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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끝장 토론 해커톤 합의, 빅데이터 금광 캐는 계기 될까

서경호의 이슈 현장
“한국엔 빅데이터의 금광이 있는데 그걸 캐내지 못해 안타깝다.” 빅데이터 경영의 석학인 미국 밥스 칼리지 톰 데이븐포트 교수의 지적이다. 마치 “머리는 좋은데 도통 공부를 안 해”하면서 혀를 끌끌 차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의 큰 기둥인 빅데이터의 금광이 정말 우리 손안에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하고 전자정부 등 공공인프라도 좋다.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가 새로운 자본이고 경쟁력이다. 데이터가 한강처럼 거대하게 흐르고 쌓이는데 왜 제대로 활용을 못 하고 있을까. 이걸 고민하는 민관 전문가의 1박 2일 끝장 토론 현장을 들여다봤다.
 
 
3일 해커톤에서 인사말을 하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왼쪽 위). 장 위원장은 ’해커톤은 집중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사진은 그 전에 열린 1, 2차 해커톤 참여자의 활동 모습. [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3일 해커톤에서 인사말을 하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왼쪽 위). 장 위원장은 ’해커톤은 집중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사진은 그 전에 열린 1, 2차 해커톤 참여자의 활동 모습. [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지난 3일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주최로 제3차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이 열렸다. 해커톤(hackathon)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개발자들이 모여 마라톤 하듯 단기간에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대회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이 해커톤 형식을 빌려 민관이 끝장 토론하는 장을 마련했다. 장 위원장은 “여러 부처가 관련돼 있고 이해관계자가 많은 의제는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해커톤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날 해커톤은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참석자 자리에는 물·음료수와 함께 초콜릿이 한 통씩 놓여있는 게 특이했다. “당(糖) 떨어져 지칠 때까지 토론하라는 주최 측의 배려”라는 농담 섞인 분석이 나왔다.
 
23명의 민관 전문가가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의제로 시작한 토론은 4일 새벽 1시 30분까지 이어졌다. 행사를 준비한 이상훈 4차산업혁명위원회 총괄기획팀장은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복도에 남아 일부 참석자들이 토론을 이어갈 정도로 분위기가 뜨거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1박 2일의 해커톤을 높이 평가했다. 관료와 산업계,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오해를 풀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뒤집어보면 그동안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막은 걸림돌이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첫째, 이제까지 정책 당국과 이해당사자 모두 소통 의지가 부족했다. 김보라미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변호사는 “과거엔 정부가 공청회를 열어도 사업자들이 주로 참여했고, 초대받지 못한 시민단체는 공청회장 밖에서 시위를 벌여야 했다”며 “지난 10년간 사회적 합의를 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둘째, 그나마 있는 소통마저 형식적이었다. “법안이나 정책을 설명하는 공청회나 세미나를 해도 의견을 수렴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토론자끼리 한마디씩 하면 끝나버리니 충분하게 의견을 들을 수 없었다. 반면, 해커톤에서는 집중 토의를 한 덕분에 시민단체 등 이해당사자를 이해하고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최윤정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의제로 1박 2일간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3차 해커톤 모습(위쪽 사진). 아래 사진은 그 전에 열린 1, 2차 해커톤 참여자의 활동 모습.[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의제로 1박 2일간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3차 해커톤 모습(위쪽 사진). 아래 사진은 그 전에 열린 1, 2차 해커톤 참여자의 활동 모습.[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해커톤에선 가명 정보의 활용과 보호, 익명처리의 절차와 기준 등에 있어 큰 틀의 합의가 있었다. 데이터 결합 문제는 산업계와 시민단체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개인정보 분야는 데이터 활용을 강조하는 산업계와 보호에 중점을 두는 시민단체 사이의 골이 깊다. 보수와 진보도 활용과 보호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분명한 건 한국의 정보보호 규제 수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영국 BBC는 2013년 “한국의 정보보호 규제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하며, 특히 정보제공 동의 제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강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2014년 신용카드사 정보유출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 안 그래도 강한 규제가 더 세졌다. 문제가 터지면 원인을 정확하게 따져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일단 규제부터 강화하는 나쁜 버릇이 도진 것이다. 정보의 수집·분석 등 데이터 활용의 전 단계에 걸쳐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면서 당연히 데이터 활용은 크게 제약됐다. 이를테면 한국에선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엄격한 사전동의가 필요하지만 미국은 일정기간 정보 주체의 특별한 거부 조치가 없으면 정보 활용을 허용하는 사후거부 방식(Opt-out)을 채택하고 있다. 이한진 금융위 신용정보팀장은 “중국 5대 시중은행에 텐센트와 알리바바 계열 은행이 2개 있는데, 이들이 계열기업의 온라인쇼핑 정보까지 활용해 제공하는 중금리 대출의 부실률은 일반은행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며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연합(EU)도 하고 있는 데이터 결합을 왜 우리만 할 수 없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6년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개인정보의 이름표인 개인 식별사항을 제거하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의 법적 지위가 불명확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시민단체가 가이드라인에 따라 비식별 작업을 한 금융회사와 전문기관을 형사고발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무슨 소용이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른 비식별 조치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식별조치를 통과하기 위해 이것저것 다 빼버리면 남는 데이터의 유용성이 확 떨어질 수 있다.
 
지난 연말과 올해 초에 열린 1, 2차 해커톤 참여자의 활동 모습. [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지난 연말과 올해 초에 열린 1, 2차 해커톤 참여자의 활동 모습. [사진 4차산업혁명위원회]

문재인 정부에서 혁신성장이 다시 강조되면서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이 빅데이터의 테스트베드가 되도록 하겠다”며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금융 데이터는 전체 데이터의 절반이나 될 정도로 많고 정확해서 경제적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 금융 빅데이터는 문재인 정부의 ‘공정’과도 궁합이 잘 맞다. 금융거래 실적이 없어서 차별받는 사회초년생·주부·고령층도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제도권 금융의 혜택을 받는 길이 넓어진다. 빅데이터가 포용적 금융의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대형 금융회사 등이 독점하는 고객 정보를 핀테크 창업을 원하는 젊은이나 중소금융회사가 함께 활용하게 되면 진입장벽을 낮추고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도 있다.
 
해커톤에서 민관 전문가들이 개인정보를 둘러싼 오해를 풀고 금융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고 개인정보 보호의 틀도 잘 마련하자는 데 합의했다.개인 정보를 둘러싼 한국의 과도한 규제를 합리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정선 SK텔레콤 부장은 “해커톤이 합의문을 쓰는 데서 그치면 밤샘 토론은 공염불이 된다”며 “관련 부처가 적극 나서 합의내용이 국회에서 입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이를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무술년인 올해의 키워드로 ‘무술통공(戊戌通共)’을 내세웠다. 조선 후기 정조가 시전상인이 독점하는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상업활동을 다른 상인에게 허용한 ‘신해통공(辛亥通共)’에서 따온 말이다.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 혁신성장에 기여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담았다. 최종구 위원장의 ‘무술통공’이 꼭 성공하면 좋겠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고개는 많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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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