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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이상한 나라의 '팔자 좋은' 며느리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나도 며느리다. 사실을 고백하면 ‘팔자 좋은’ 며느리다. 12일 첫 방송한 MBC 교양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등장한 경우처럼 시댁 갈 때마다 화장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어야 하는 며느리도, 또 다른 경우처럼 명절날 홀로 시댁에 가서 만삭에 애도 보고 전도 부치며 눈물 훔치는 가련한 며느리도 아니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나도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요, 집안일보다 먹고 마시는 게 즐거운 풍류가다. 바쁘면 시댁에 안 가기도 하고, 설거지할 때면 남편을 불러 같이 하고, 술상을 차리면 자리 잡고 함께 잔을 부딪친다. 가족의 일원이지, 가사도우미로 참여한 자리가 아니라서다.
 
하지만 팔자 좋은 며느리의 평안은 안타깝게도 다른 며느리의 희생에 빚지고 있다. 시댁에 늦게 가면 시외숙모가, 친정에 늦게 가면 올케가 좌불안석으로 그 집안의 부엌을 서성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면피로 있긴 힘들다. 결국 “제가 할게요” “저한테 주세요”라며 웹툰 ‘며느라기’ 의 주인공 민사린처럼 되어간다. 새로운 식구들한테 예쁨받고, 칭찬받고 싶은 ‘며느라기(期)’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더구나 경쟁에 최적화된 알파걸로 자란 요즘 여성들은 인정욕구가 강하다. 남에게 지는 것은 못 참는 성정이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며느리상이 있다면 기꺼이 만점을 받아주리라 하는. 고부갈등을 정면돌파하는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를 보며 공감하면서도 스스로는 ‘A급 며느리’이고 싶은 마음이다.
 
새로운 대중문화 콘텐트를 통해 며느리 얘기를 다룬 ‘며느리는 오늘도 시댁에 사표를 쓰고 싶다’(중앙일보 4월 16일자 23면) 기사에는 30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아예 결혼하지 마라” “신혼집을 장만해준 시댁에 그 정도는 해야지” “돈도 벌고 가사도 하고 육아도 하고 며느리와 좋은 딸 노릇에 미인으로 살아갈 의무까지 6중고” 등등. 하지만 이 중 어떤 것도 정답일 순 없다. 지난해 26만 쌍이 혼인했다면 26만 개의 답이 나오는 게 맞다고 본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는 “문제는 ‘며느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이상한 나라’라는 데에 있고, 우리는 모두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라고 시청 소감을 밝혔다. 십분 동의한다. 왜 특정 구성원에 대해서만 숱한 의무가 강요돼야 할까. 대중문화를 매개로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벌어지는 논의가 며느리뿐 아니라 사위, 고부갈등뿐 아니라 장서(장모·사위) 갈등 등 지금껏 조명받지 못한 많은 부분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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