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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삶…'은막의 스타' 최은희 별세

배우 최은희.

배우 최은희.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배우 최은희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92세.
 
고인의 장남인 신정균 감독은 “오늘 오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혔다.  
 
빈소는 이날 오후 6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입관은 오는 18일 오후 3시 이뤄질 예정이다. 발인은 19일 오전이며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로 정해졌다. 유족과 영화계는 영화인총연합회장 등 장례방식을 논의 중이다. 
 
고인은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연극 무대를 누비던 그는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 데뷔했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을 찍으며 서구적이고 개성 있는 미모와 연기력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이후 김지미ㆍ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1954년에는 주한미군 위문 공연 차 방한한 할리우드 톱스타 메릴린 먼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했다. 고인의 나이 18세때 ‘새로운 맹서’를 찍으면서 촬영감독 김학성씨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고,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서 헤어지게 된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결혼을 한번 했던 여배우와 총각 신상옥의 만남은 당시 세간의 화제였고, 두 사람은 1954년 3월 한 여인숙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치른다. 그 후 부부가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에서의 고인.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에서의 고인.

고인은 신 감독과 찍은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76년까지 130여 편에 출연하며 은막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됐고, 신 감독은 신필름을 설립하며 한국 영화계의 거물로 자리 잡았다. 고인은 전성기에 1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갔다.  
 
고인은 배우이자 한국의 세 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민며느리’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67년 안양영화예술학교 설립ㆍ교장 겸 이사장을 맡았고, 극단 배우극장을 직접 운영하며 후배 연기자들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23년간 이어진 고인과 신 감독의 협업은 1976년 이혼으로 끝이 난다. 부군 신 감독과 이혼한 고인은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다. 이후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기록돼있다.
 
두 사람은 이후 영화 ‘춘향전’에 쓸 부속품을 구하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갔다가 그곳 성당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다시 올리기도 했다.  
 
신 감독과 고인은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국 귀국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하던 신 감독은 2006년 4월 11일에 80세를 일기로 먼저 별세했다.
 
고인은 부군을 먼저 떠나보낸 뒤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져 오랜 투병생활을 해왔다. 고인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고, 임종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ㆍ상균(미국거주)ㆍ명희ㆍ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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