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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영부인’ 美 바버라 부시, 92세로 별세

 
남편과 아들을 ‘세계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부인’으로 불린 바버라 부시 여사가 17일(현지시간) 지병으로 별세했다. 92세.

폐질환 등 지병으로 별세
남편·아들 부시 내조해 대통령 만들어

 
바버라 여사는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어머니다.  
 
최근 한 공개석상에서 남편 조지 H.W. 부시와 함께 한 바버라 부시 여사(오른쪽).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한 공개석상에서 남편 조지 H.W. 부시와 함께 한 바버라 부시 여사(오른쪽).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남편과 아들(조지 W. 부시) 부부 슬하의 자녀와 손자, 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가족의 대변인인 짐 맥그래스는 최근 “바버라 여사는 ‘임종 돌봄(comfort care)’에 집중할 것”이라며 그녀가 사실상 ‘소극적 안락사’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명문 피어스가(家) 출신인 바버라 여사는 1925년 미 뉴욕에서 출생했다. 14대 미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1853~1857년)가 먼 친척이다.
 
 그는 16살 때인 41년 크리마스 댄스 파티에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한눈에 반한 이들은 교제 1년 반 만에 약혼했다. 부시가 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무사히 귀환한 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1955년 미 뉴욕에서 남편인 조지 H.W. 부시(왼쪽), 아들 조지 W. 부시(가운데)와 함께 한 바버라 부시 여사.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955년 미 뉴욕에서 남편인 조지 H.W. 부시(왼쪽), 아들 조지 W. 부시(가운데)와 함께 한 바버라 부시 여사. [로이터=연합뉴스]

 
바버라 여사는 현역 시절 남편을 극진히 내조했다. 66년 미 하원을 시작으로 유엔 대사,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부통령, 그리고 대통령까지 조지 H.W. 부시가 줄곧 성공 가도를 달린 배경에는 바버라 여사의 내조가 핵심적이었다. 그녀는 대통령 시절의 남편에게 “성인(saint)”이라고 호칭하면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6남매를 둔 이들 부부는 미 대통령 부부 가운데 가장 오래 결혼 생활(73년)을 이어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992년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방한한 바버라 부시 여사가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인 김옥숙 여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92년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방한한 바버라 부시 여사가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인 김옥숙 여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바버라 여사는 정계에 몸담은 두 아들(조지 W. 부시, 젭 부시)에겐 억척스러운 어머니였다. 지난 2000년엔 대선에 출마한 장남 조지 부시를 위해 하루에 주(州) 3곳을 돌며 지지 연설을 했다. 지지 편지와 전화도 수천 통씩 돌렸다.
 
 그런데 차남의 대선(2016년) 출마엔 애초 공개 반대한 일화도 있다. “부시 집안의 대통령은 두 명으로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출마를 고집한 젭 부시는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당시 막상 선거전이 전개되자 고령의 몸을 이끌고 지원 유세를 벌이는 모정을 보였다. 그녀는 당시 트럼프를 향해  “그는 여성과 군대에 대해 끔찍한 것들을 말한다. 사람들이 왜 그를 지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바버라 부시 여사. [블룸버그 캡처]

바버라 부시 여사. [블룸버그 캡처]

 
남편의 대통령 퇴임 뒤 바버라 여사는 문맹 퇴치와 여성 권리 증진에 힘썼다. ‘바버라 부시 재단’을 세워 10억 달러 이상의 자선기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녀는 부유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통령의 아내로, 또 대통령의 어머니로  화려하고 주목받는 일생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가식 없는 모습과 이웃집 할머니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미국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염색하지 않은 새하얀 머리와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가짜 진주 목걸이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녀의 남편 부시가 재선에서 실패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99년에도 미국인 63%가 그녀에게 호감을 나타낼 정도였다.   
 
그녀가 평생 헌신으로 일궈낸 부시가(家)는 미국의 정치명문이 됐을 뿐 아니라 공화당의 중심 가치를 대변했다. 그녀에게 ‘공화당의 여족장’이라는 평이 따라붙는 이유다.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멜라니아 여사와 공동 성명을 통해 “바버라 여사는 미국 가정의 가치를 수호한 사람”이라며 “이 나라와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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