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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치과의사 된 후에도 진로 고민…"동물실험 대체할 연구 계속하고 싶어요"

2016년 러쉬프라이즈 신진연구자 부문에서 수상한 김미주씨. 러쉬프라이즈는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가 동물실험 반대 운동과 대체 실험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에 주는 상으로 2012년 시작됐다.

2016년 러쉬프라이즈 신진연구자 부문에서 수상한 김미주씨. 러쉬프라이즈는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가 동물실험 반대 운동과 대체 실험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에 주는 상으로 2012년 시작됐다.

“치과대학에 입학한 우리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굉장히 많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므로 평생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고 봉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대체실험 노벨상' 러쉬프라이즈 받은 치과의사 김미주씨

 
2005년 원광대 치과대학 본과 진입식에서 학과 대표였던 김미주씨(36)가 했던 말입니다. 본과 진입식은 치과대학의 6년 과정 중 2년의 예과 과정을 마치고 4년의 본과 과정에 진학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예요. 김씨는 대학 졸업 후 10여 년간 때론 기초학 연구분야에서, 때론 임상분야에서 고군분투하면서 동물 대체실험 연구라는 외로운 길을 걸었는데요. 지난 2016년 10월 동물 대체실험 연구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러쉬프라이즈'(신진연구자 부문)를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을 때 그는 문득 잊고 지내던 본과 진입식에서 자신이 했던 다짐을 떠올렸어요.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사회학도가 되고 싶었어요. 외고 입학 당시엔 국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외교관을 꿈꿨죠. 그런데 성적이 곧잘 나왔던 중학교 때와는 달리 외고에는 뛰어난 친구들이 모여서 그런지 등수가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또 고3 시절 남보다 늦게 찾아온 사춘기 열병을 겪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결국 김씨는 재수를 선택했고 한국외국어대 영어과에 합격했지만 영어만을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어요. 70% 이상 해외에서 살다왔거나 특례 입학한 과 친구들 틈에서 영어로 성공한다는 것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죠. 영어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수능 시험을 다시 치러 원광대 치과대학에 입학했어요.
 
김미주씨는 치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치과 의사를 포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기초학 연구에 푹 빠진 덕에 진로를 이어가게 됐다.

김미주씨는 치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치과 의사를 포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기초학 연구에 푹 빠진 덕에 진로를 이어가게 됐다.

치과대학 공부는 고교 수업 패턴과 비슷했죠. 동급생 80명이 종일 같은 공간에 앉아 수업을 들었고 담당 과목 교수님들만 수업마다 바뀌는 식이었어요. 수업 내용 역시 주입식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탐구하기보다는 그냥 암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때는 치과 공부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고 해요.
 
“고민 끝에 돌파구로 치과재료생체재료학 실험실에서 학생 신분으로 연구를 병행했습니다. 본과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실험실에서 기초학 연구에 푹 빠져 더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치과재료생체재료학이란 치과 재료의 생체 적합성 및 독성 평가, 위해성 평가에 대한 시험과 연구를 하는 학문이에요. 김씨는 본과 시절 전국 치과대학 및 치의학전문대학원생들의 학생학술경연대회에서 발표도 하고, 전 세계 치과인들 사이에서 학문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단체인 국제치과연구학회(IADR)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어요.
 
러쉬프라이즈 시상식에서 공연된 동물실험 반대 퍼포먼스.

러쉬프라이즈 시상식에서 공연된 동물실험 반대 퍼포먼스.

의학 및 치의학 분야에서 임상(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병상에서 일하는 것) 대신 기초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험난한 개척자의 길을 자처한 것과 다름 없었어요. 그만큼 연구 환경이 열악해서 치과의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 기초학을 연구하는 경우는 드물죠. 지방대 치대생의 경우 연구를 하려면 서울이나 외국에 있는 대학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국내 대학교 중에서는 연세대가 기초학자에 대한 지원이 많았는데, 김씨는 서울삼육병원에서 1년간 인턴 근무 후 2010년 연세대 치과대학 기초전공의로 조교 생활을 시작했어요.
 
“치과의사의 역할이 임상, 즉 직접 환자를 진료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연구 분야 역시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왕이면 임상 상황을 잘 아는 치과의사가 치과재료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초학 연구를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하면 할수록 깨닫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분야라 연구비를 따내는 것부터 무척 힘들죠. 그래서 때론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빚을 내서 연구하기도 해요.”
 
