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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로맨스, 그 이후에 터질 폭탄 하나

동한(東漢) 말, 원소(袁紹)와 조조(曹操)가 관도(官渡)에서 맞붙었다. 그 유명한 관도대전이다. 원소는 10만 대군에 군량도 충분했지만 조조는 1만 군사에 군량도 부족했다. 중과부적이었다. 조조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오소(烏巢)를 기습, 원소의 군량을 모두 불태웠다. 원소 군은 혼란에 빠졌고 조조는 대승을 거뒀다. 삼국지 조조 천하는 이렇게 시작됐다. 훗날 사학자들은 조조가 '혼수모어(渾水摸魚)'로 천하의 승자가 됐다고 평했다. 중국 고대 병법 36계 중 20계, 즉 물을 흐려 물고기를 잡는다는 전술이다. 전황이 불리할 땐 적을 혼란에 빠뜨려야 한다는 거다. 묘하게도 요즘 중국 외교가 딱 그렇다. 원칙이 없고 피아 구분도 어려운 야릇한 행보의 연속이다. 미국의 무역 공세, 남북 대화로 시작된 한반도 정세 급변,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중국에 불리한 국제 정세를 효율적으로 타개하려는 고육책 같아 보인다.  

 
관도대전 [출처: 삼국 온라인]

관도대전 [출처: 삼국 온라인]

 
# 이달 초 호주 구축함 2척과 연료 보급함 1척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놓고 중국군과 맞서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호주 함정은 베트남으로 항해 중이었는데 갑자기 중국 해군이 항로를 가로막고 남중국해 항해 이유를 추궁했다고 한다. 호주 측은 공해 상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맞받아쳤지만 중국 군의 전례 없는 완력 과시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최근 영국을 방문 중인 맬컴 턴불 호주 총리가 "우리는 전 세계에 걸쳐 항행의 자유 권리를 갖고 있고 남중국해에서도 국제법에 따른 '완벽한 권리'가 있다"며 영국과 미국 등 서방세계와 공조를 강조한 배경이다. 중국과 호주 관계는 최근 악화일로다. 호주 정부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자국 정당·시민단체에 대한 외국의 기부행위를 금지하고 외국을 위해 활동하는 로비스트의 등록을 의무화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를 두고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연상시킨다"고 비난했다. 중국이 다음 달 '호주 주간 박람회' 참석을 위해 방중 하려는 턴불 총리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지금 돌출 행보로 호주의 대중 전략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호주 군함 [출처: 바이두 백과]

호주 군함 [출처: 바이두 백과]

 
#요즘 중국이 북한과 서로 죽고 못하는 로맨스를 즐기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의 방중 때 황제 급 의전을 제공하더니 시진핑 주석이 곧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무슨 원수 보듯 하던 양국이 맞나 싶다. 아무리 중국이 실용외교를 한다지만 이 정도면 대북 정책에 원칙이 있기나 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미국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북중 관계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북한을 보듬기 위한 중국의 최근 외교는 파격의 범주를 많이 벗어난다. 따지고보면 중국의 이 같은 행보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남북미가 주도하는 북핵 대화 국면에서 빠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행여 '차이나 패싱'이 일어나면 동북아에서의 미국 영향력 제거와 자국 패권 강화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을 혈맹이라고 치켜세우고 북미 회담 실패에 대비해 중국에 보험들라고 세일즈하고 있다. 한데 문제는 이런 중국의 전술적 급변이 이후 북핵 해결 과정에서 또 다른 급변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반도에 미국 영향력이 유지되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경우 한국과 북한을 상대로 위협을 하거나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중국발 외교 폭탄이다. 그래서 최근 중국 외교의 파격은 남북미 주도의 북핵 국면에 '물 흐리기'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악수로 환영하는 시진핑 주석(좌) [출처: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위원장을 악수로 환영하는 시진핑 주석(좌) [출처: 조선중앙통신]

