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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드루킹’은 문재인의 정의를 시험하고 있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드루킹’이 주도한 댓글 조작 범죄가 민주주의를 조롱하고 있다. 드루킹은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김동원씨의 필명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의견이 자유롭게 교환되는 건강한 공론장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살아 있는 여론이 정치의 에너지가 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과정 공정, 결과 정의 믿게 하려면
특검으로 정권 핵심도 수사하길
공론장 파괴 행위 엄히 단죄해야
민주주의의 파산을 막을 수 있어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극소수 댓글 조작 세력이 허위의 여론을 자유자재로 생산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도왔던 드루킹은 정권의 요직을 전리품으로 챙기려다 거절당했다. 그러자 느닷없이 반문(反文) 댓글조작을 하다 구속되는 막장극의 주인공이 됐다. 지금 공론장은 진위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에 빠졌고, 민주주의는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권력 핵심 실세인 김경수 의원은 ‘추장’ 드루킹과 특별한 사이다. 그는 “대선 때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뒤늦게 무리한 대가를 요구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에 반감을 품고 불법적 매크로를 사용해 악의적으로 정부를 비난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드루킹이 텔레그램으로 많은 연락을 보냈지만 일일이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해명이다. 김 의원이 기사주소(URL)를 전달하면서 “홍보해 주세요”라고 하자 드루킹은 “처리했습니다”라고 답신했다. 두 사람은 세계 최고의 보안메시지인 시그널로도 55차례 대화했다. 김 의원 보좌관이 드루킹이 이끌어온 인터넷카페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회원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가 드루킹이 구속된 이후 돌려준 사실도 드러났다.
 
물론 김 의원 주장대로 지지그룹 관리 차원에서 드루킹과 접촉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마치 김 의원의 대변인처럼 사건의 성격을 축소하기에 급급했고, 김 의원은 정면돌파 차원에서 경남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경찰은 이 사건 수사에 착수(2월 7일)한 지 두 달이 넘도록 김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하경칼럼

이하경칼럼

드루킹은 체포되기 직전인 3월 14일 페이스북에 “아무 생각 없는 놈들아 니들 2017년 댓글부대의 진짜 배후가 누군지 알아? 진짜 까줄까?”라는 글을 올렸다.  그가 누구인가.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문재인 후보를 앞지르자 “안 후보를 밀고 있는 MB 세력이 2012년 대선 때처럼 댓글 기계를 쓰고 있으니 우리가 대응해야 한다”고 회원들을 독려했던 인물이다. 드루킹이 제대로 입을 여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2012년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댓글 공작 주범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기소된 지 4년10개월 만에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그사이 수사진은 검찰과 경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국정원 서버를 뒤졌다. 그런데 지금의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거북이 걸음이다. 드루킹 일당의 휴대전화 170대 중 133대는 범죄 증거물이다. 그런데 분석도 하지 않고 검찰에 넘겼다가 시끄러워지자 돌려받았다. 권력의 눈치를 본 흔적이 역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고 했다. 정의가 결핍된 시대를 살아온 국민들을 위로하고 감동을 준 명 연설이었다. 그런데 드루킹 수사는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문재인의 정의는 드루킹 앞에서 무릎 꿇은 것인가.
 
‘수용(受容)의 대가’인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는 공론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드루킹은 추장 행세를 하면서 댓글 조직의 신입 회원에게 노비의 신분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조작된 댓글에 휘둘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양식(良識·bon sens)을 갖추고 있다”고 선언한 근대성(modernity)의 아버지다. 개인을 이성을 가진 자율적 주체로 격상시켜 근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로써 다수의 의견이 타당해졌고, 민주주의는 중우(衆愚)정치라는 오명을 벗고 탄탄대로를 걸었다.
 
2018년의 한국은 어떤가. 댓글세력이 만든 가상세계에 갇혀 너나없이 자율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데카르트가 부활한다면 조작된 댓글의 노예가 된 한국의 공론장과 민주주의에 파산선고를 내리지 않을까.
 
지금 드루킹은 공정과 정의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문재인 정부를 시험하고 있다. 여기서 내로남불의 이중기준을 적용한다면 스스로를 부정하게 된다. 특검을 수용해 정권 핵심까지 수사하고 전모를 밝혀야 한다. 네편, 내편 가리지 않고 공론장을 파괴한 자를 엄히 단죄해야 늦기 전에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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