동물 대체실험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 부족도 걸림돌입니다. ‘새로운 재료를 연구·개발해서 허가 받아 상용화하면 될 것이지 과정이 뭐가 중요하냐’는 식의 생각이 업계에 만연해있어요. 하지만 일부 의식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나 화장품 회사들은 인체에 적용하기 전 테스트 단계로 공공연히 시행 중인 동물실험이 매우 비윤리적이며 효과를 제대로 입증하지도 못한다는 점을 꾸준히 문제 제기해왔어요.
 
김씨는 동물 대체실험과 치과재료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나가기 위해 유학을 준비 중이다. 그는 ‘성실함’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고 밝혔다.

김씨는 동물 대체실험과 치과재료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나가기 위해 유학을 준비 중이다. 그는 ‘성실함’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13년 3월부터 시행된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을 통해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류 제품을 팔지 못 하게 한 데 이어, 2016년 9월부터는 EU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제3국에서 동물실험을 한 성분을 포함한 화장품도 EU에서 유통·판매할 수 없게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화장품법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난 2월부터 동물실험을 거쳐 만든 제품을 유통·판매할 경우 처벌하죠.
 
“현재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동물실험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정말 잔인하다는 겁니다. 토끼 실험의 경우 토끼 뒷다리에 임플란트 재료를 심은 후 그 뒷다리를 떼어내서 임플란트가 얼마나 잘 붙었는지 확인합니다. 너무 잔인해서 연구자들조차 많이 울어요. 또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체를 제대로 재현해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인체는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동물실험을 통해 독성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거죠. 이런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일들이 발생한 것입니다.”
 
연세대 치과대학 대학원에서 4년간 석·박사 통합과정 기초전공의 및 조교 생활을 거친 김씨는 경희대 치과대학 학술연구교수, 일산복음병원 치과과장, 연세대 치과대학 생체재료공학교실 연구조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교정전문병원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며 미국 유학을 준비 중입니다. 탄탄한 전문직을 가졌지만 여전히 진로를 고민 중이죠.치과의사로서의 삶에 안주할 수도 있는데도 유학을 준비하는 이유는 ‘큰 사람이 돼서 크게 쓰임 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는 “폭넓게 공부해서 치과 치료 시술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지난해 가을 가족들과 함께한 여행. 김씨는 앞으로 자신의 재능을 청소년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지난해 가을 가족들과 함께한 여행. 김씨는 앞으로 자신의 재능을 청소년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동물 대체실험 분야나 치과재료 연구분야에서 일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국내에선 대학 같은 기관에 속해 있지 않으면 일할 곳이 별로 없습니다. 서울대 같이 그나마 큰 대학은 의료윤리를 지키며 일하지만 그 외 많은 대학들이 아직도 실험실에 쥐를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나도 후진적인 환경이죠. 예전에 글로벌 화장품회사인 로레알 산하 기업에서 협업할 때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 등 모든 여건이 부러웠습니다. 미국 유학을 가서 그런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공부 잘하는 DNA를 타고났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성실성이라고 강조했어요.
 
“어릴 적 저희 집 가훈이 ‘꿈이 있으면 땀을 흘려라’였어요. 의대나 치대에는 타고난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는 진짜 노력파였습니다. 아이 낳고 두 달 만에 학교에 나가 쉴 틈 없이 일했던 워킹맘이죠. 치과의사로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기초학 연구 과정 중에도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두 딸의 롤모델이 되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동물실험 대체 연구로 러쉬프라이즈 수상한 치과의사 김미주씨.

동물실험 대체 연구로 러쉬프라이즈 수상한 치과의사 김미주씨.

김씨는 앞으로 임상에 임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청소년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비싼 교정치료가 필요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의료봉사를 하는 것은 물론 의료정책을 디자인하는 일 등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해요. 그런 그가 청소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세요. 그리고 매사에 진지하게 책임감을 가지세요. 성실함이 바탕이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실이란 습관은 어떤 직업을 갖든 무엇을 하든 여러분들이 죽을 때까지 가져가면 좋은 것입니다. 요즘 중·고교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친구들이 많다던데 차라리 그 시간에 나가서 알바든 뭐든 일단 해 보세요. 내가 지금 보내는 시간이 미래의 나를 결정하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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