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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4·27 판문점, 그리고 그후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전쟁과 평화를 가르는 극적인 만남으로서의 정상회담에 대해 깊은 통찰을 많이 남긴 이들은 영국인이었다. 지도자들이 국가의 생존을 걸고 벌이는 장엄한 한판 승부를 산(山) 정상에서의 회담(summit meeting)이라고 처음 부른 이는 윈스턴 처칠이었다(1950년 에든버러 연설). 또한 국가 지도자들을 산 정상에 오르는 등반가에 빗대어 이들의 영광과 도전을 노래한 이는 영국 시인 바이런이었다.
 
 산의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은 마침내
 구름과 눈이 뒤덮인 가장 높은 꼭대기를 발견한다.
 위에서 영광의 태양이 높게 빛나고
 아래에서 지상과 대양이 넓게 펼쳐져 있지만
 그의 주위에는 얼음바위가 차갑고
 머리 위에서는 거친 폭풍이 몰아친다.
 
풀어 말하자면 평창올림픽 외교와 대북제재라는 양날의 검을 능숙하게 구사해온 문재인 대통령은 일주일 후면 4·27 남북 정상회담에 나서게 됨으로써 “구름과 눈이 뒤덮인 높은 꼭대기를 발견”하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다음주 판문점에서 북한 비핵화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하고 북·미 평화의 틀을 중재한다면 문 대통령은 역사책 속에 “영광의 태양이 높게 빛나는”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평화의 넓은 대양에 들어서기까지 문 대통령은 “차가운 얼음바위와 거친 폭풍”, 즉 강대국들의 한반도 이익 확보 전쟁과 북한체제의 불확실성을 넘어서야만 한다.
 
며칠 사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메가톤급 뉴스들은-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 가능성, 바쁘게 뛰어다니는 아베와 트럼프 회담,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급격한 접근 등-문 대통령이 강대국 권력정치의 얼음바위와 거친 폭풍을 뚫고 나가야만 평화의 바다에 다다를 수 있음을 상징한다.
 
이 지면에서 우리가 남북 정상회담의 거대한 외교무대에 걸린 주요 이슈들을 일일이 논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필자는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이라는 건곤일척의 무대를 성공적으로 끌어가는 데 요긴한 몇 가지 기대 사항을 (1)정상회담의 협상논리 (2)정상회담의 사후관리 두 측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장훈칼럼

장훈칼럼

첫째, 실무자들이 사전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결국 평화의 큰 물줄기는 국가 지도자들이 직접 맞부딪치는 정상회담의 본 무대에서 협상, 위협, 보상의 복합 함수 속에서 결정된다. 정치학자들은 정상회담 본 무대의 협상 구조와 논리에 대해 적지 않은 연구를 해왔는데, 특히 협상 성공의 요체는 상대에게 명확한 목표를 밝히면서 동시에 이와 관련된 보상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하고, 이 둘 사이의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북한 비핵화라는 타협 불가능한 목표에 대한 의지는 굳건하고 명확하게 밝히면서 동시에 문 대통령이 이를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보상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압박 전략을 쓰되, 목표와 불확실성은 반드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가름했던 얄타 정상회담에서 목표와 불확실성의 균형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낸 지도자는 스탈린이었다. 말하기보다는 인내하며 듣기를 잘했고, 자신의 양보안을 가장 결정적 순간까지도 감추고 있다가 그 보답으로 더 큰 것을 얻어냈던 이는 미국의 루스벨트가 아닌 소련의 스탈린이었다는 것이다.(데이비드 레이놀즈 『정상회담』)
 
둘째, 4·27 정상회담은 남북의 두 지도자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향한 묵직한 공동선언을 전 세계의 카메라 앞에서 읽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전쟁을 피한 성과에 안도하고 평화를 향한 기대에 부풀어 있을 4월 27일, 문 대통령은 역사의 정상에 올라선 지도자로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쯤이면 피곤의 극한에 몰려 있겠지만 문 대통령은 우리 시민들에게 정상회담의 성과를 쉽고 솔직하게 설명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이뤄냈지만 이후 남북공동선언문을 둘러싼 남남갈등의 확산은 그의 발목을 잡았었다. 이 아픈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다음주 남북 정상의 공동 선언문에는 몇 가지 틈새들이 슬쩍 가려져 있을 것이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가는 로드맵을 둘러싼 남북 간의 보이지 않는 틈은 정상회담의 열기가 가라앉은 이후에도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될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정상회담의 안팎으로 세밀한 사후 관리가 이뤄질 때 문 대통령은 민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대통령으로 역사의 정상에 서게 된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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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