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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도, 임수경도 건너간 ‘이름 없는 주막’ 판문점

 남북 정상이 미주 앉는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이 지난 20일로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했다. 24일엔 청와대가 자유의집에 정상회담 상황실을 개소한다. 같은날 오후와 26일 등 두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 리허설도 진행한다. 24일 또는 25일쯤 북측 선발대도 내려와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 리허설을 할 계획이다. 남북 정상이 27일 판문점에서 비핵화에 공식 합의할 경우 판문점은 한반도의 변화를 알리는 출발점이 된다.
 

 1953년 10월 군사분계선 확정 후 현재 위치의 판문점. [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1953년 10월 군사분계선 확정 후 현재 위치의 판문점. [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①이름 없는 주막에서 시작=판문점은 북한군과 국제연합군이 1951년 10월 22일 당시 널문리에 있던 ‘이름 없는 주막’에 천막을 치고 접촉을 한 것에서 유래한다. 판문점이란 한자어 표기가 만들어진 것은 1953년 휴전 협정을 논의할 당시 중공군들이 회담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자로 된 간판을 내건 이후다. 널문을 한자로 쓰면 ‘판문(板門)’이고 여기에 구멍가게, 즉 주막을 의미하는 ‘점(店)’이 붙어 판문점이 됐다.
 
2007년 촬영한 판문각. 왼쪽부터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T1 ),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T3). [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2007년 촬영한 판문각. 왼쪽부터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T1 ),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T3). [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②‘임시’ 딱지 못 뗀 65년=판문점에는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MDL)을 중심으로 남측에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북측에 통일각과 판문각이 있다. 각각 회담장과 남북연락사무소로 사용하는 곳들이다.
 자유의 집과 판문각에는 3개의 푸른색 건물이 있다.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T1),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T3)이다. 1953년 휴전 협정 당시 ‘임시’(temporary)로 지었다는 뜻에서 T가 붙었다. T1과 T2, T3 사이에는 각각 MDL을 나타내는 가로 50㎝, 높이 5㎝ 크기의 콘크리트 턱이 만들어져있다. MDL을 도보로 넘을 때 군인을 제외한 회담 대표는 T1, T2 사이를, 군인은 T2와 T3 사이로 오간다.
 
1989년 8월 15일 임수경양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하여 내려오고 있다. [중앙포토]

1989년 8월 15일 임수경양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하여 내려오고 있다. [중앙포토]

 
 ③임수경, 민간인 최초 판문점 귀환=1989년 8월 15일 붉은색 티셔츠에 흰색 바지 차림의 대학생이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고 돌아온 한국외대 대학생 임수경이었다. 임수경은 같은 해 6월 서울에서 출발해 일본 도쿄와 서독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 그는 귀환 직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1998년 6월엔 사람이 아닌 소 떼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갔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충남 서산 농장에서 키운 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 것이다. 트럭 50대 행렬은 15분 만에 MDL을 넘어갔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 6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다. [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 6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다. [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④지미 카터도 판문점 통해 방북=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세 차례 방북 경험이 있다. 그는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을 꺼내는 등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6월 처음 방북했다. 당시 부인 로절린 여사와 함께 판문점을 경유해서 올라갔다. 판문점엔 북측에서 송호경 당시 외교부 부부장이 카터 전 대통령 영접을 위해 나와 있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승용차로 평양에 도착해선 김영남 당시 외교부장의 영접을 받았다.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난 그는 사흘 뒤 방북 때와 같은 경로로 서울에 돌아와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이 지난1월 9일 오전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과 전체 회의 시작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이 지난1월 9일 오전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과 전체 회의 시작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⑤655회 남북회담 중 판문점에서만 360회=통일부가 17일 배포한 ‘남북회담 약사 및 판문점 현황’에 따르면 역대 655회(4월 17일 기준) 남북회담 가운데 판문점에서만 360회가 개최됐다. 분야별로는 정치(262회), 이산가족 등 인도적 현안(153회), 경제(132회), 사회문화(59회), 군사(49회)의 순이었다. 360회 판문점 회담을 장소별로 살펴보면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T1)에서 156회, 남측 평화의 집에서 94회, 북측 통일각에서 88회, 남측 자유의집과 북측 판문각에서 각각 11회와 12회 회담이 열렸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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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