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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대통령 아내에서 대통령의 엄마로…미국인이 사랑한 국민할머니

남편과 아들을 ‘세계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부인’으로 불린 바버라 부시 여사가 1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92세.
 
그는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인 조지 H W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어머니다.
 
그는 남편과 아들(조지 W 부시) 부부 슬하의 자녀와 손자, 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가족의 대변인인 짐 맥그래스는 최근 “바버라 여사는 ‘임종 돌봄(comfort care)’에 집중할 것”이라며 그녀가 사실상 ‘소극적 안락사’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2007년 남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왼쪽), 아들 조지 W 부시와 함께한 바버라 여사. [로이터=연합뉴스]

2007년 남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왼쪽), 아들 조지 W 부시와 함께한 바버라 여사. [로이터=연합뉴스]

 
명문 피어스가(家) 출신인 바버라 여사는 1925년 미 뉴욕에서 출생했다. 14대 미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1853~1857년)가 먼 친척이다.
 
그는 16살 때인 41년 크리마스 댄스 파티에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한눈에 반한 이들은 교제 1년 반 만에 약혼했다. 부시가 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무사히 귀환한 뒤 결혼식을 올렸다.
 
2004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아들 부시 대통령 지지연설을 하고 있는 장면. [로이터=연합뉴스]

2004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아들 부시 대통령 지지연설을 하고 있는 장면. [로이터=연합뉴스]

바버라 여사는 현역 시절 남편을 극진히 내조했다. 66년 미 하원을 시작으로 유엔 대사,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부통령, 그리고 대통령까지 조지 H W 부시가 줄곧 성공 가도를 달린 배경에는 바버라 여사의 내조가 핵심적이었다. 그는 대통령 시절의 남편에게 “성인(saint)”이라고 호칭하면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6남매를 둔 이들 부부는 미 대통령 부부 가운데 가장 오래 결혼 생활(73년)을 이어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버라 여사는 정계에 몸담은 두 아들(조지 W 부시, 젭 부시)에겐 억척스러운 어머니였다. 지난 2000년엔 대선에 출마한 장남 조지 부시를 위해 하루에 주(州) 세 곳을 돌며 지지 연설을 했다. 지지 편지와 전화도 수천 통씩 돌렸다.
 
그런데 차남의 대선(2016년) 출마 땐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부시 집안의 대통령은 두 명으로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출마를 고집한 젭 부시는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막상 선거전이 시작되자 고령의 몸을 이끌고 지원 유세를 벌이는 모정을 보였다. 그는 당시 트럼프를 향해 “그는 여성과 군대에 대해 끔찍한 것들을 말한다. 사람들이 왜 그를 지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인 1992년 한·미 정상회담 당시 김옥숙 여사(오른쪽)와 함께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퍼스트레이디 시절인 1992년 한·미 정상회담 당시 김옥숙 여사(오른쪽)와 함께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남편의 대통령 퇴임 뒤 바버라 여사는 문맹 퇴치와 여성 권리 증진에 힘썼다. ‘바버라 부시 재단’을 세워 10억 달러 이상의 자선기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는 부유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통령의 아내로, 또 대통령의 어머니로 화려하고 주목받는 일생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가식 없는 모습과 이웃집 할머니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미국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염색하지 않은 새하얀 머리와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가짜 진주 목걸이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남편 부시가 재선에서 실패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인 99년에도 미국인 63%가 그녀에게 호감을 나타낼 정도였다.
 
바버라 여사가 평생 헌신하여 일궈낸 부시가(家)는 미국의 정치명문이 됐을 뿐 아니라 공화당의 핵심 가치를 대변했다. 그에게 ‘공화당의 여족장’이라는 평이 따라붙는 이유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바버라 여사는 미국 가정의 가치를 수호한 사람”이라며 “그가 보인 이 나라와 가족에 대한 헌신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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