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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리어 J의 호텔에서 생긴 일 - “객실에서 TV가 사라졌어요!”

호텔리어의 자리
나는 호텔리어다. 내로라하는 특급호텔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남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호텔에서 나는 일을 해 돈을 번다. 나는 내 일이 자랑스럽고, 내 일터를 사랑한다. 
 
호텔리어로 살면서 호텔이 하나의 무대로 보일 때가 있다. 주연은 고객, 조연은 나 같은 호텔리어. 연출과 각본은? 없다. 진짜 없다. 없어서 조연은 울고, 웃고, 아파하고, 감동한다. 주변에서 종종 호텔리어의 애환을 묻곤 하는데, 나는 이 조연이라는 자리에 호텔리어의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무대의 주인공인 적은 없지만, 우리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호텔이라는 무대는 매우 한정된 공간이다. 이 비좁은 무대에서 수많은 사연이 부딪히고 결합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이렇게 수많은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차마 공개하지 못하는 사연이 날마다 넘친다. 그 비밀 같은 사연을 나는 여기에서 하나씩 풀어내려 한다.
 
먼저 죄송한 말씀을 올린다. 내 이름을 숨긴다. 이름을 내놓고 말하기가 곤란한 사연이 너무 많다. 호텔업계를 통틀어 두루 일어난 일이 특정 호텔이나 특정 인물에 한정한 ‘뒷담화’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도 있다. 아울러 너무 가십 거리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사연 하나하나마다 호텔리어의 눈물이 배어 있으니까.
 
호텔에서 추방당한 고객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고민 끝에 ‘진상 고객’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호텔리어에게 ‘진상’과 ‘손님’은 형용모순 같은 표현이다. 서비스가 생명인 호텔리어에게 컴플레인은 가장 민감한 주제이어서이다. 반면에 ‘진상 고객’은 호텔리어의 애환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진상’의 진상을 알릴 필요가 있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세계적인 체인호텔인 X호텔에서 일어난 일이다. VIP 고객 A씨가 투숙할 때마다 호텔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가 투숙하면 늘 컴플레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베개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든지, 블라인드가 부드럽게 내려오지 않는다든지, 변기 레버가 좀 딸깍거리는 것 같다든지 등등 오종종한 불평이 없는 적이 없었다. 컴플레인을 하면 뭔가 서비스가 따라오니 컴플레인 중독증이나 강박증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A씨가 하루는 작정이라도 한 듯이 연신 컴플레인을 쏟아내 스탠다드 객실을 2번이나 바꿨다(뷰가 좋은 객실로 업그레이드를 했고, 룸서비스도 제공했다). 한두 시간 있다가 “온도가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 다른 객실로 옮기는 식이었다. 더는 컴플레인이 없겠지 한 순간. “방의 기운이 안 좋아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며 스위트룸 업그레이드를 요구했다. 결국 호텔은 “정 불편하시면 댁으로 돌아가시는 편이 낫겠다”며 정중히 환불과 퇴실을 제안했다. 그러자 A씨가 로비에서 “총지배인 나와라”며 소란을 피웠다. 그날 이후 A씨는 X호텔에서 종적을 감췄다. A씨에게는 전 세계의 X호텔 체인을 이용할 수 없도록 조치가 취해졌다.  
 
‘호텔 하면 서비스’가 상식처럼 통용되다 보니 억지 컴플레인이 빈번하고 수위도 높은 편이다. 컴플레인에 응대하는 방법은 호텔마다 다르고 직원마다도 조금씩 다르다. 한 유명 커뮤니티에 “어느 호텔의 어느 직원에게 컴플레인을 하면 다 들어준다더라”는 게시글이 올라와 해당 직원에게 억지에 가까운 컴플레인이 쏟아진 일이 있었다. 컴플레인을 악용한 대표 사례다. 특정 직원에게 컴플레인이 집중되면 호텔에서 징계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해석될 수 있어서이다. 호텔리어로선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호텔이 세탁소는 아니잖아요!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진짜 얄미운 경우는 따로 있다. 호텔 규정을 넘지 않는 선에서 온갖 편의를 요구하는 소위 ‘지능형 진상’이다. 호텔 약관과 서비스 내용을 꼼꼼히 읽기를 즐겨하는 고객 B씨. 그녀는 명절을 맞아 Y호텔에 가족과 친지 몫까지 객실 3개를 3박 동안 투숙했다. 객실 1개 1박에 다림질 서비스가 2벌까지 무료라는 걸 미리 파악한 B씨는 다른 객실 몫까지 1박에 6벌의 다림질을 의뢰하는 식으로 3박 동안 모두 18벌의 옷을 다림질해 갔다.  
 
