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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따끈따끈한 음악의 덩어리, LP가 돌아왔다!

가끔 찾는 LP 바의 주인장은 항상 분주하다. 손님들의 신청곡 리스트를 확인하고 수많은 판 중에 정확하게 그 곡이 들어간 음반을 찾아낸다. 조심스레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도 바늘이 소리 골을 따라 움직일 때까지 얼마간은 기다려야 한다. 내가 신청한 곡이 나오기까지 짧게는 수 분에는 한 시간까지 기다릴 때도 있다. 한 곡을 듣기 위해 여간 수고로운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온전히 취할 수 있다는 것. LP의 매력은 스트리밍 음악으로는 듣지 못하는 숨결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문을 닫으면서 국내 LP는 해외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2011년 김포에 LP공장이 세워졌지만 품질상의 문제로 문을 닫았다. 2017년 6월 마장뮤직에서 설립한 LP 공장이 국내 유일의 LP 생산공장이다. 17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바이닐 팩토리에서 백희성 엔지니어가 완성된 음반을 검수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문을 닫으면서 국내 LP는 해외 주문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2011년 김포에 LP공장이 세워졌지만 품질상의 문제로 문을 닫았다. 2017년 6월 마장뮤직에서 설립한 LP 공장이 국내 유일의 LP 생산공장이다. 17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바이닐 팩토리에서 백희성 엔지니어가 완성된 음반을 검수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948년 미국 컬럼비아에서 비닐계 재질로 만들어져 등장한 LP는 양면을 합쳐 약 45분 내외의 음악을 재생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LP(Long Playing)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PVC를 원료로 해 바이닐(Vinyl)이라는 별칭도 있다. 40년 넘게 권세를 누리다 CD와 스트리밍 음악의 등장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이런 LP가 돌아왔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LP 음반 판매량이 2008년 500만장에서 2015년 3200만장으로 급증했다. 포브스지는 올해 판매량을 4400만장으로 추산하고 있다.  
레커 마스터에 소리골이 새겨지는 과정. 장진영 기자

레커 마스터에 소리골이 새겨지는 과정. 장진영 기자

 
 
국내 LP 판매량도 2016년 28만장, 2017년 32만장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아날로그 음원을 찾는 이들의 수요는 증가하는 데 반해 2004년 서라벌 레코드가 생산라인을 중단한 이후 국내에서 LP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2017년 6월 LP 생산공장 마장뮤직앤픽처스의 LP공장이 문을 열었다. 국내 유일 ‘Made in Korea LP’를 생산하는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음반은 그저 추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음원과 경쟁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답고 풍부한 소리를 추구한다. 이곳의 부활은 아날로그 음악에 미친 두 남자 하종욱 대표와 백희성 엔지니어가 있기에 가능했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 장진영 기자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 장진영 기자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는 기자, 음악감독, 기획자 등 음악과 이웃한 여러 직업을 거쳤다. 하 대표는 “지향이나 목적을 가지고 한 일들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었죠. 음악에는 장르나 경계가 없음을 신봉하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정의했다.  
2017년 6월 설립한 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 발매한 LP음반들. 장진영 기자

2017년 6월 설립한 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 발매한 LP음반들. 장진영 기자

 
 
“처음 제 역할은 아날로그 음악의 조언자였어요. 아날로그 음악을 추구하는 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 LP 생산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모험이라고 말했었죠.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같이 도전해 보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습니다.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그 모험에 합류하게 된 겁니다”
 
