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한참을 운 뒤 저울에 올라갔는데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 시 한수] 전새벽의 시집 읽기(6)
결혼의 계절, 봄 [사진 pixabay]

결혼의 계절, 봄 [사진 pixabay]

 
개인적인 얘기인데, 요새 경사가 많다. 노총각 대학 선배가 이윽고 결혼에 골인했다. 은밀히 사내연애하던 친구 커플도 최근 혼인을 올리고 당당하게 손을 잡고 다닌다. 나는? 나도 한다. 불과 다음 주가 결혼이다. 격려, 축하, 포옹과 벚꽃이 가득한 나날이다.
 
술도 마신다. 축하해, 고마워, 이런 말들을 하며 밤마다 잔을 부딪친다. 그러다 문득 모임의 웃음소리가 너무 커졌다고 느낄 때, 나는 혼자서 밖으로 나간다. 슬그머니 빠져나가 그런 것들 것 본다. 차가운 공기, 무심한 달빛, 먼 곳에 있을 바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2017), 신철규 지음.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2017), 신철규 지음.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혼자 빠져나와
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가만히 되뇌곤 했다.
그 이름까지 사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 2017)>, ‘시인의 말’ 부분
 
시인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자꾸만 불렀다. 먹고 마시는 사이 그 이름들을 잊을 것을 두려워했다. 왜 그랬을까. 애써 혼자 되어 지난 일을 애도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운다고 뭐가 변하기는 하나.


한참을 울고 체중계에 올라가도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바벨’ 부분, 같은 시집
 
시인은 눈물의 영향에 회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몸무게가 그대로라니, 세상에 달라진 게 조금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나 많이 울었는데, 달라지는 게 없다면 왜 우는 것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이런 생각에 잠길 때, 어떤 사람은 신경질적이 된다. 과거에 매몰되지 말자며 성을 낸다. 앞으로의 일만 얘기하자는 것이다. 이 말은 잘못됐다. 과거의 데이터 없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학자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동시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도 잘못됐다. 살아 있다는 건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되고 그리워해지고 사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없는 그 이름들은 그러므로 아직 살아 있다. 그들도 살아 있고 우리도 살았는데 어찌 우리의 삶만 이야기하자고 할 수가 있나.


 
너의 슬픔이 곧 나의 슬픔 
눈물. [일러스트 = 프리미엄 김미지]

눈물. [일러스트 = 프리미엄 김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몸무게’ 이야기는 다소 의외다. 그렇게 울었는데 달라진 게 없다니, 그가 다루는 슬픔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시인은 뒤에 가서 이렇게 적는다. 비로소 나는 그와 함께 통곡할 준비가 된다.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을 파먹는다


한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물의 중력’ 부분, 같은 시집
 
이제 알았다. 어떤 눈물은 엄청나게 무겁다. 흘린다고 몸무게가 빠지지는 않는 걸 보니 원래 몸 안에 가지고 있던 울음은 아니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무언가였을 것이다. 그 무언가를 ‘사건’이라고 하자. 사건이 내 안에서 어떤 조건과 만나 울음이 시작된다. 너무 무거운 눈물이라 바닥이 기울 정도다.
 
저쪽 사람들이 차가운 땅에 머리를 박고 무거운 눈물을 흘리는 동안 이쪽 사람들은 파티를 즐기며 한층 업(up)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으므로, 기울기는 점점 심해진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이제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릴’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결심한다. 이쪽에서도 같이 울기로. 그가 이따금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굳이 자발적 슬픔에 몸을 내던지는 이유다.
 
기울기가 위태로운 지금은 아주 무거운 저울추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인도 저울추가 되기를 자청했다. 그렇다면 다행인 일이 아닌가 한다.
 
밤새도록 울고 난 뒤에도 변화가 없는 시인의 몸무게가 말이다.
 
 
신철규 시인
신철규 시인. [사진제공=문학동네]

신철규 시인. [사진제공=문학동네]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7년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발간
 
전새벽 회사원·작가 jeonjunhan@naver.com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