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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간판 자주 바뀌면 불황” CEO들의 경기 읽는 법

홍병기의 경제 리포트
윤경은 KB증권 사장은 출퇴근 때마다 동네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통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 나름의 독특한 경기 진단법이다. 쓰레기 배출량이 늘어나면 경기가 좋아진다는 신호로 본다. 경기 호조로 소비가 증가하면 집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휴먼 인덱스' 활용
쓰레기 배출, 신사복 판매 늘면 호황
1t 트럭·건강식품 잘 팔리면 불황

지인들과 대화도 주목
증시 문의 잇따르면 과열 신호탄
주식투자 비관론 확산 땐 바닥권

미국의 비공인 생활지표들
스커트 길이 짧아지면 주가 상승
불황일수록 레스토랑 웨이터 친절

 
실생활 현장 곳곳에 녹아있는 체감지표들은 경제의 흐름을 읽는 데 유용하다. 국내외 경기에 민감한 증시를 끼고 사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중엔 자기만의 지표로 장세를 판단하거나 경기를 진단하는 사람이 많다. 오르락내리락을 거듭하는 장세 속에서 전망이 불투명할 때마다 이런 ‘비공인’ 지표들은 위력을 발휘한다. 각종 통계적 정량 지표와 과학·기술적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데이터와 분석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시장의 징후들이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 체감지표들은 우리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의 행태를 분석해 경제와 시장을 들여다본다는 뜻에서 ‘인간 지수(Human Index)’로 불린다. 경제와 시장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심리와 대중의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세탁소 주변을 자주 기웃거린 것으로 유명하다.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경기가 좋아지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인간 지수 적극 활용하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본지 조사 결과 국내 주요 증권사 CEO들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감지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입을 모았다. CEO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주변 지인들과의 모임이나 대화다.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사장은 “평소 증시에 관심 없던 지인들의 문의가 급격히 늘어나면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경계 신호”라고 말했다. 권희백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유망 주식 종목을 추천해달라거나 주식 대박 사례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 시작하면 증시가 정점까지 올랐다고 의심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철강왕 카네기도 단골 구두닦이까지 주식 투자에 나서자 장세가 천정에 도달했다고 보고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반대로 “주변 사람들이 거의 모두가 주식투자에 대해 비관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주가가 바닥”(이진국 하나금융투자 사장)으로 분석한다.
 
과거에는 증권사 객장의 고객 수나 분위기가 중요했다. 아이 업은 아줌마나 시골서 농사짓던 사람까지 객장에 투자하러 나오면 주가가 ‘상투’라는 속설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자 거래가 객장 거래를 대체하게 되면서 이런 이야기는 사라졌다. 대신 곳곳으로 흩어진 대중들의 투자 심리를 제대로 읽어내야 장세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됐다.
 
‘뉴스에 팔고 소문에 사라’는 격언도 달라진 언론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언론에서 연일 톱뉴스로 다뤄질 때가 과열의 끝자락이라 봤지만, 이제는 포털의 상위 검색어로 대체됐다. 최석종 KTB투자증권 사장은 “포털 검색어 상위 순위로 오르내리는 이슈나 기업은 이미 이런 호재가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돼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기관투자자들의 동향도 눈여겨봐야 한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NDR(Non-Deal Roadshow·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 설명회)에 기관투자자들이 많이 참석하면 단기 꼭짓점에 도달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이는 이미 많은 펀드 매니저들이 그 회사 주식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추가 매수해줄 주체가 별로 없는 상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흐름을 나름의 ‘단골’ 지표로 애용하는 CEO도 있다. 고속도로 통행량(나재철 대신증권 사장)이나 백화점 매장 고객 수(김해준 교보증권 사장)는 여전히 매력적인 체감지표로 꼽혔다.  
 
호황일수록 신사복 매장이 붐비고(김해준 사장), 불황일수록 자영업자들이 주로 찾는 1t 트럭이 많이 팔린다(윤경은 사장). 호황이면 운동 관련 의류·장비가 많이 팔리고, 불황 때는 약이나 건강식품 판매가 늘어난다(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신규 기업공개 건수가 증가하면 호황(정영채 사장), 은행카드 연체율이 올라가면 불경기(나재철 사장) 식으로 기존 계량 지표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명석 유안타 증권 가장은 내수의 중심지인 명동 거리의 풍경에 주목한다. 골목길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 호황의 징조이며, 식당 간판이 자주 바뀌면 불경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명동 일대에서 상품권 할인율이 낮아질수록 경기가 좋아지는 신호로 보기도 한다(윤경은 사장).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은 스마트폰 앱을 나름의 지표로 활용한다. 국내외 고객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앱을 사용하는지를 꼭 물어본다. 각광받는 산업들이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묻는 습관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읽고 관심을 가져야 할 기업들을 추려낸다는 것이다.
 
체감지표만 의존 말고 보조수단으로
미국에서는 이미 언론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비정량 체감지표’들을 개발해왔다. 현장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경제 현상에 기초해 경기 판단·예측을 위한 참고지표로 활용한다. 불황일수록 빨간 립스틱이 많이 팔린다는 ‘립스틱 효과’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등장한 이후 고전적인 체감지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후 여성 옷의 색깔에서 레스토랑 웨이터의 불친절, 칵테일 라운지의 이성 동석자 수 등으로 경기나 장세를 진단하는 다양한 참고지표들이 등장했다. 뉴욕타임스의 ‘고통지수’처럼 기존 통계수치를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시황을 파악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워런 버핏 지표’는 국민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을 활용해 100%를 넘어설 경우 증시 과열로, 50% 미만일 경우 저가 매수의 기회로 판단한다.
 
손욱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은 “생활 체감지표들은 기존 경제이론으론 제대로 설명되지 않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통계적으로도 경기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평가돼 현장감 있는 보조지표로 활용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생활 체감지표들은 판단의 보조 수단으로 그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증시와 경기 진단은 결국 기업 가치에 대한 판단”이라며 “제조업 가동률, 실업률, 소비자 물가, 장단기 금리 차, 주가수익률(PER)과 같은 기술적 통계지표 등을 바탕으로 분석한 실제 경기 전망과 적절하게 곁들여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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