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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취향] 볼 수 없는 남편과 걸을 수 없는 아내의 아주 특별한 유럽 여행기

1급 장애인 부부 단둘이 유럽을 여행하고 왔다. 그리고 그 열흘간의 추억을 담아 『낯선 여행, 떠날 자유』(꿈의지도)를 출간했다. 남편 제삼열(32)씨는 눈이, 광고 관련 일을 하는 아내 윤현희(35)씨는 다리가 불편하다. 지팡이와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이 힘든 이들이 제주도도 아니고 유럽이라니. 그야말로 ‘생고생’이었을 것 같다. 한데 그렇지 않았다. 난생 처음 방문한 영국과 프랑스는 의외로 편했다. 어디를 가든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고, 버스·택시기사와 호텔리어, 길에서 만난 시민까지 배려가 몸에 배 있었다. 지난 13일 부부를 만나 그들의 특별했던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오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는 부부의 모습. [사진 윤현희]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는 부부의 모습. [사진 윤현희]

 
유럽 여행을 결심한 계기는?
제(제삼열) “평소 국내여행을 자주 다닌다. 자가용이 없고, 전동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기차를 주로 타다 보니 갈 수 있는 여행지가 제한적이다. 여행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2013년 결혼을 한 뒤 해외여행을 꿈꿨는데 유럽의 대중교통이 장애인이 다니기에 편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럽 여행을 결심했다.”
 
여행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윤(윤현희) “대형 여행사와 장애인 전문 여행사를 수소문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 결국 모든 걸 직접 준비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호텔을 찾았고 유로스타(런던과 파리를 연결하는 기차)도 예약했다. 유럽이 장애인 복지 선진국이라곤 하지만 준비가 쉽지는 않았다. 2017년 여름에 출발할 여행을 1월부터 준비했는데도 빠듯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 장애인 시설 여부를 물어보면, 사이트 담당자가 호텔에 전화를 걸어 일일이 확인해서 알려주는 식이었다. 여행 비용은 모두 700만원(2인) 정도 썼다.”
 
부부는 런던에서 빅벤과 런던아이가 잘 보이는 시내 중심가에 호텔을 잡고 템즈강 산책을 즐겼다. [사진 윤현희]

부부는 런던에서 빅벤과 런던아이가 잘 보이는 시내 중심가에 호텔을 잡고 템즈강 산책을 즐겼다. [사진 윤현희]

런던에서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대중교통과 버스기사, 택시기사의 몸에 밴 친절에 감동했다. 저상버스 장애인 전용석에 윤현희씨가 자리를 잡았는데, 버스기사가 안전벨트도 꼭 해야 한다며 벨트를 채워줬다. [사진 윤현희]

런던에서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대중교통과 버스기사, 택시기사의 몸에 밴 친절에 감동했다. 저상버스 장애인 전용석에 윤현희씨가 자리를 잡았는데, 버스기사가 안전벨트도 꼭 해야 한다며 벨트를 채워줬다. [사진 윤현희]

인상적이었던 장소는?  
윤 “현재 사이버대에서 회화를 공부 중이라 미술에 관심이 많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루브르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가까이서 본 게 감격스러웠다. 늘 많은 사람이 작품을 관람하는데 장애인은 가장 가까이 감상할 수 있도록 따로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한국의 고궁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됐는데도 엘리베이터, 화장실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훌륭했다.”
제 “특정 장소보다 사소한 체험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한국에선 쉽지 않은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고,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골 카페를 찾아가고, 현지인에게 도움을 받은 시간이 모두 뜻깊었다. 아내를 따라 미술관에 가는 것도 즐긴다. 작품을 볼 순 없지만 방문 전 공부를 하면서 상식을 넓힐 수 있고, 미술관 안의 독특한 공기도 좋다.”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지역에서 거리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윤현희]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지역에서 거리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윤현희]

책 출간은 떠나기 전부터 계획했나.
제 “아니다. 평소 여행책도 거의 읽지 않는다. 그냥 기록을 남겨야 겠다는 생각에 매일 일기처럼 하루하루를 정리했다. 여행을 무사히 마친 뒤에서야 우리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장애인이나 낯선 일에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아울러 장애인이 늘 곁에 있다는 사실도 말하고 싶었다.”
 
부부가 함께 쓴 여행서 『낯선 여행 떠날 자유』

부부가 함께 쓴 여행서 『낯선 여행 떠날 자유』

부부가 함께 쓴 『낯선 여행, 떠날 자유』는 여행정보서라기보단 여행 에세이에 가깝다. 볼 수 없는 남편과 걸을 수 없는 아내는 비장애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순간조차 섬세한 감각으로 포착했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바닥 자갈을 만지며 영국의 역사를 떠올리고,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에서 왈츠 음악 같은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부부의 모습이 그렇다. 중학교 국어교사인 제씨는 2016년 장애인문학상 산문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애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국내 여행지는?
윤 “울산 대나무숲과 포항 기청산 식물원은 휠체어 이동도 편하고, 볼 것도 많아 추천하고 싶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가본 강릉도 좋았다. 해설 서비스가 제공되는 에디슨박물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제 “시각보다 후각과 청각으로 느낄 수 있는 바다가 좋다. 탁 트인 느낌과 파도 소리, 짭쪼름한 냄새를 모두 좋아한다. 부산 해운대처럼 백사장이 너무 넓은 곳보다 동해 묵호항, 강릉 안목해변처럼 기차역이 가깝고 아기자기한 해변이 찾아가기 좋다.” 
 
책에는 국내여행에서 어려웠던 얘기도 나온다.
윤 “화장실이 대체로 불편하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있어도 청소 창고로 쓰거나 비장애인이 아무렇게나 쓰는 일이 흔하다. 심지어 노숙자가 살림을 차린 화장실도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웬만큼 시설은 갖췄는데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게 너무 많다.”
제 “정부에서 ‘열린 관광지’ ‘무장애 탐방로’ 등 장애인을 위한 관광 인프라에 공을 들였다지만 현장에 가보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강릉 안목해변 커피거리는 장애인이 가기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카페에 문턱이 있어 휠체어가 들어가기 어렵다. 여행정보 대부분이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증 장애인이나 시각·청각 장애인도 고려했으면 한다.”
 런던 그린파크 의자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남편 제삼열씨. [사진 윤현희]

런던 그린파크 의자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남편 제삼열씨. [사진 윤현희]

옥스포드 대학에서 한 컷! [사진 윤현희]

옥스포드 대학에서 한 컷! [사진 윤현희]

 

다음 여행 계획은. 
윤 “4월 말에 지리산을 가볼 계획이다. 등산을 할 순 없지만 남편과 둘레길을 걷고 산골 마을도 둘러보고 싶다. 유럽을 다녀와서인지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 겨울에는 이탈리아·스위스·독일을 가볼 계획이다.”

제 “유럽 여행에서 바다를 보지 못해 아쉽다. 런던 외곽 1~2시간 거리에 근사한 해변이 많다는 걸 다녀오고서야 알았다. 언젠가는 동남아시아의 그림 같은 해변도 가볼 생각이다. 유럽처럼 이동이 어렵다는 게 난제이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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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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