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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신상옥이 사랑한 도시 안양…영화 도시가 되다

영화감독 신상옥, 영화배우 최은희 부부 [중앙포토]

영화감독 신상옥, 영화배우 최은희 부부 [중앙포토]

배우 최은희·감독 신상옥과 안양시의 인연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현대아파트의 앞 도로의 옛 이름은 '신필름로'다. 
신상옥(1926~2006년) 감독과 영화배우 최은희(1926~2018년)씨가 운영하던 '신필름'에서 따왔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신 감독과 경기도 광주 태생의 최씨와 연관 있는 거리가 안양시에 생긴 이유는 '영화촬영소' 때문이다. 
이 아파트 일대는 1970년대만 해도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 촬영소가 있었다.    
1957년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문을 열었던 영화촬영소. [사진 안양시]

1957년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문을 열었던 영화촬영소. [사진 안양시]

 
1957년 문을 연 안양 영화촬영소는 부지 면적만 11만5702㎡에 달하는 당시 동양 최대의 영화촬영소였다. 동시 녹음이 가능한 스튜디오와 최신식 필름 현상 시스템, 발전기 등을 갖춰 '동양의 할리우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전용 스튜디오가 없어 창고나 옥상 등에서 영화를 찍던 영화인들은 모두 안양으로 몰려왔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씨도 이들 중 하나였다. 

신필름 안양촬영소[중앙포토]

신필름 안양촬영소[중앙포토]

 
한국 영화의 대부격이었던 신상옥 감독과 대표 배우였던 최은희씨는 1963년 경영난을 겪던 안양 영화촬영소를 아예 인수한다. 
또 1966년 신필름을 설립해 1970년대 말까지 이곳에서 80여 편에 이르는 영화를 만들었다. '빨간 마후라', '성춘향' 등 신 감독의 대표작이 모두 여기서 나왔다.
이후 안양은 명실상부한 영화의 도시로 떠올랐다. 
안양시는 지난해부터 영화촬영소가 있었던 이 아파트 입구에 '안양 영화촬영소 터'라고 적힌 안내문을 붙여 기리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는 지난해 영화촬영소가 들어섰던 석수현대아파트 입구에 '안양영화촬영소 터 안내판'을 설치했다. [사진 안양시]

경기도 안양시는 지난해 영화촬영소가 들어섰던 석수현대아파트 입구에 '안양영화촬영소 터 안내판'을 설치했다. [사진 안양시]

 
신필름·영화학교 세워 영화 도시 안양 만들어
 
신필름이 설립되면서 안양은 이들 부부의 전성기를 함께 한 곳이자 한국 근대 영화사를 주도했던 산 역사의 본점이 됐다.
최병렬 안양지역시민연대 대표는 "안양하면 '안양포도'와 '영화'로 대표됐는데 그 디딤돌이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가 만든 신필름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최은희, 신상옥부부 [중앙포토]

최은희, 신상옥부부 [중앙포토]

 
최씨 부부가 안양을 영화의 도시로 만든 것은 '영화촬영소'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영화 인력 양성을 위한 학교까지 세웠다. 
'안양예술학교'가 그것이다. 서울 용산에서 사무실을 운영할 당시 신인 배우를 양성하기 위해 설치했던 '연기실'을 전문적인 교육기관으로 만든 것이다.
1966년 고교과정으로 정식인가를 받아 1967년 3월 개교한 안양영화예술학교는 1982년 안양예술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안양예술고등학교는 현재도 많은 배우와 예술인을 길러내는 학교로 손꼽힌다.
최은희 씨는 1969년부터 납북되던 1978년까지 약 10년간 교장으로 재직했다. 
 
최씨는 재정난에 내몰린 학교의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안양 영화촬영소가 없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최은희씨가 납북되고 6개월 뒤 신상옥 감독도 북한으로 납치되면서 영화촬영소는 1981년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엔 도시개발이 이뤄지면서 현재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영화배우 故 최은희가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 인근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장지는 경기 안성천주교공원묘지이다. 2018. 4. 16 사진공동취재단

영화배우 故 최은희가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 인근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장지는 경기 안성천주교공원묘지이다. 2018. 4. 16 사진공동취재단

 
안양시와 이들 부부의 인연은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탈북한 부부가 1987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인 2002년 안양시는 시 소유 건물인 옛 안양경찰서 건물을 이들에게 임대했다. 최은희씨와 신상옥 감독은 여기에 2년 과정의 영화학교인 '신필름예술센터'를 세웠다. 
 
분장실, 방송실, 미디어 실습실, 음악·개인 연습실, 소품제작실, 의상 제작 및 보관실 등을 갖추고 영화제작, 방송제작, 연극제작, 실용음악, 영상미디어 등을 가르쳤다.
당시 신상옥 감독은 "이론 위주의 교육보다 현장체험과 경험을 겸비한 실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강한 집념을 내비쳤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국내로 영구귀국한 2003년 후학 양성을 위해 운영했던 안양 신필름예술센터. 옛 안양경찰서 부지를 임대해 사용하다가 2006년 문을 닫았다. [사진 안양시]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국내로 영구귀국한 2003년 후학 양성을 위해 운영했던 안양 신필름예술센터. 옛 안양경찰서 부지를 임대해 사용하다가 2006년 문을 닫았다. [사진 안양시]

운영 첫해인 2003년에만 160여명이 입학해 목표대로 운영되는듯했지만, 이듬해 입학생이 100명으로 줄더니 2005년에는 30여명까지 떨어져 어려움이 가중됐다. 
시의회 등에서도 "시가 이들 부부에게 특혜를 줬다"며 난리를 쳤다.  

 
신필름예술센터는 결국 2006년 2월 안양시에 철수 의사를 밝혔다. 그해 4월 신상옥 감독도 별세했다. 
최병렬 안양지역시민연대 대표는 "부부와 안양시가 '영화 도시 안양'을 다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나 '최은희·신상옥'을 알지 젊은 층엔 낯선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국내로 영구귀국한 2003년 후학 양성을 위해 운영했던 안양 신필름예술센터. 옛 안양경찰서 부지를 임대해 사용하다가 2006년 문을 닫았다. [사진 안양시]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국내로 영구귀국한 2003년 후학 양성을 위해 운영했던 안양 신필름예술센터. 옛 안양경찰서 부지를 임대해 사용하다가 2006년 문을 닫았다. [사진 안양시]

 
안양시는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의 유지를 받들어 "안양을 다시 영화의 도시도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최은희 선생의 빈소에 '안양시' 이름의 근조기를 보내고 이필운 시장 등이 직접 조문도 했다.
이 시장은 "우리나라 영화계에 산증인이자 큰 별이 졌다"며 "처음 안양에 신필름과 안양예고를 만들어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밑바탕을 만드신 그 뜻을 잊지 않고 길이 기억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안양시는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이 추진하고 있는 국립영화박물관 유치에 뛰어든 상태다. 
안양문화예술재단도 7월부터 9월까지 안양박물관에서 영화촬영소에 대한 추억 등이 담긴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앞서 지난 8~11일에는 안양아트센터에서 신상옥 감독 추모 12주기를 맞아 '안양시 영화역사 전시회 겸 무료 영화상영전'을 열기도 했다. 
홍재언 안양시 문화정책팀장은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를 기리기 위해 매년 4월에 추모행사를 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양=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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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