 
LP 공장을 부활시키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70년도에 제작된 기계는 부품 구하기도 힘들었고 양질의 생산품이 나오기도 어려웠다. 최적의 조건 값을 찾기 위해 3만여장을 테스트로 만들었고 LP 애호가 100여 명을 대상으로 품질 테스트를 거쳤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첫 음반은 고(故) 조동진 6집이다. 하 대표는 “첫 음반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어떤 음반이 우리와 상징적으로 같이 갈 수 있을까 하고요. LP는 과거의 유산이지만 진화하는 매체기도 하잖아요?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면서 조동진 선생님의 새로 나온 6집 앨범 앨범을 들었습니다. LP 황금기를 누렸던 조 선생님의 음악을 LP가 부활한 시점에 신작으로 내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걸 시작으로 현재와 과거를 잇는 음반들을 계속 낼 생각입니다. 앞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백희성 엔지니어가 소리골이 새겨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백희성 엔지니어가 소리골이 새겨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백희성 엔지니어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LP 원판을 만든다. 공 LP에 소리 골을 새겨 마스터판(복제를 위한 원판)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는 항공정비사로 일하다 그저 음악이 좋아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백 엔지니어는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전신인 벨포닉스 레이블에서 엔지니어로 일할 때 ‘아날로그로 표현할 수 있는 음질의 최고는 LP다’라는 말에 심취해 LP를 탐닉하기 시작했어요. LP를 만들고 싶은데 장비도, 지식도 없었죠. 이 스튜디오 자리가 1968년에 세워진 유니버설 레코드에요. 운영하시던 이청 사장님을 1년 넘게 설득해 장비를 넘겨받아 기술을 사사 받고 연구를 시작했죠”라며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첫걸음을 설명했다.
LP 생산을 위해 마스터판에 소리골을 새기는 커팅머신. 장진영 기자

LP 생산을 위해 마스터판에 소리골을 새기는 커팅머신. 장진영 기자

 
 
LP 제작은 스튜디오에서 원 음원을 재생하고 음반에 소리 골을 새겨 원본 음반을 만든 다음 세척 후 화학처리와 도금을 거친다. 그리고 원본 음반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금속으로 복사본 판형(스템퍼)을 만들어 PVC를 녹여 복제한다. 이후 완성된 음반을 귀로 청음하고, 소리 골이 정확히 새겨졌는지 현미경(180배)으로 검수하면 시중에 유통된다.  
PVC를 녹여 LP를 만든다. 왼쪽은 압착하기전 원형. 장진영 기자

PVC를 녹여 LP를 만든다. 왼쪽은 압착하기전 원형. 장진영 기자

 
 
백 엔지니어는 “소리를 만드는 데는 분명히 수준차가 존재해요. 아날로그 방식은 전기신호와 물리적인 긁힘, 재료 등이 합쳐져 품질이 결정되는데 만드는 과정에 이물질이 들어갈 수도 있고 이게 매끄러운 재생을 방해하죠. 그런 걸 최소화하고 원음에 가깝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해요. 모든 공정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완성된 LP는 청음과 동시에 현미경확대 검수를 진행한다. 오른쪽 화면이 180배 확대된 소리골 모양. 장진영 기자

완성된 LP는 청음과 동시에 현미경확대 검수를 진행한다. 오른쪽 화면이 180배 확대된 소리골 모양. 장진영 기자

 
 
그렇다면 좋은 소리란 어떤 것일까? 이에 백 엔지니어는  “소리를 새기는 바늘의 각도, 전류, 곡과 곡 사이의 간격, 그날의 온도와 습도, 엔지니어의 컨디션 등이 다 조합이 되어야 원본이 만들어져요. 그걸 만들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 마음의 자세가 좋은 소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듣는 사람의 ‘좋다!’ 말 한마디가 나올 수 있게 하는 거. 그게 최고의 소리가 아닐까요?”라며 웃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마장뮤직앤픽처스 LP 공장. 장진영 기자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마장뮤직앤픽처스 LP 공장. 장진영 기자

 
 
마장뮤직앤픽처스는 현재까지 언니네이발관 1집, 레오니드코간 바이올린 소품집 '앙코르', ABTB 1집, 혠릭 셰링 '리사이틀', 조동진 1집과 6집, 최고은 EP 2-2, 에릭 앤더슨 'Blue River', 요한나 마르치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파르티타' 3종, 커먼 그라운드 4집,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 3집, 로맨틱 쏘-울 오케스트라 등의 LP음반을 발매했으며 바이닐의 고유한 의견과 취향이 반영된 턴테이블과 스피커 제작 예정에 있다.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영상 마장뮤직앤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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