하다가 2009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2011년 모바일 상거래업체 티몬으로 옮겨 서비스 기획 등을 총괄했다. 그는 “조직이 점점 커져 1000명이 넘게 됐는데, 소통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조직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팀원이 여전히 많은 걸 보고 네이버 익명 게시판같이 소통을 도와주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보 교류에서 사회 변화 진앙으로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블라인드 앱이 성공할 줄 알았나.
“아니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다.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사용자 수가 일정 규모 이상 되지 않으면 체류 시간을 늘리기 어렵고,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분명히 있다고 믿었다. 최선을 다하면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고, 성공하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일이 생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뒷담화 같은 소소한 소통을 넘어 사회 변화의 진앙이 됐는데.
“직장에서 지위의 고하는 있을 수 있지만, 인격이나 인간 존엄성에는 고하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걸 혼동하는 분들이 있다. 면전에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약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공론화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처음부터 ‘신문고’를 의도했다는 건가.
“기업은 직원에게 감추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영업 기밀이라서가 아니라 잘못이 드러나면 부끄러우니 감추고 싶은 게 있다. 블라인드를 통해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모이면 권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기업이 직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의사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왜 폭발력 있는 제보가 이어지는 걸까.
“직장인들이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고 불합리한 일을 당했는가에 대해 서로 이해하는 것 같다. 최순실 사건 등을 겪으면서 뭔가를 감추는 게 사회를 얼마나 망가뜨렸는지 공감대가 생겼다. 미투 운동 영향도 있다. 이젠 조직보다 개인의 삶이 중요하다는 인식 변화도 크다. 그런 가치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선보인 ‘토픽’ 채널이 ‘미투’ 같은 주제를 빠르게 확산시킨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용기 내서 이야기하신 분들이 변화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후발 주자를 따돌릴 독보적 기술이 있나.
“직장인 익명 게시판 서비스는 우리가 세계 처음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카피 제품이 많이 나왔지만 대부분 망했다. 기술보다는 서비스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운영 철학의 차이가 컸다. 이 서비스는 기술보다는 신뢰가 훨씬 중요한 상품이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사용자 신뢰를 얻는 걸 최우선으로 했다. 1개 회사에서 사용자 1000명을 모으는 게 1000개 회사에서 1명씩 모으는 것보다 신뢰를 높인다. 충성도 높은 사용자를 많이 확보했다.”
 
 
"한·미 뛰어넘어 글로벌 서비스 확대”
 
블라인드 사용자 수는 한국과 미국 합쳐서 160만 명이다. 국내 블라인드에 직장인 한 명이라도 가입한 회사는 2만8000개, 이중 회사 채널이 별도로 있는 회사는 2000개다. 100명 이상 재직 중인 회사에서 50명 이상 가입하면 회사 채널이 자동으로 열린다. 
 
항공·금융·언론 등 업계 라운지는 48개, 엔지니어·영업·회계 등 직군 라운지는 29개다. 미국에서 블라인드를 쓰는 직원이 한 명 이상 있는 회사는 3만1200개, 이 중 회사 채널이 별도로 있는 회사는 400개다.(직원 30명 이상 가입하면 개설)
 
앞으로 과제는.
“더 많은 사람이 블라인드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쓸 수 있도록 재무 구조를 갖춰야 한다. 한국·미국뿐 아니라 더 많은 나라 직장인들에게 서비스하고 싶다. 갈 길이 멀다.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는 게 목표다. 한국·미국·일본에서 세 차례 걸쳐 유치한 투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광고가 가장 큰 수익원이다.”
 
기업의 ‘저승사자’가 된 블라인드에 광고를 꺼리진 않나.
“꺼리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광고 효과를 높이 사는 기업도 있다. 국내에서 회사·직군·회사 위치·관심사 등을 동시에 타깃 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다. 최근 론칭한 채용 서비스는 미래 수익원이 될 것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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