특급호텔 Z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해외의 임원급 출장자가 많이 사용하는 클럽 객실에는 편의상 다림질 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제공되는데, 국내 고객이 점점 늘면서 집에 있는 빨랫감을 한 보따리 가져와 다림질을 요구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Z호텔은 ‘무제한 다림질 서비스’를 중단했다.
 
고객 C씨는 체크인한 지 10여 분 만에 사소한 이유를 들어 룸 체인지를 요구해 방을 이동했다. 잠시 머물렀던 객실의 샴푸ㆍ린스ㆍ바디워시ㆍ비누ㆍ크림 등 무료 어메니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챙긴 다음이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럭셔리 호텔인데다, 어메니티가 국내 첫 선을 보이는 해외 고급 브랜드이어서 C씨가 챙긴 제품의 가격은 다 합쳐 7만원 정도 됐다. 조식 뷔페 레스토랑에서 잼을 여러 통 챙겨 가거나, 클럽 라운지에서 꽤 값이 나가는 병 음료를 가방에 잔뜩 넣는 사례는 이제 흔하다. 쓰시라고, 드시라고, 즐기시라고 마련한 서비스이니 뭐라 할 순 없지만 대부분이 국내 고객이라는 현실이 솔직히 씁쓸하다.
 
얄미운 고객은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멤버십 고객이 대부분인데, 더러는 타사 호텔리어인 경우도 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이런 요청은 들어줄 수밖에 없어’ 또는 ‘이런 실수는 이 정도 보상은 받아낼 수 있어’ 식으로 수위를 꿰고 있어 컴플레인에 주저함이 없다. 물론 호텔리어 대부분은 남의 호텔에 투숙할 때 매우 예의 바르게 지내다 온다. 동료애의 발현이라고 할까.
 
샴푸는 OK 수건은 NO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푸념만 늘어놓는 것 같아 알뜰 이용법도 알려 드린다. 호텔 객실에는 가져가도 되는 것과 가져가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가져가면 안 되는 것을 갖고 갔다가 나중에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잘 알아두셔야 한다.  
 
잘못 가져갔다가 불상사를 당하는 대표 품목이 헤어드라이어와 목욕 가운이다. 이 정도는 애교에 가깝다. 중국인 단체고객이 몰려 왔을 때는 객실의 스마트 TV가 사라진 일도 있었고, 화장실 변기 뚜껑을 떼 간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도난 사실이 고객이 체크아웃을 한 뒤에 발견돼도 체크인을 할 때 열어둔 신용카드로 해당 금액을 꼭 청구하니 명심하시길 바란다.  
 
객실에서 가져가도 되는 아이템을 정리한다. 이것만 기억하자. 욕실에 있는 일회용품은 모두 가져갈 수 있다. 주로 세면대 주위에 비치된 작은 용량의 바디로션ㆍ비누ㆍ칫솔ㆍ치약ㆍ면도기ㆍ빗ㆍ면봉ㆍ샤워캡 등이다. 욕실에 있는 작은 용량의 샴푸ㆍ컨디셔너ㆍ바디워시도 포함된다. 단 디스펜서 식의 큰 통에 들어있는 샴푸ㆍ컨디셔너 등은 예외다. 호텔이 플라스틱 용기의 낭비를 막으려고 마련한 일종의 친환경 정책이어서이다. 공짜냐 아니냐의 기준은 대체로 ‘일회용’에서 갈린다. 미니바 리스트에 이름과 가격이 적혀 있는 건 모두 유료 제품이다.
 
일회용 객실 슬리퍼도 가져갈 수 있다. 고급 호텔일수록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엔 아까울 만큼 고급 제품을 준비해두고 있다. 해외 출장이 잦은 경우 비행기 안에서 슬리퍼로 활용하면 꽤 유용하다. 연필ㆍ볼펜 등 필기도구도 가져갈 수 있다. 내 주위에는 전 세계 호텔의 필기도구를 기념품처럼 수집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객실의 모든 전자기기와 가구, 미니바, 패브릭 제품(침구류ㆍ커튼ㆍ수건) 등은 분실 또는 파손되면 변상해야 한다. 특히 고급 호텔일수록 다양한 사이즈의 수건이 구비돼 있는데, 객실마다 수건 개수도 확인하고 있으니 가져갈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다. 품목별 변상 금액은 호텔마다 내부 규정으로 정해두고 있다.
 
 호텔리어 J talktohotelierJ@gmail.com  
 특급호텔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호텔리어. 호텔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일화를 쏠쏠한 정보와 함께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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