 
#중국이 필리핀 근로자에 문호를 대폭 개방할 것이라는 사실이 4월 20일 공개됐다. 무려 30만 명의 필리핀인이 중국에서 일자리를 얻을 것이라고 한다. 그중에는 영어교사 10만 명을 포함, 간호사와 간병인, 가사도우미, 음악 연주자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뉴스만 보면 두 나라가 밀월을 즐기는 건 맞다. 한데 바로 이틀 전인 18일 중국군 수송기 2대가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 있는 인공섬에 계류된 사진이 공개됐다. 필리핀 여론은 들끓었다. 필리핀 정부는 5월 7∼18일로 예정된 미국과의 연례 합동군사훈련 '발리카탄'(어깨를 나란히)에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과 호주 참여를 확인했다. 이 훈련은 누가 봐도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 평상시 같으면 필리핀에 온갖 보복을 해도 시원찮은 중국이다. 한데도 인력 수입이라는 당근을 필리핀에 안기며 미소 짓는 중국의 의도는 뭘까. 남중국해 분쟁에서 우군 하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필리핀이라도 잡고 가야한다는 전술적 노림수일 것이다. 사실은 서방의 눈으로 보면 필리핀이 지금 중국 편인지 미국 편인지 헷갈린다. 중국이 노리는 바다.
 
남중국해을 항해하는 중국 해안 경비선 [출처: 봉황망]

남중국해을 항해하는 중국 해안 경비선 [출처: 봉황망]

 
#중국이 오랜 앙숙, 인도에 갑자기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 1년 이상 중단됐던 양국 군 연합훈련을 재개하자고 4월 20일 인도에 제의한 것이다. 지난해 73일간 국경 군사대치로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던 두 나라다. 인도와 중국은 1962년 전쟁을 치르고도 국경을 획정하지 못한 채 3488㎞에 이르는 실질 통제선(LAC)을 사실상 국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양국 국경 분쟁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다. 지난달 국경 문제 논의를 위한 양국 실무회의에서도 인도군의 아루나찰프라데시 주 순찰을 놓고 중국 인민 해방군 대표단이 자국 영유권 침범이라며 항의하는 소동을 빚었다. 인도 언론은 중국의 갑작스런 화해 제스처에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고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는 등 국제정세가 급변하자 혼란스런 미소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인도 국경 부근에서 대화하는 양국 군 병사들 [출처: 중국망]

중국-인도 국경 부근에서 대화하는 양국 군 병사들 [출처: 중국망]

 
#4월 19일 일이다. 순항미사일을 장착한 중국의 훙(H)-6K 폭격기 2대가 대만 상공을 비행했다. 대만 전투기가 긴급 출격했고 양안 해협은 때아닌 전쟁 위기로 치달았다. 전날부터 인민 해방군이 대만해협에서 실탄사격 훈련을 했던 터라 긴장감은 더했다. 중국군이 대만해협에서 실탄 훈련을 한 것은 2015년 9월 이후 처음이다. 중국의 속셈은 뻔하다. 독립노선을 추구하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는 미국에 대한 경고다. 그렇다고 미사일까지 장착하고 대만 상공을 비행하는 강수는 극히 이례적이다. 정말로 대만을 무력 공격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대만 내부 혼란을 노리는 건지 불분명하다. 역시 물 흐리기 전술이다.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출처: 셔터스톡]

참 얄궂게도 '혼수모어'는 중국이 미국을 비난하면서 거론했던 말이다. 지난해 8월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고 미국이 대북 제재를 바짝 당길 때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이런 논평을 했었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큰 틀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는 압력 행사와 제재에만 주력하고 대화와 협상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이들은 앞에서 악수하면서 (판을 흐리는)'혼수모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했다던 그걸 지금 중국이 하고 있는 셈인데, 외교라는 게 국익을 위해서는 이렇게도 피아(彼我)가 없는 것이다.  
 
베이징=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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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