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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재방송은 제발 그만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재방송은 지겹다. 재미도 없다. 결과를 뻔히 알기 때문이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물러난다. 마침내!! 예의상 ‘갑자기’란 수식어를 붙였지만, 그의 사임을 언론들은 ‘올 것이 왔다’고 보도했다. 권오준은 ‘일신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일신상의 이유야말로 ‘타의’의 다른 표현임을.
 
권오준은 사실 오래 버텼다. 그는 새 정부 출범 후부터 줄곧 좌불안석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중국·인도네시아 방문에 동행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퇴임 압박설이 돌았다. 측근들은 그가 “언제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지, 언제 물러나야 눈치 없다는 소리를 안 들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엔 “모처에서 (사임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어쩌면 좋으냐”고 지인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 지인은 “일단 버텨라. 직접적이고 분명한 메시지가 올 때까지”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게 재방송인 건 전임 정준양 회장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정준양도 처음엔 버텼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배제됐지만, 퇴임 압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준양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A씨는 “청와대가 에둘러 사퇴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정 회장은 믿지 않았다”며 “본인이 직접 청와대 의중을 확인한 뒤에야 사퇴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다음은 어떻게 될까. 재방송이니 또 똑같은 장면이 되풀이될까. 시계추를 4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4년 3월 포스코 인사는 사실상 청와대에서 했다. 정준양을 퇴임시킨 청와대는 포스코 인사를 놓고 잔치를 벌였다. 실세들 순으로 포스코○○○ 사장은 누구, 포스코○○ 사장은 누구, 등기이사는 누구누구를 점지하는 식이었다. 새로 선임된 권오준 회장 측도 나름 인사안을 준비했지만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입도 뻥끗 못 했다고 한다. 권오준은 인사 하루 전 청와대에서 명단을 통보받고 그대로 발표했다고 한다.
 
권오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는 전임 회장의 방만 경영을 수습하는 데 집중했다. 수익 안 나는 부문을 정리하고 부실을 털어냈다. 매출과 이익을 크게 키운 것은 공이다. 반면 자기 사람들을 유독 챙긴 건 과 쪽이다. 포항·광양의 연구·기술 인력을 재무·경영·기획의 요직에 앉혔다.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 마피아답다는 내부 비판이 많았다. 중국이 지난해부터 철강 생산을 크게 줄였지만, 반사이익을 제대로 못 챙겼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권오준의 퇴진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의 취임 과정이 그다지 투명하지 못했다는 게 첫 번째요, 그가 매출 61조원, 재계 6위 포스코에 걸맞은 경영 능력이나 새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두 번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오래된 격언에도 동조하는 쪽이다. 그럼에도 이 정부가 지난 정권과 똑같은 방식으로 권오준을 쫓아낸 것은 실망이다. 적폐를 적폐로 덮은 꼴 아닌가.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한 가지만 당부한다. 다음 포스코 회장은 제발 제대로 골라달라. 우선 코드 인사는 안 된다. 전문성이 떨어져서도 안 된다.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철강을 제대로 아는 인물이어야 한다. 철강 산업은 무역 전쟁의 최전선에 내몰려 있다. 월드 베스트로 앞서가지 않으면 생존마저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철강 마피아의 손에 또 지휘봉이 쥐어져도 곤란하다. 창립 50년을 맞은 포스코는 단순한 철강회사가 아니다. 비철강 부문의 덩치도 훌쩍 커졌다. 에너지·건설·엔지니어링·ICT·무역 같은 비철강 부문을 따로 묶어 별도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때다.
 
이런 인사를 하려면 사심이 없어야 한다. 회장을 자기 사람으로 앉힌 뒤, 계열사 인사 잔치를 또 벌일 속셈이라면 제발 접어달라. 결말까지 재방송을 보고 싶진 않다. 지겹다, 정말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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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